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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Sep 29. 2024

조직을 떠난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L에게서 온 카톡을 발견한 것은 술보다 분위기에 잔뜩 취해 있을 때였다. 금요일 퇴근 후, ‘집에서 죽어 있어야지’하고 다짐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타 지점에 근무하는 후배의 전화였다. 퇴근 후는 절대 자신의 삶! 을 주장하는 그녀의 성미를 아는 나로서는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얘가 왜 전화했지? 살짝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은 나에게 그녀는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저녁(=술)을 먹자고 했다.    


멤버는 나와 후배. 그리고 후배가 근무하고 있는 지점의 차장님.      


식당에 앉은 우리 셋은 두서없고 의미는 더 없는 업무 이야기를 한참 해댔다. 그렇게 자리를 옮겨가며 목소리를 높였고, 우리의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라 옮긴 술집에서는 집에서 쉬고 있던 다른 차장님까지 불러내는데 이르렀다.     


나는 평소 휴대폰 중독이라 휴대폰의 모든 응답에 실시간으로 대답한다. 그날은 꽤 신나게 떠들어서 제법 오랜 시간 휴대폰을 보지 않았다. 내가 휴대폰을 확인한 것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아 시간을 확인하고자 할 때였다. 그런데, 그사이 예상치 못한 카톡이 와 있었다.

    

[잘 지내세요?]     


L이었다.     


그는 최근 타 조직으로 이직한 후배로, 입사하고 수많은 말썽(?)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덕분에 그의 평판은 좋은 말로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와 같이 근무하게 되었을 때 정말 걱정이 많았다. 그와 같이 근무한 것은 약 7~8개월 정도. 그 사이에 그는 저혈압에 가까운 내 혈압을 정상으로 만들어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명성(?) 어울리는 행동으로 나를 얼마나 기함하게 했던지….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낸다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런 김칫국은 갑작스러운 그의 이직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L에게서 카톡이 온 지는 이미 한 시간 가까이가 지나있었다.     


떠난 후, L에게 먼저 연락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선배인 내가 먼저 연락하기엔 좀 그런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에헴, 다른 사람들에게 종종 연락이 오는 것 같았다. 이놈이? 그러나 L가 새로운 곳에서 엄청 고생하고 있다는 말에 결국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잘 사냐?”     


내 인사에 그는 반가운 목소리를 했다. 야! 그렇게 생각했으면 먼저 선배님께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 시니컬한 말에 그는 ‘선배가 정말로 차단했을까 봐 무서워서 연락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나는 같이 근무하는 동안에는 ‘다른 지점에 가는 순간 번호 삭제’라고 했고, ‘우리 농협을 떠나는 순간 차단’이라고 자주 말했었다.


“전화했는데 진짜 차단당했으면 상처받을 것 같아서 못했어요.”


그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군... 나는 마지막으로 했던 통화를 떠올리며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ㅋㅋㅋㅋㅋㅋㅋㅋ뭐냐?     


카톡을 보내고 30초나 지났을까? L에게서 전화가 왔다. 잉? 얘가 무슨 일이람? 이게 또 무슨 사고를 쳤나? 나는 황급히 술집을 빠져나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선배~~ 잘 지내세요~~ 뭐 하세요?”     


목소리에서 술기운이 넘쳐났다.


“술 먹지. 너는?”

“저도 술 먹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뭔데? 카톡 와서 깜짝 놀랐다.”

“그게 말이죠...."

"?"

"저희 지점에 신규직원이 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손님이 그 신규직원한테 진짜 엄청 난리를 쳤거든요. 근데 진짜 단 한 사람도 안 도와주는 거예요. 옆 사람도 차장님도 다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예전에 선배가 저 도와주셨던 거 생각나서요. 저한테 손님이 뭐라 하니까 신규직원이라고 커버해 주셨잖아요.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는 좀 아련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내 오지랖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어려울 때 누가 나를 도와주길 바란다. 내가 당하고 있으면 끼어들어서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모르면 알려주었으면 좋겠고 함께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고 위로해 주고 함께 싸워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당 할 때마다 나는 그게 정말 싫었다. 세상과 나 혼자 싸우고 있는 기분. 지금도 생각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앞에서 “개 같은 년”이라는 욕을 들었던 날. 손님 스스로 욕을 멈출 때까지 나는 그냥 그 욕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다짐했다. 나는 나중에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당하고 있으면 끼어들게 된다. 그것이 나보다 후배의 일이라면 더욱. 이런 행동은 그때 결심의 영향도 있지만 타고난 내 오지랖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주변에서 힘들다 하면, 특히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끼어든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미리 도와주는 편이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그런 도움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또 때로는 무관심이 오지랖보다 더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머리로 알고 있지만….     


“이제 알았냐? 나 같은 선배 없다.”     


나는 괜히 쑥스러워져서 능숙한(!) 잘난 척을 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그는 그러니까요! 하며 잘도 비위를 맞췄다. 어이구, 이제 사회생활도 잘하네? 내 말에 그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저렇게, 그러니까 놀러 와라, 싫다, 뭐 이런 형식적인 말을 하며 전화는 종료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바로 술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나’를 생각했다.     


언제나 큰소리치는 나. 잘난 척 말하는 나. 하지만 그 내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한 것처럼, 모든 걸 다 하는 것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사실은 자신감이 하나도 없는 나.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다. 내가 힘들었던 만큼, 후배들은 그런 힘듦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좀 더 좋은 사람, 좋 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힘내다 보니 언제부턴가 이 힘겨움을 알아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누가 요청한 것도 아니고,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시작한 건데?? 게다가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정답은 아니잖아? 그냥 ‘내 취향에 맞는’ 행동일 뿐이잖아. 그런데 그걸 알아주길 바란다고?      


‘나 사실은 엄청 귀찮은 사람 아닌가?’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일어났다. 스스로가 좀 어이없었고, 부끄러웠다. 동시에 사람이니까 당연하지! 그렇게 애써 생각하곤 했었다. 그 후로는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내가 알리겠다!’라는 심정으로 내가 하는 일들을 자랑하고 떠벌렸다. 그러다 보니 나를 향해서 하는 칭찬들이 정말로 진심일까? 내가 떠드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냥 하는 반사적인 리액션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토록 바라던 인정인데... 이제는 인정을 받아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L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부끄럽고 간지러웠다. 내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 결국 내 오지랖이 누군가에게 좋은 흔적을 남겼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고, 내 노력이 그저 정말 내 자기만족만은 아니었다고…. 처음으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 고마움을 떠나고 나서야 그가 알았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ㅋㅋㅋ 하지만 생각해 보면 L은 떠났기 때문에 나의 고마움을 알게 된 것 같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떠나서라도 알았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     


이러니 저러니 해도 L이 연락을 주어서 좋았다. 그에게 하나라도 좋은 기억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L이 어떤 사람(선배?)으로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곳에서는 부디 그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어디 가서 나한테 일 배웠다고만 말 안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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