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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May 04. 2023

[D+16] 애증의 섬

뤼다오


 인복이 있는 것 같다.


 어제 긴팔, 긴바지에 양말까지 신고 긴팔 위에 바람막이까지 입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피부를 확인해 보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 휴. 천만다행이다. 오늘 아침 10시에 스노클링 신청해 놓은 것이 있어 대략 아침 동선을 생각해 보았다. 눈을 뜬 시각은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씻고 화장을 하고 편의점에 가서 커피 한 잔 사 오고 싶은데 걸어서 약 20~30분 거리다. 음. 왕복 1시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조금 더 뒹굴거리다가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숙소 로비로 나갔다.


 10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숙소 사장님이 보이지 않는다. 로비에는 사장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바이크를 빌린 사람, 나처럼 스노클링을 신청한 사람, 그리고 내 룸메이트. 내 룸메이트의 이름은 캐롤이다. 숙소 밖 계단에 앉아있는 캐롤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갔다. 캐롤! 룸메가 돌아본다. 오, 헤이. 내가 뭘 하냐 묻자 사실은 어제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거기다가 빌린 스쿠터 배터리가 나갔는데 스쿠터 빌린 가게가 문을 안 열었다고. 그래서 숙소 사장님께 스쿠터샵에 연락을 해 봐줄 수 있는지 물어보려 기다리는 중이라 했다. 그녀의 여행도 다사다난하구나. 안타까운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캐롤이 나보고 여기서 뭐 하냐고 되묻는다. 나는 스노클링 신청한 게 있어서 그거 기다리는 중이야. 캐롤이 관심을 보인다. 해보고 후기 말해달란다.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오케이! 대답을 했다. 10시가 조금 지나자 멀리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웃통을 여전히 벗은) 사장님이 보였다.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난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장님에게 '스노클링?' 하니까 자기 오토바이 뒤에 타란다. 그러더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이빙샵에 내려주었다.


 스노클링은 아주 재미있었다. 필리핀에서 스노클링은 질리도록 해봐서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대만에서 하는 스노클링은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배를 타고 어느 정도 나가야 볼 수 있던 광경이 뤼다오에서는 해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도 보였다. 뤼다오는 바다 밑이 온통 돌이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보고 신기하게 생긴 돌도 봤다. 니모도 봤다. 중간에 강사님이 식빵 조각을 줘서 부시니 물고기들 무리가 내게 다가왔다. 식빵을 다 주고도 아쉬워서 손가락을 쫙 펼치고 있는데 어떤 물고기 한 마리가 내 손을 식빵으로 착각했는지 물고 지나갔다. 생각보다 꽤 아파서 놀랐다. 같이 스노클링을 하는 사람 중에 혼자 온 사람은 나와 어떤 남자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가족이었다. 한국분 같아서 '저기, 혹시..' 하고 말을 거니 'Sorry?'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 어디서 오셨어요? 물으니 대만 사람이란다. 대만도 은근 다인종 국가다. 윗 지방 사람들과 아랫 지방 사람들의 외모가 확실히 다르다.


 그 남자분 덕분에 스노클링 내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설명을 온통 중국어로만 해주는 강사님을 대신해서 그분이 중간중간 영어로 번역을 해주셨다. 세심한 배려 덕에 스노클링 하는 내내 어려움 없이 따라 할 수 있었다. 혼자 왔냐 물으니 부모님과 왔는데 스노클링 하시기엔 연세가 너무 높으셔서 자기만 왔단다. 그 대답이 귀여워 웃었다. 스노클링 하고 나서는 빌린 차가 있어 그걸로 움직인다 했다. 나는 스쿠터를 빌릴지 말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오전에 스노클링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그 와중에 룸메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네? 그녀가 묻길래 대답했다. 응. 그러니 언제 왔냐 한다. 한 30분쯤 전? 잠시 대화를 하다가 그녀는 친구를 기다린다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물놀이를 해서인지 배가 고팠다. 일단 밥부터 먹어야지. 숙소를 나서는데 캐롤이 바다를 보며 서있다. 위에는 비키니 차림, 아래는 반바지. 그리고 선글라스. 캬. 그래. 저게 멋이지. 그녀는 타이페이서 왔다는 데 꼭 캘리포니아에서 온 것 같다. 멋지다. 걸어가는데 캐롤이 뒤돌아 본다. 하이. 나도 대답했다. 하이. 그리고 내가 점심 메뉴를 추천해 달라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른단다. 보통 세븐일레븐 가서 때운다고. 어제도 세븐일레븐에 간 참이라 오늘은 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다. 다른 곳은? 하고 묻는데 저 멀리서 자기 친구가 온다고 말했다. 곧이어 도착한 캐롤의 친구. 루시 Lucy. 와, 밝은 사람. 시끄럽지 않아도 그 에너지 차제가 크고 밝은 사람이 있다. 루시가 그랬다. 둘이서 중국어로 뭐라 뭐라 말을 하더니 나보고 루시가 자기가 아는 식당 앞까지 데려다주겠단다. 와. 완전 럭키다.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 편하게 식당 앞까지 갔다. 루시가 식당 안까지 같이 들어가 메뉴 설명을 해주었다. 밥이 먹고 싶었던 차라, 밥 메뉴인 치즈 치킨 커틀렛을 시켰다 (아니면 면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음료는 해초랑 타피오카펄, 각종 과일이 들어간 음료를 하나 시켰다. 가격은 두 개 합해 360위안.



