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 제작기
내 이름은 김은희다. 유명한 작가의 이름과 같다. 나는 구미에서 학교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평소에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부산 국제 영화제 자원봉사자도 해보았고, 영화 수업을 들으러 서울에 올라가기도 했었다. 구미 문화센터에서 <1시간으로 배우는 영화 만들기 - 1컷 영화 만들기> 프로그램을 들었다. <말임씨를 부탁해> 를 만든 박경목 감독이 영화 만드는 것에 대해 속성으로 알려주었다.
박감독은 세 번의 수업을 통해서, 시나리오 쓰는 법과 연기 하는 방법, 연출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마지막 까지 수업을 들었던 사람은 다섯 명 이었다. 처음 여덟 명이 시작했지만, 중간에 세 명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끼리 대본을 쓰고 연기를 하고 촬영을 하고 연출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나의 커트에서 내용으로 구분하는 여러개의 쇼트를 담은 5분 내외의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박감독은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영화에 대해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배웠다고 했다. 정말일까?
단체 톡 방에 박준철 이 톡을 올렸다. 같이 영화를 만들자고 했다. 서로 모여서 도와주면서 영화를 찍자고 했다. 자기 집을 빌려주겠다고 하면서. 김미자와 권삼석이 좋다고 했다. 나도 좋다고 했다. 윤순희에게 내가 톡을 보냈다. 같이 하지 않으시겠냐고. 윤순희는 수업 밖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몇 번을 이야기 하다가 더 이상 말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나도 아무나 한테 말 걸고 그런 스타일 아니거든요.’
김미자와 나는 반차를 내었다. 점심 즈음에 박준철의 집에 모였다. 박준철의 아내는 출근하고 없었다.
“아내에게 같이 찍어보자고 했지만 거절 당했어요. 제가 이걸 찍는 걸 이해를 못하네요.”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지 않은가? 누가 이걸 이해하겠나. 나이 60 가까이 되어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걸.
“나는 배우를 해보고 싶어요. 죽기 전에. 설레는 무언가가 필요해요.”
네. 네. 그러세요. 나는 저렇게 대놓고 이야기 하는 게 이상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작품을 연출할 때 연출자가 배역과 스탭을 정하고 서로 품앗이로 도와주기로 했다.
박준철은 아내 역할로 권삼석을 캐스팅 했다. 둘이 합이 잘 맞았으니까.
그리고 촬영으로 날 더러 해달라고 했다. 김미자에게는 조연출을 부탁했다.
“왜 저 에요?”
“서울에 까지 가서 수업을 들으셨다면서요. 그리고 아이폰 가지고 계시잖아요.”
아. 내가 유일하게 아이폰 프로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삼성폰 이었다.
박감독은 핸드폰으로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핸드폰 카메라의 렌즈를 깨끗하게 닦는 것 이라고 했다.
그리고, 촬영을 할 때 무엇을 찍으려고 하는 지 속으로 말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어떤 느낌이 나야 한다.’ 라고 되집어 보라고 했다.
우선 박준철의 영화 장면.
박준철은 이미 소품을 준비해두었다. 이미자가 소품인 음식을 체크하고 행주로 식탁을 닦았다.
다른 사람의 영화인데 정말 자기 집 처럼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있다. 이게 뭐라고.
박준철은 구석에서 권삼석과 대사를 맞춰보고 있었다.
나는 박준철이 시나리오에 밑줄을 그어 둔 것을 참고 했다.
박감독은 “가장 중요한 장면을 돋보이게 하려면 그 전과 차이가 나야 알 수 있겠죠. 사이즈는 두 단계 차이가 나야 그 차이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장면이 클로즈 업 이라면 이전에 있어야 하는 사이즈는 미디엄 정도가 되거나 오버숄더 투 쇼트가 있어야 합니다.” 라고 했다.
