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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Jul 14. 2024

선물을 하는 즐거움

준비하는 기쁨

직장 내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모임이 있다. 그 모임이 시작되고 N 년 만에 드디어 첫 1박 2일 여행이 잡혔다. 다들 설레했고, 나는 다른 의미로 들뜨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계획했던 선물 증정식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예전부터 이 멤버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고, 단순히 ‘재미’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사무실에서는 장난을 칠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럴 만한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제대로 장난을 치는 거야!     


이 장난, 선물 증정식, 을 떠올린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이 장난을 준비했지만 전달이 어려울 것 같아서 포기했었다. 선물을 주렁주렁 들고 식당으로 가야 하다니! 남의 사업장에서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1박을 하게 되었으니... 선물증정식을 위한 밑그림이 제대로 그려진 기분이었다.     


나는 동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 받으면 웃음을 터뜨릴만한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선물만 주면 그 의미를 해석하지 못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상장’이 떠올랐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웃긴 상장과 부상의 형태가 되었다.     


나는 평소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상장의 멘트를 쓰고, 그에 어울릴만한 선물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직원 중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엄청 좋아하는 직원이 있다. 나는 그녀에게 “한겨울에도 얼(어) 죽(어도)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셔 언니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여 전력 낭비를 방지한 공이 큼”을 칭찬하는 표창장을 “그린피스 총재”의 이름으로 준비했고, 부상으로 커피를 마실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머그컵을 준비했다. 물론 그냥 머그컵은 아니고, 그녀가 보면 으아아악, 소리를 지를만한 짤을 넣어 디자인한 머그컵이었다.     

모임의 멤버는 여러 명이었다. 나는 그 멤버들 하나하나를 생각하며, 어떤 선물을 받으면 진절머리(!)를 칠까 고민하며 즐거워했다. 여행일이 다가오면서 우리 집 앞에 쌓이는 택배는 점점 더 늘어났다. 나는 이왕 줄 거면 제대로 주자는 마음으로 포장지를 사서 포장까지 했다.     


나는 포장지와 씨름을 하며 시상은 Y에게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런 시상에 능숙하니까. 사실 Y를 상장 수여자로 결정한 것은 오로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사실은 그녀가 제일 리액션이 좋을 것 같아서 그녀를 수여자로 결정했다. 상장을 읽으며 웃음을 참지 못할 그녀의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이고, 포장까지 하나? 정성이네.”

“정성은 무슨....”     


괜히 민망해진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가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고생하는데 반응이 좋아야 할 텐데.”     


그 말은 천천히 내게 스며들었다.


아,.... 그렇지. 이 모든 것은 내 추측이지?     


사람 마음은 다 다르다. 아무리 내가 그들의 취향에 맞게 준비했다고 해도 사실은 다를 수 있었다. 취향이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반응해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응. 고마워. 잘 쓸게.’ 내가 기대한 웃음폭탄 대신 무성의하고 무미건조한 인사말만 들을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일에 불편해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할수록 충분히 가능한 일 같았다. 흥분으로 들끓던 내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차가워지는 가슴 한쪽에서 ‘그래도 상관없잖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록 그들이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히 아쉬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내가 즐거워했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잖아? 준비 과정 동안 나는 엄청 즐거웠잖아?!


짧지 않은 준비 기간 동안 나는 그들이 평소 자주 했던 말, 자주 하는 행동을 생각했고, 그들이 가장 좋아할 혹은 싫어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으며,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을 생각했다. 그런 많은 고민 끝에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을 골랐다. 그들을 알고 지낸 이후로 그들에 대해 업무 외에 그토록 깊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일방적이지만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선물을 받으며 보일 반응을 상상하며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가? 산책을 나가서도 선물(?)을 받은 그들의 반응을 상상하며 키득거렸고, 상장의 멘트를 어떻게 하면 더 재치 있게 할까 고민하면서 웃었다. 웃음을 주고 싶다는 생각 덕분에 내가 제일 많이 웃었다.

     

그렇다. 누가 뭐래도 나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선물을 받는 사람이야 어떻든, 준비하던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 나의 시간이었다. 내가 느낀 그 설레고 즐거운 마음은 분명히 존재했고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내가 느낀 감정, 준비 과정, 그건 사라지지 않을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느슨해진 손 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이 즐거운 마음은 내 것이야! 그러니까 이 순간, 나는 마음껏 설레하며 행복할 거야!     


선물하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껏 그걸 몰랐다. 선물을 받으면 좋았지, 어째서 선물을 하는 게 즐거움이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알았다.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 그것은 선물을 받는 자의 마음, 혹은 결과와 관계없는 오롯이 나의 즐거움이라는 점. 그런 의미에서 선물을 준다는 것은 선물하는 사람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물을 줌으로써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내게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조금 더 자주자주,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해야겠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도 좋았다.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급조한 수여식이라 어설프고 실수가 많았지만, 그래도 모두 웃어주었다. 이벤트,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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