 사장님들이 두 분이셨는데 아주 유쾌하신 분들이었다. 덕분에 어제는 하지 못했던 일을 많이 했다. 웃기. 밥을 다 먹고 식기를 반납하려는데 사장님 한 분이 맛이 어땠냐 묻는다. 好吃! (맛있어요!) 대답하니 웃으셨다. 아, 이제 스쿠터를 빌려야 하는데 밖은 완전 땡볕이다. 1시에서 2시 사이가 가장 뜨거울 때인데 밥을 다 먹고 나니 1시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남은 음료를 마시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데 주인분이 스쿠터를 빌렸냐고 물어오셨다. 아니요. 근데 빌리고 싶어요. 하니 자신의 친구가 렌탈샵을 하는데 소개해줄까? 물으신다. 어차피 스쿠터 가격은 다 똑같은 것 같아 해 달라 말했다. 조금 있으니 사장님 친구분이 직접 나를 픽업하러 오셨다. 그분의 오토바이 뒤에다 조금 달리니 렌탈샵이 나왔다. 사장님의 친구분은 한 할아버지께 중국어로 뭐라 뭐라 하시더니 사라지셨고 할아버지께서 스쿠터 조작법을 설명해 주셨다. 이 분이 진짜 사장님이신가 보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몸소 하나하나 보여주시며 설명을 해주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웃고 계신다. 이미 여기서 신뢰감 팍팍 상승. 어제 하도 데어서인지 그냥 웃는 사람이면 다 좋은 상태다. 컨딩에서 그래도 스쿠터를 몰아본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덕분에 새로운 스쿠터에도 바로 적응했다. 한번 타보라는 사장님의 말에 스쿠터를 타고 주변을 살짝 돌았다. 컨딩에서 빌린 스쿠터보다 더 부드럽다. 회전도 잘된다. 마음에 든다. 렌탈료는 하루에 600위안. 여권을 달라할까 봐 챙겨갔는데 그냥 이름과 전화번호만 물으시고 다른 건 요구하지 않으셨다. 아무래도 섬이라 그런가? 잃어버려도 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너무 쉽게 빌려주신다. 돈을 내자 셰셰, 하시는 사장님을 따라 셰셰, 라오반. 했다. 스쿠터를 몰고 어제 못 가본 방향으로 달렸다.


내 두 번째 스쿠터

 어제와 다른 방향으로 향하자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스쿠터 안 빌렸으면 후회할 뻔했다. 가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오는 광경에 황홀했다.

 


 어디서 찍어도, 막 찍어도 그림이었다. 속이 뻥 뚫리는 장관이었다. 컨딩은 쾌적하지만 어딜 가나 사람이 있다면 여긴 조금 더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없다. 도로는 훨씬 험하고 커브길도 많았지만 컨딩처럼 바람이 많이 불지도 않았고 차가 많이 다니지도 않아 개인적으로는 뤼다오가 운전하기 더 편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쿠터를 타다 넘어졌다. 흙탕물에서 자빠졌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 향하는데 온통 자갈밭에 물웅덩이가 있어 불안 불안하긴 했다. 그리고 마지막 물웅덩이에서 결국, 넘어졌다. 다행히 혼자 넘어졌고, 아스팔트 바닥이 아닌 진흙탕이라 크게 다치지 않았다 (샤워할 때 보니 허벅지에 멍이 크게 들긴 했지만). 무엇보다 스쿠터가 아무 문제없는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모래 때문에 더러워진 것 빼곤 크게 이상이 없는 것 같다. 


 놀란 마음에 바로 스쿠터를 돌려 숙소 쪽으로 향했다. 세븐일레븐에 들러 저녁과 맥주를 사서 숙소로 갈 참이었는데, 여기서 또 룸메를 만났다. 인연이 있긴 한가 보다. 아까 스쿠터를 타고 산을 돌아다니다가도 마주쳤는데. 반가운 마음에 이름을 부르자 아는 척을 한다. 스쿠터를 타다 넘어졌다 하니 괜찮냐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저녁을 사 숙소 근처까지 스쿠터를 타고 왔다. 바다를 보며 같이 저녁을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어디에 사나 요즘 젊은 사람들 고민은 똑같은가 보다. 캐롤이 좀 더 행복해지길, 마음속으로 작게 빌었다. 내가 보기엔 참 부러운 점이 많은 친구인데 역시 누구나 각자의 문제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오늘 캐롤 덕분에 뤼다오에서의 기억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캐롤을 만나 루시를 만났고, 루시를 만나 식당 주인 분들을 만나고. 식당 주인 분들을 만나 좋은 스쿠터샵을 알게 되고. 그리고 스노클링에서 만난 분까지. 오늘은 하루종일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 아무래도 인복이 있는 모양이다.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해가 예뻐서 그냥 웃었다. 그래, 인생.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는 거다.


 어제는 빅 X을 주더니 오늘은 또 큰 선물을 준다. 이런 게 인생인가 보다. 


아, 그리고 꼭 남겨두고 싶은 스쿠터를 타며 배운 교훈


 1. 브레이크 잡을 때가 제일 위험하다. 브레이크를 잘못 걸면 오히려 넘어지거나 사고 난다. 애매할 땐 그냥 달리는 게 낫다.


 2. 장애물을 피하려 하면 오히려 더 큰 장애물을 만난다(넘어진다). 피하느니 그냥 부딪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내일은 뤼다오를 떠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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