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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Jul 09. 2024

연애와 실연의 의미

A는 내 고등학교 친구이다. A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똑 부러지고 옹골찬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점심시간쯤 갑자기 전화를 해왔다. 뭔 일이 있구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라 받지 못하고, 저녁에 전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퇴근 후, A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수신호가 가기도 전에 A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쏭! 전에 내가 말했잖아.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고. 그리고 그 사람에게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그냥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했어.”     


연애 고민으로 전화를 하다니! 놀랄 노자였다. 그런 고민을 하는 A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또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그녀는 한참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게 바로 실연의 고통인가!”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말. 그런데 그 순간, ‘실연’이 새삼스럽게 귀에 들어왔다. 한자로 된 실연은 우리말로 뱉을 때면 [시련]이 된다. 우습게도 같은 소리를 내는 말이 있다.

  

“야, 방금 네 ‘실연’이 ‘시련’으로 들렸어.”

“발음이 같아서 그래. 나는 ‘실연’을 말한 거야.”

“알지.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실연’이 ‘시련’으로 읽히는 것은, 실연이 말 그대로 시련이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의 시련이잖아.”    

 


시련 2 試鍊/試練

명사 겪기 어려운 단련이나 고비.     



실연을 경험하는 것은 인생에서 경험하기 싫은, 피하고 싶은 어려운 일. 시련에 가깝다. 어째서 실연은 시련과 같은 소리를 내는 걸까? 어쩌면 둘은 같은 뿌리에서 온 것은 아닐까?     


“하지만 실연은 한자 아냐? ‘연을 잃어버렸다’ 다는? 그럼 나는 실연도 아니지 않나?”

“... 실연이 정확하게 무슨 뜻이지?”    

 

나는 컴퓨터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실연 1 失戀

명사 연애에 실패함.       

   


“연애에 실패함이면 실연이 맞지 않아?”

“난 그냥 일방적으로 차인 거잖아. 연애는 사귀어야 하는 거 아냐? 쌍방인 거 아냐?”     

그….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연애 5 戀愛

명사.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     


     

아…. 뜻이……. 내가 잠시 말 못 하는 사이, A가 말했다.    

 

“아, 좋아하여 사귐이네. 나는 사귀지 않았으니까 연애는 아니다.”     


뭐야? 너도 지금 사전 찾아보고 있었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A가 말을 이었다.

    

“일단 나는 ‘사귐’이라는 단계까지 못 같으니까, 아예 전제 달성을 못 했으니까 실연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없지.”

“나는 ‘사귐을 하지 못한 게’ 중요한 것 같은데. 그럼 너는 연애를 실패한 거고, 실연이 맞지 않나?”

“따지자면 외사랑 아닌가? 아니지. 짝사랑인가? 짝사랑과 외사랑의 차이는 뭐지?"

    


외사랑

명사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 자신이 상대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 상대편이 알지 못하는 경우를 이른다.  

   

짝사랑

명사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   


  

속으로 ‘너는 짝사랑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데, A가 말했다.     


“그는 착한 사람이 좋데. 도대체 착함의 기준이 뭐야? 나 정도면 착하지 않나? 난 착하다고! 얼마나 성실한데! 성격도 나쁘지 않고!”

“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잘 알지. 나는 네가 착한 걸 알지만…. 있잖아. 너도 나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굳이 따지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 그렇지?”

“하지만 회사 사람 중에 나보고 착하다는 사람 한 명도 없어. 내가 보기에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사람은 그런 ‘따지는 게’ 필요 없는 사람 같아. 착한 사람들은 그냥, 단서조항 없이 착한 사람이야. 착한 사람들은 이유가 필요 없는 거야. 그런데 너나 나는 이유가 필요하잖아. 우린 착한 게 아니지."

"아, 인정."

 

이런 대화를 주고받다가 불현듯, 머릿속에서 무언가 스쳤다.   

       

“야, 나는 지금 깨달았는데.”

“?”

“우리가 이래서 연애를 못하는 게 아닐까?”

“응?”

“이 상황에서 사전부터 찾아본다는 것에서부터 너와 나는 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에 친구는 웃음을 터뜨렸다.     


“쏭. 내 이야기가 너무 길었지? 그래도 이 이야기를 소스로 글을 써줘라. 이런 사랑 이야기도 있다고 글로 써줘.”

“나 글 안 쓴 지 오래되어서 거의 도망치는 수준인데 괜찮겠니?”

“하긴 연애도 안 되는 내 이야기가 네 글에 어떤 도움이 되겠니. 참고도 안 되겠다.”     


A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종료했다. 세상에서 제일 씩씩하고 용감한 A가 이토록 고민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동시에 끝까지 글을 쓰라고 하는 A를 보면서 이 이야기를 브런치에라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를 생각했다.     


이러니까 우리가 친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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