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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백송자 Feb 15. 2024

누들대전

잇다 누들, 잼 있다 대전

다시 찾은 소제동, 의외로 조용하다. 어제 늦은 시각까지 분주했던 흔적만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환경미화원이 이른 새벽부터 구석구석 지웠지만, 혼잡했던 사연들은 다 쓸어가지 못했다. 누들대전 축제장이다. 


 대전은 일제 강점기부터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의 교차점 배후도시로 성장했다. 한국전쟁 초기에는 대전이 20여 일간 임시 수도가 되었고 많은 피난민이 왔다. 미군의 무상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공급되면서 이를 이용하여 만든 누들* 음식이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지금도 칼국수는 대전의 대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면의 도시, 대전의 대표 음식문화 축제가 올해 처음으로 대전역 동광장 인근 소제동 일원에서 열렸다. ‘잇다 누들, 잼 있다 대전’이라는 주제다. 


 소제동은 최근 핫한 플레이스이다. 옛날의 가옥을 개조하여 카페와 식당이 들어섰고 이와는 달리 또 한쪽에는 무너져 내리는 가옥이 출입 금지하는 노란 줄로 갇혀 과거와 현재가 엇박자로 어우러져 있다. 누들로드에서 바라보는 소제동의 풍경을 통해 역사를 배우며 미래를 설계한다. 대전시에서도 누들대전 페스티벌을 이곳에서 개최함으로써 전통을 알리고 앞으로 지역 특색문화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인파가 많이 몰리는 시각을 피해 왔다. 누들로드는 안전과 행사 요원들이 제 임무를 수행하느라 바삐 움직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을 떼며 축제장을 둘러본다. 닫힌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국수 내음을 상상하기도 하고 야외테이블에 앉아 후루룩후루룩 국숫발 건져 올리는 소리도 귀로 모으며 집중한다. 면 이름이 생소한 가게들이 많다. 낯설지 않은 대전 가락국수 푸드 트럭 앞에서 발을 멈춘다. 김이 모락모락 나던 대전역 가락국수 그 풍경이 그려진다. 나무 전봇대 위로 태풍 카눈의 잔해인 듯 먹구름이 가는 비를 흩뿌리며 슬쩍 지나가기도 한다. 


 배고프던 시절, 열차를 기다리며 선뜻 지갑을 열지 못했다. 그 당시 급행열차는 있었지만, 차비도 비싸고 굳이 바삐 오가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완행열차를 주로 타고 다녔다. 지금은 열차가 역에 도착하면 곧바로 출발하여 바깥에서 무슨 볼일을 본다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꽤 오랜 시간 열차가 정차하곤 하였다. 그 막간을 이용해 후다닥 먹는 경우가 많았다. 우동 같은 굵은 면발이기에 후루룩 먹기가 쉬웠다. 멀건 멸치육수에 김 가루와 고춧가루 풀어 면을 올린 그 가락국수, 내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없었기에 가끔 허기가 지는 날엔 지금도 침이 고인다. 


 가락국수는 혼자 먹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음식이었다. 느긋하게 앉아서 먹는 게 아니라, 서서 먹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옆 사람과 다닥다닥 붙어서 먹다 보면 느닷없는 팔꿈치 강타로 국물이 쏟아지기도 하였다.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매사에 허기는 졌을지언정 마음은 풍요로웠다. 상대방의 부주의에 눈을 부릅뜨고 싸우려 들기보다는 크게 다치지 않고 이만하길 다행이야, 스스로를 다독였다. 볼멘소리를 내뱉지 않고 삼켰기에 벽이 없는 가락국수 식당은 늘 따뜻했다. 


 후루룩 건져 올리는 국숫발 소리에 저마다 각진 표정을 풀었다. 하루치 고단함을 지우고 일터이든 보금자리이든 무사히 도착하여 일상을 이어갔다. 가난하였어도 우리네 삶은 날이 서지 않았고 두루뭉술하게 서로서로 어깨를 아낌없이 내주곤 하였다. 지금도 가끔 나는 사방이 모서리인 현실을 마모해 줄 뭔가를 찾기 위해 국숫집을 기웃거린다. 그간 놓쳐버린 둥근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싶어 누들로드에서 주위를 살핀다. 


 다양한 국수 메뉴가 푸드존마다 적혀있다. 가락국수 5,000원, 지난 추억을 건져 올리고 싶다. 야외용 테이블이 대전역 플랫폼의 자리라 여기며 엉거주춤 앉아 굵은 면발을 젓가락으로 누르고 먼저 국물을 들이켠다. 옹골차게 국숫발도 후루룩 먹는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여러 번 반복하여도 추억의 맛이 아니다. 온몸을 훑고 지나가던 시원함 대신에 밋밋함이 입안에 남는다. 내 몸이 기억하는 맛의 농도가 세월 따라 옅어진 듯하다. 그래도 한 그릇의 가락국수를 먹고 나니 개운하다. 


 누들로드를 살짝 벗어나 소제점방이 있는 골목을 다시 걷는다. 골목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이곳은 아무 때나 불쑥 찾아와도 고향 동네처럼 푸근하다. 


*달걀과 밀가루로 만든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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