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나데 Mar 13. 2023

내가 사는 마을에 의미 부여하기

독일 에센 Essen

우리 부부가 독일에서 정착하게 된 도시의 이름은 에센 Essen이다. 남편이 이곳에서 머물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을 때 도시의 이름이 굉장히 낯설었다. 독일 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뮌헨, 쾰른 그리고 내가 여행했던 도시들..


독일 어느 지역에 정착하냐는 주변 지인들의 물음에 Essen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인이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와 에센 촐페라인 탄광 Zollverein Coal Mine에 대한 과제를 제출했던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다.


독일 서부에 위치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North Rhine-Westphalia, NRW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고 독일 전체에선 9번째로 큰 도시이라지만 관심이 없으면 어떻게 알겠는가.

내 삶도 바쁜 데다 대한민국에서 9번째로 큰 도시도 모르는데.


Essen이란 단어는 기초 단계의 독일어 책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Essen은 동사로는 먹다, 명사로는 음식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도시의 이름은 이러한 뜻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 이케아 홈페이지에서 매장 리스트를 누르고 번역 버튼을 누르면 이케아 뒤셀도르프, 이케아 드레스덴, 이케아 프랑크푸르트로 잘 번역되는 타 도시와 달리 이케아 에센은 '이케아 식품'으로 번역되고 만다. 남편과 "에센은 왜 안 보이는 거야." 이야기하며 한참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번역기도 도시 이름 보단 단어의 의미가 더 강하게 여겨졌나 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식욕은 결국 삶의 의욕과 관계되기 때문에 식욕이 있는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창때 식욕이 굉장했던 나로서는 이 말이 참 좋았다. 그래서인지 먹다, 음식을 뜻하는 Essen이 더 좋게 여겨진다. 비록 도시가 가진 뜻이 아니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에센은  9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뉜다. 에센 남부에 위치한 우리 동네의 초입에는 마을 이름 '베덴 Werden'이 걸려있다.

다른 동네에는 이러한 조형물이 없어서 더 특별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밤이 되면 불이 들어와 마음 한편에 작은 등불이 켜지는 느낌을 받는다.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 동네는 Werden은 아니지만 Werden을 거치지 않고는 Essen 내에서 이동이 불가능하며 아주 인접해 있어서 편의상 Werden에 산다고 말한다.)


werden은 '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이며 '~할 것이다'라는 미래시제로 표현할 수 있다. 동네의 의미와 단어의 뜻이 일치하는지는 모르지만, 단어의 의미가 긍정적이기에 우리 동네를 떠올리면 무엇이든 될 것만 같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샘솟는다.


장래희망 칸을 자신 있게 채우며 당찬 포부가 있던 초등학생 때의 나의 모습은 옛말이 되어버렸고 성인이 된 나를 보며 남편, 그 시절 남자친구는 내게 물었다. "왜 꿈을 꾸지 않느냐고."

어느새 그저 꿈이 되어버린, 케케묵은 공책에 적혀 있을 나의 꿈을 살며시 열어본다. 남편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온 이 독일 땅에서.


Essen Werden에서 보내게 될 나의 30대는 무엇이든 꿈꾸고 무엇이든 되어보는 의욕적인 삶으로 그려지길 바라며 오늘도 우리 마을에서 살아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