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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 실어 띄우는 편지

6.25 전쟁 75주년 기념 헌정시

by 이운수

어머니,

저는

철원의 야산에

묻혀 있습니다.


그날 이후

비가 고인

참호 아래

누워 있습니다.


별은

밤마다 총소리를 지우고,

달은

조용히 전우들을 덮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봄도 여름도

제 발 밑에서 피어납니다.


제 군화 속엔

잔디가 뿌리내렸고,

녹슨 철모 위엔

민들레가 웃고 있습니다.


제 곁에 누운 친구는

이름표가 바래

이젠 누구인지 모릅니다.

다만,

그의 오른손이

늘 저를 향해 뻗어 있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왜 싸웠느냐고,

저는

물어본 적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마

그것이 제가 여기 묻힌 이유일까요?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비겁하지 않으려 했고,

도망치지 않으려 했고,

무서웠지만

말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제는

총도 녹슬고,

저도

풀에 스며들었지만,

그 모든 순간에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군이었습니다.


어머니,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몸이 스러진 자리에

이 나라가 자라고 있습니다.


다만 한 번쯤

누군가 제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비 오는 날

참호 위를 지나는 발걸음에도

저는 조용히 인사할 겁니다.


어머니,

이 편지는 부치지 못하지만

매일 밤

별에 실어 띄웁니다.

달이 당신 창가에 머무르면

그게 제 안부라 생각해 주세요.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어머니.



6.25 전쟁 75주년을 맞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한 국군 장병의 목소리를 빌려 써 본 헌정시입니다.

밤하늘의 별빛이 닿는 그 어딘가에서, 그들의 이름이 한 번쯤 불리기를, 그리고 긴 세월 속에서도 잊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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