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한계
'표현이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으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서 방어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하며 오히려 상대에게 날을 세우게 된다.
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잘못된 것 같긴 하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생각을 틀게 된다.
다만 '인정하기 싫지만'을 떼어내는 과정이
너무 어렵다.
가끔은 영영 안 되기도 한다.
그건 나의 오랜 가치관이나 습관의 한 부분을 부정해야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을 잘하는 사람들을 존경해왔다.
치졸한 자존심 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치졸한 나는 어떤가.
지적당할 때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줄 온갖 자료들을 찾았다.
더 이상 뒷걸음질 할 곳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찌질하고 유치하지만 지적당하는 건 그만큼 싫다.
그건 민망하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이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을 줄이기 위해 내가 찾은 방법은,
상투적이게도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 눈 앞에서 지적당하지 않고도 언어 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
비거니즘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는, 채식을 하는 친구에게
"솔직히 고기 먹고 싶지?", "식물은 안 불쌍해?" 같은 장난 섞인 말이 얼마나 무례한지 알게 됐다.
고유한 존재로 어린이를 바라보는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서는 어린이들을 뭉뚱그려 '초딩'이나 '잼민이' 같은 말로 희화화하지 않기로 했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내 언어를 돌아보게 된다.
모든 책은 저자가 사랑하는 무언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으로 쓰여졌기 떄문이다.
간접적으로 그 시선을 체험하고 저자의 마음을 헤아리면 '그런 말은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지.' 하고 공감하게 된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기에, 우리는 좀처럼
이 바깥을 상상할 수가 없다."
- 배윤민정,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푸른숲
가족 호칭의 불평들을 다룬 이 책은 비단 비대칭적 호칭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호로써의 언어를 넘어, 언어가 은밀하고 뭉근하게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방식을 지적한다.
무의식중에 쓰는 말에도 권력이 있고 위계가 있음을,
그것이 누군가를 무섭게 짓누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말이 정말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신혜원, <오늘도 밑줄을 긋습니다>
남에게 본인의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당할 때
누구든 기분이 좋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지적의 내용이 맞다면
그것을 잘 수용하고 본인의 성장과
변화의 계기로 바로 삼는 사람들이 있고,
끝까지 본인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투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증명을 해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끝내 증명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인정하는 모습이 된다면,
더 본인의 모습이 초라해져 보일 수 있습니다.
보통 사소한 것이라면 그 자리에서 수용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겠지만,
사소한 것이 아닌 본인이 오랫동안 지녀왔던
습관이나 가치관의 영역이라면 더 반발심이나 저항감이 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영역의 문제까지 겸허히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태도와 자세를 가진 사람은 열린 마음과,
사고의 유연함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와 자세는 본인의 성장과 발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맞다,
내가 틀릴 일 없다.
내가 해오던 게 맞다,
내가 해오던 방식이 맞다,
내가 생각해오던 가치관이 맞다만 강하게 견지하고 고수만 한다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겐 오픈 마인드와 포용성이 필요합니다.
책에는 수많은 검증된 언어가 존재합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언어의 감수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문맥과 상황에 맞는 언어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사용하던 언어를 돌아보게 되고,
적절하지 못한 언어 사용들에 대해 반성하고 더 나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
- 비트겐슈타인.
인간은 언어라는 한계 안에서 생각하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언어로 정의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언어 밖의 세계는 인간이 인식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합니다.
즉, 인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것이 언어고,
그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언어 밖의 세상을 인간이 인식하고 서로 공유하고 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언어 = 인간의 세계
라는 것이 과언이 아닌 것이죠.
그만큼 인간에게서 언어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언어가 갖는 의미가 이러하니 당연히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게 됩니다.
말이 씨가 되듯이 말을 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며 일이 이뤄집니다.
그래서 최근 유행처럼 번져가는 '확언하기'도 이러한 맥락이라 보시면 됩니다.
말이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에,
무의식도 자극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자주 말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으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재석, 이적의 '말하는 대로'라는 노랫말처럼 말하는 대로 이뤄집니다.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것을 두고
다양한 표현 방식이 있는데,
'끌어당김의 법칙'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말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기에
권력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정치를 하는데 말, 언어를 잘 활용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권력자들의 언어와 말'을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말로 인해 생각의 프레임이 완전히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 권력자들의 말과 언어를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수용하고 사용해서는 안 되며,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수용 및 사용해야 합니다.
말 하나가 상대방의 기분을 좌지우지,
심지어 목숨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
상대방에게 말을 할 땐, 한마디 한마디 신중을 기해 말을 하도록 합니다.
글은 쓰고 지우고 수정할 수 있지만
말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예쁘고 건강한 말,
상냥하고 친절한 말,
따뜻하고 위로와 위안이 되는 말,
힘이 되어주는 격려와 응원의 말을 많이 해보는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