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l, 금기를 넘어선 부활의 춤

태민 Veil 안무 분석

by 올가의 다락방

어제(9/23) 태민의 Veil 안무 연습 영상이 공개되었다.필자는 태민이 Veil 안무를 통해 자기 안의 욕망을 깨달은 한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 인간은 금기를 넘고 죄의식에 몸부림치다가 이내 허물(veil)을 벗은 뱀처럼 새롭게 태어난다. Veil 안무 영상의 핵심적인 장면들을 짚어보며 태민이 어떻게 금기를 넘어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지 따라가 보자.


1. 이교적 코러스: 잠든 악령의 각성

도입부의 코러스는 성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이교적이다. 그것은 신을 찬미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잠들어 있던 악령을 깨우는 의식에서 흘러나올 법한 목소리이다. 무의식의 심연, 금기 너머의 세계가 입을 열어 우리를 향해 속삭인다.


2. 깨진 거울 속 낯선 나: 조종당하는 몸

이 부분에서 태민은 고개를 깊게 숙이고 몸의 힘을 완전히 놓아버린다. “깨진 거울 속 낯선” 나, 즉 또 다른 나에 의해 몸이 조종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나르키소스가 자신의 형상에 매혹되어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는 장면과 겹쳐진다.


3. 선과 악이 뒤엉켜: 뱀과 십자가

무릎 꿇은 태민은 두 팔을 십자가 모양으로 겹친 뒤, 한 손으로 뱀이 아가리를 벌리는 듯한 모습을 표현했다. 선과 악이 뒤엉킨다는 가사처럼 성스러움과 원죄의 상징이 얽히는 극적인 장면이다. 이게 바로 욕망에 눈을 뜬 태민이 본격적으로 금기를 넘어서는 순간이 아닐까?


4. Lord Give Me Mercy: 죄인의 항변

금기를 넘어선 태민은 “Lord give me mercy“라고 읊조리는 파트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도 얼굴을 가린다. 죄지은 자로서 차마 하늘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는 것처럼. 그러나 이어지는 “자극적인 내 존재는 나를 홀려”에서 태민은 태도를 바꿔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한다. 필자는 이를 나르키소스의 항변으로 보았다. 그는 “내가 이렇게 매혹적인 존재가 된 것은 내 탓만이 아니다. 나를 만든 당신들, 신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5. 자기 자신을 탐하는 춤: 나르키소스적 쾌락

본래 섹시함을 어필하는 춤 중에 무심하게 스스로의 몸을 만지는 안무는 매우 흔하다. 이는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는 타인(너)의 손도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Can you feel the Fever Esctasy”에서 태민의 몸짓은 뭔가 다르다. 여기서 태민은 정말 어떤 쾌락을 느끼는 표정을 지음으로써 자신이 탐하는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걸 드러낸다. 머리카락의 극적인 움직임은 연못에 스스로를 비춰보며 머리칼을 마구 쓰다듬는 나르키소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6. 여덟 개의 빛: 부활의 역설

이내 장면이 전환되며 어둠 속에서 8개의 빛이 태민을 비춘다. 천주교에서 8은 부활과 새로운 생명을 뜻한다. 예수의 부활이 안식일(7일째) 다음날인 여덟째 날에 이뤄졌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게 성당의 세례대가 8각형인 이유이기도 하다.

https://news.cpbc.co.kr/article/474992

그러나 여기서의 부활은 역설적이다. 기독교의 부활이 생명의 탄생(세례)을 의미한다면, 태민의 부활은 곧 죽음을 통한 재생이다. 바타유가 말했듯, 금기 너머에는 죽음이 있고, 그곳에서 모든 존재는 고립이나 소외 없이 연속된 채로 영원하다. 8은 무한대 기호를 닮았다는 점에서 영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태민은 이 상징을 뒤집어, 기독교적 부활을 작은 죽음(petite mort)으로 바꿔낸다.


7. 이교의 꽃: 금기를 깨뜨린 개화

태민의 주변에서 반짝이는 8개의 조명은 꽃의 개화를 연상케 하는데, 이는 “금기를 깨며 핀 꽃 Heresy”라는 가사와도 겹쳐진다.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8개의 빛이 이 무대 위에서는 금기를 깨뜨리며 피어난 이교의 꽃으로 표현된 것이다.


8. 상사화와 나르키소스: 나를 향한 그리움

이 파트에서 몽환적인 기운을 풍기는 태민과 댄서들의 조화는 꽃잎을 활짝 벌리고 있는 상사화의 모양을 닮았다. 상사화의 ‘상사’는 상사병의 ‘相思’이다. 이 꽃의 이름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잎과 꽃잎이 서로 만나지 못해 슬퍼한다는 시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상사화의 ‘상사’는 타자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그리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연못에 비친 스스로에게 닿을 수 없어서 외로움 속에 죽어간 나르키소스를 떠올리게 한다.


9. 뱀의 허물, 베일을 벗다

총을 장전해 머리에 쏘는, 죽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제스처는 뱀이 허물(veil)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십자가를 오르는 뱀을 보며 금기를 넘어선 태민은 허물을 벗고 스스로 뱀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허물, 즉 베일을 벗는 행위는 죽음과 탄생이 얽혀있다는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즘>을 떠올리게 한다. 태민은 Veil을 통해 베일을 벗고 금기를 깨뜨리며, 이교의 신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Veil 무대에서 기독교적 부활은 바타유적 죽음으로 치환되고, 나르키소스적 자기 응시는 춤으로 구현된다. 금기를 넘어선 자리에서 태민은 새로운 자아로 우뚝 선다. 어쩌면 태민은 욕망에 눈 뜬 인간이라는 보편적 서사를 표현하는 동시에, 상업적인 앨범보다는 예술성이 짙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춤으로 밝히고 있는 것 아닐까?


No matter what, Taemin is Tae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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