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돌아오면 늘 불도 켜지 않은 채 바닥에 쓰러지듯 누웠다. 머릿속엔 온통 낮에 처리한 자회사 IPO재무 자료들과 회장님 보좌 업무의 긴장감이 가득했다. 또래보다 취업이 빨랐고 남들이 보면 그럴듯해보이는 커리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 적성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매일 기운과 진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결국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남편이 '그만 두자'며 내 손을 잡았다. 그렇게 자회사 상장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서 자회사의 경영지원팀 소속으로 배치됐던 나는 다시 본사 기획팀 소속이 되었고, 사표를 던졌다. 그때는 그게 우울증인 줄도 몰랐다. 그저 내 소중한 20대의 조각들이 그 차가운 사무실에서 낭비되었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만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더라면 더 행복했을 텐데." 자책하며, 그 시절의 경력은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블랙홀 같은 시간이라 여겼다.
퇴사후 2달 동안은 엄마랑 동생이랑 여행도 다니며 퇴직금으로 받은 돈을 펑펑 쓰고 놀았다. 그런데 딱 두달. 두달이 지나니 뭔가 허무해졌다. 나는 앞으로 무슨일을 하고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알바라도 시작해볼까하고 구인 광고를 보는데 마침 오픈한지 얼마 안된 영어 학원에서 구인을 하고 있었다. 대학생때도 보습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잠깐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을 하고 영어 강사일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일하며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주고 관심을 주는 아이들 덕에 치유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게 내 길이지"라고 안도했다. 다시는 그 삭막한 기업이라는 세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내가 일반기업에 재취업하는 날은 절대 없을거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절대 쓸모없을 줄 알았던 그 낭비된 시간들이, 지금 내가 만든 에토스미래교육연구원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돌아왔으니 말이다.
에토스의 커리큘럼을 설계할 때, 내 손 끝에서 나온 것은 뜻밖에도 재직 시절 익힌 구조화된 사고였다. 드론이라는 기술에 인문학적 서사를 입히고, 그것을 비즈니스 모델로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에서 나는 예전의 그 자아를 다시 만났다. 아이들에게 단순한 기술이 아닌 윤리와 질서를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기업의 정점에서 차가운 논리만을 앞세웠던 시절에 느꼈던 결핍 덕분이었다.
만약 내가 그 고통스러운 우회로를 걷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입체적인 시각을 가진 교육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야 나는 과거의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 그때 흘린 눈물도, 천장을 보며 보낸 무력한 시간도 사실은 다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내 인생의 모든 우회로는, 지금의 나라는 결말을 완성하기 위한 아주 정교하고 완벽한 복선이었다고 말이다.
이 책은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아 불안한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옆길이, 사실은 당신만의 독보적인 서사를 만드는 중이라는 사실을 꼭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