박준철은 움직여 가며 대사를 했다. 권삼석과 맞춰보며 이야기를 여러번 하다가 보니 움직이는 타이밍이 비슷해졌다. 그걸 보면서 나는 시나리오에 줄이 쳐진 것을 머리 속에 상상하면서 내가 찍어야 할 것을 예상했다.
다섯 번의 테이크를 갔다. 테이크… 같은 장면을 여러번 찍었을 때 그것을 테이크라고 부른다.
앞의 두 번의 테이크는 중간에 대사를 까먹었다. 찍으면서 보니, 그들이 자기 대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기 대사만 생각하다가 보니까 다른 사람이 대사를 할 때 멈출 때 기다리지 못하고 꼬이게 된다.
나머지 세 번은 연기들은 좋았다. 반복할 수록 대사가 익숙해졌는데, 권삼숙이 박감독의 말을 떠올렸다.
“슬픈 감정을 생각해서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우는 동작을 정확하게 하면 슬픈 감정이 든다.”
빈 손 연습 훈련을 하면서 했던 말 이었다. 똑똑한 학생이다.
박준철이 찌개를 가지고 오고 밥을 정말 정확하게 먹었다. 권삼석도 정확하게 밥만 먹었다.
그러자 둘 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나도 타이밍을 맞춰서 움직이는 데 조금씩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네번 째 테이크에서 찍은 것을 보는 데 박준철이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보였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눈치다. ‘이봐요. 나도 열심히 찍었다고요. 내가 정말 촬영감독인 줄 알아요? 이 정도 했으면 됐어요. 다른 사람도 찍어야 하잖아요. 욕심 그만 좀 내요.’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올 뻔 했다.
그때 김미자가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한 번 더 찍으세요. 조금만 더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박준철 “그래도 될까요?”
김미자 “이왕 하는 건데 제가 보기에도 뭔가 아쉬운데, 다시 찍어서 잘 나오면 저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박준철이 나를 봤다.
“제가 조금 더 잘 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박준철이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모두들 침묵했다.
그리고 박준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묘한 공기가 흘렀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눌렀다.
박준철은 레디 액션도 부르지 않았다. 그저 찌개를 가지고 오고 내려놓고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서 내가 보고 싶은 부분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찍으면서 머리속으로 박준철이 써놓았던 것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이 움직였다. 누군가 내 몸을 이끌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붕 뜬 기분 이었다. 그리고 모든 대사가 끝났다. 3분 가량의 대화 였다. 장면이 끝나고 나는 녹화 중지 버튼을 눌렀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호흡이 멈춘 듯 했다. 뭐지? 이 찝찝한 기분은? 팔에 난 솜털이 모두 일어선 기분 같았다.
“좋은 데요.” 박준철이 말했다.
“저도요.” 권삼석이 말했다.
“울컥했어요.” 김미자가 말했다.
잘 찍혔을지 불안했다. 모두들 모여서 마지막 테이크를 돌려보았다.
넷이 얼굴을 다닥다닥 붙여서 핸드폰 화면을 초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보고 있는 데 숨이 막혔다. 호흡이 멈춘 것 같았다. 간질간질 하고 찌릿찌릿 했다. 다른 사람의 뇌와 나의 뇌가 싱크된 기분도 들었다. 이건 오케이다. 이런게 오케이 이구나. “오케이” 박준철이 말했다. 박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어떤게 오케이 인지 어떻게 구분하느냐 물으셨는데… 오케이는 모두가 단박에 알게 됩니다.” 제길. 가스라이팅 당한 것 같다.
이어서 권삼석의 영화도 내가 찍었고, 김미자의 영화도 내가 찍었다.
모두들 내가 촬영을 잘 한다고, 날 더러 찍어 달라고 했다.
권삼석은 권삼석 같이 영화를 찍었다. 박준철이 욕심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면, 권삼석은 큰 욕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 한 번 찍고는 이제 괜찮은 거 같아요. 라고 멈췄다.
