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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May 08.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31. 인간조명



누구나 타인을 통해 괜히 좋거나 괜히 싫은 감정을 경험한다.  


2017년 가을, 하루이틀 독일에 머문 적이 있는데 길에서 스친 사람들 때문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얼굴이며 몸에 불이 들어온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대체로 은은하고 잔잔한 미적 조명이었지만 가끔은 밝고 화려한 조명도 있었다. 호텔에서 마주 친 사람, 서점에 온 사람, 식당 옆자리에 앉은 사람 중에서 인간조명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고 독일 티브이로 독일사람을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사진은 식당에서 마주 친 여든이 넘은 독일할머니시다. 저만치 혼자 앉아 계신 이 분을 봤을 때 온 몸에서 우러나는 밝은 기운에 압도 당해 다가가 말을 걸었고 허락을 구해 사진까지 찍었다. 지금은 아무리 살펴봐도 내가 그때 뭘 가지고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진 속 할머니는 여전히 밝은 느낌이지만 내가 그때 거기서 보았던 그 조명과는 차이가 있었다. 


타자를 인식하는 출발점이 이와 같은 감각임을 전제한다면 사람의 주관이 왜 가끔 허무맹랑함을 넘어 섬칫함으로 다가오는지 조금은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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