김미자는 구석에서 계속 대사를 외웠다. 이번에도 권삼석이 김미자의 전화 상대 역으로 대사를 같이 말해주었다.
김미자는 자신이 대사를 외지 못하는 것에 화를 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자신이 바보 같은지 모르겠다며 너무 속상해 하고 있었다. 울기까지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못 났냐고 하면서. 권삼석이 김미자를 꼭 안아 주었다. 자기도 겁이 났다고. 잘 못해도 괜찮다고. 잘 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박준철은 자리가 불편한지 마실 것을 사러 나갔고, 나는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서 화장실로 갔다. 김미자는 덜덜 떨었지만 그래도 다 찍을 수 있었다.
내 영화는 숲에서 나혼자 찍기로 하고 모두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 김미자와 같이 버스 정류장 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김미자는 자기가 울었던 것이 너무 부끄럽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 수 있는 그런 것이 없었다. 항상 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김미자는 이번 수업을 아들이 알려주었다고 한다. 남편은 김미자가 뭔가를 더 배우는 것을 못하게 한다고 했다. 김미자의 엄마도 김미자가 뭔가를 더 배우게 되면 아들인 김미자의 남동생이 위축되는 것을 겁내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미자는 계속 영화를 만들고, 유튜브도 할 거고, 아들이 군대에 갔다가 오면 아들과 같이 미국 유학 공부도 해볼 거라고 했다. 남편은 김미자를 가두고 무시하고 자꾸 작게 만들지만, 김미자는 이겨낼거라고 말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안개가 자욱한 시간에 숲으로 가서 혼자 독백하면서 빈 숲을 찍었다. 그렇게 내 첫 영화가 만들어졌다.
후기 1
다음주에 박감독이 모두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는 데 김미자는 또 울었고 권삼석은 김미자의 손을 잡아 주었다.
박준철의 영화를 보고 많은 칭찬을 해주었다. 특히 촬영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나에게 과거 촬영을 해본적이 있는지 물었다. 내가 없다고 하자, 촬영에 재능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프레임을 잡는 거나 움직임을 하는 데 타이밍이 연기와 잘 어우러져 있다고, 이런 건 배운다고 단번에 되지 않고, 감각이고, 많이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칭찬을 다하고… 하며 우쭐해 있을 때… “근데 이 숲 장면은 왜 찍으신 거에요? 노래방 배경 같잖아요.” 라고 했다. 순간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내게 상처를 주다니…
윤순희는 작품을 내지 못했다. 생각이 많았는데, 가족들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했다. 같이 참여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 했다. 우리 네 명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나는 적어도 찍기는 했지. ㅎㅎ
후기2
박준철이 단톡방에 공지 글을 하나 올렸다. 초단편 영화제 공모가 있었다.
그것에 낼 영화를 만들어보자 고 했다.
김미자가 제일 먼저 좋다 라고 했고, 권삼석도 좋아요 라고 했다.
촬영은 내가 당연히 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토요일 날 좋은 날 박준철이 쓴 대본을 가지고, 박준철, 권삼석 주연, 김미자 조연의 영화를 찍었다.
이번에는 한 컷 영화가 아니었다. 여러개의 컷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이 박준철이 핸드폰으로 편집할 수 있는 vllo 앱을 유튜브를 통해서 배워 왔다. 우리는 즉석에서 편집을 해서 돌려 보았다.
우와와… 영화 같이 그럴 듯 하게 나와서 모두들 감동 받았다.
그리고 편집본을 박감독에게 보내주었다.
‘우리 이렇게 영화 만들고 있어요.’
계속 우리는 이렇게 영화를 만들 것이고, 박감독은 계속 우리에게 코멘트를 해주겠지…
내 안에서 뭔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는 김은희 하면 촬영감독 김은희 라는 이름으로 나올 수도 있겠지.
스타니슬랍스키 ‘배우수업’ 의 서술 방식을 차용했습니다.
그동안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