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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란한 May 29. 2024

산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매력적인 산


산을 좋아하게 되고, 산을 오르면서 나는 많이 성장했다. 많은 걸 생각하며 배웠고 몸소 느꼈다. 물론 아직 배울게 더 많고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갈길이 멀었다.


산을 오르기 전의 나였다면 아마 내 불안한 마음을 다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산에 오르면서 배웠던 감정과 느낌들을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아마 당장 생각나지 않아 글로 적지 못한 것들도 많을 테지만)



1. 견디지 못할 것 같은 힘듦도 산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별것 아닌 것.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살아보니 매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지금 내게 닥친 상황이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마냥 영화 같더라도 산에 올라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그럴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린다. '내게 왜 이런 일이'에서 '나에게도 이런 일이'로 바뀌게 된다.


특히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 산 정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편안해진다. 나에게는 엄중하고 비극적인 내 개인적인 일이 우주의 티끌처럼 사소하게 느껴진다. 가끔 문제 해결을 위해 너무 무겁게 바라보기보다 가볍게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산에서 그러한 마음을 배웠다.




2.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 '과정'이 때론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

산을 오르겠다는 목표가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안에서 행복을 찾고 즐기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산에서 느꼈던 감정을 인생에도 접목해본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내가 그 과정 안에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해답을 찾고 나를 위한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면 그로써 목표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하면 정상을 찍고 내려오긴하지만 정상 도달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나의 역량보다 무리해서 올라가거나 급하게 내려오거나 해서 내 몸이 다치기라도 하면? 산행을 오래 쉬어야 할 수도, 아니 평생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 페이스에 맞게 지금 산행을 즐기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좋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현재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함을 몸소 배웠다.




3. 정상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객관화할 수 있는 것.

며칠 전에는 혼자 산을 올랐다. 그날은 혼자 산에 오르며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생각들을 멀리서 내려다보고 싶었다. 내가 내입장 안에서만 편협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남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면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사람 누구나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산에 올라가면 그런 나 자신의 객관화가 더 잘된다. 나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게 조금 더 쉽다. 산은 나에게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준다.


산에 올라 나 자신을 직면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산은 나에게  문제의 실마리를 준다던가 마음속 요동에 고요함을 준다. 그래서 자꾸만 산에 가게 된다.




4. 자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산에 있는 돌멩이, 낙엽, 나무, 새, 동물, 곤충들 다 너무 다양하다. 제각각 종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특성도 다르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제각기 살아낸다.


나무만 하더라도 모양과 크기가 다르고, 나뭇잎도 같은 초록계열이지만 다 다른 색을 지니고 있다. 초록색부터 청록색, 연두색, 진초록, 노랑에 가까운 색까지. 돌멩이도 같은 모양을 한 돌멩이는 하나도 없다. 하물며 자연도 같은 종 안에서 이렇게나 다른데 인격을 지니고 생각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더 그러할까.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싫어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냥 나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니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산속 자연에서도 배운다.

 

-저 새는 생김새는 안 예쁜데, 청아한 소리를 내네?

-저 나무는 작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잎이 커다랗고 멋지네.


있는 그대로에서 좋은 점을 찾아 들여다보는 것, 그것도 안되면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산에서 배운 것을 땅에 내려와 현실에 적용해 본다. (물론 잘 안될 때도 많지만.)




5. 올라갈 때 보지 못하고 내려갈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마음의 여유.

산을 올라갈 때는 헐떡거리는 숨과 흘러내리는 땀으로 주변을 볼 여유가 없다. 말 그대로 나 자신과의 사투를 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같은 산길이라도 올라갈 때의 풍경과 내려갈 때의 풍경은 확연히 다르다.


오르막과 내리막. 그 풍경의 시야가 다른 것도 있겠지만,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내려갈 때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라갈 때는 올라가느라 마음이 급급해서 바로 옆에 핀 예쁜 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따라 유독 푸르른 하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하산할 때는 올라갈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푸르른 하늘과 주변의 풍경들, 예쁘게 핀 꽃과 이제 막 올라오는 사람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는 사람을 마주치면 마음속으로 응원해주기도 한다. 올라갈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내려갈 때 더 잘 보이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에게 마음의 여유가 중요하구나 깨달았다.


모든 일에 있어 힘을 조금 빼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은 이토록 중요하다는 것,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보는 눈이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6. 오롯이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

산을 오른다는 것은 오롯이 나의 호흡과 내 발걸음에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오랜 시간이라는 점에서 산책이나 다른 운동과는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등산을 좋아하면서 산행이 조금 더 재밌게 느껴졌던 순간은 내 호흡을 내가 조절하면서 안정된 호흡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다. 내 호흡을 느끼며 그 호흡이 발걸음과 일치할 때, 그때부터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치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살면서 내가 이처럼 오랜 시간 내숨소리와 내호흡에 집중한 적이 있었나,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아마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못했을 것이다.


그런 특별한 경험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은 생각보다 컸다. 나에게 집중함으로써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잘 알게 되는 것.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나라는 친구와 더 친해지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7.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 겸허해지는 것.

산에 가면 위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절로 겸손해진다. 또 앞으로도 겸손하게 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굳건히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멋드러진 산을 보고 있자면 경외감이 들고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쉬어가지만 늘 같은 모습으로 한결같이 받아주는 산이 나에게는 마치 대인배의 모습처럼 비친다. 사람들이 쉼터 벤치에 앉아, 정상비석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내도 산은 고요하게 아무 말 없이 다 받아주고 들어준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대답할 뿐이다.


산은 마치 근심과 걱정은 내게 다 쏟아내고 가볍게 돌아가라고 무언의 말을 해주는 것 같다. 침묵으로 그런 위로를 주는 산이 나는 존경스럽고 또 멋지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산을 닮은 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8. 자연스러움, 그대로의 아름다움.

산을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러움을 좋아하게 된 건지, 자연스러움을 좋아해서 산을 좋아하게 된 건지 전후관계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자연스러움을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 현이를 좋아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워서였다. 옷차림도 행동도, 말투도 꾸밈없이 자유롭고 자연스러웠다. 운동을 끝내고 막 온 듯한 편한 옷도 자연스러워서 멋졌다.


산에 올라가면 평소에 잘 느끼지 못했던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평소 자세히 보지 않았던 땅, 나무, 꽃, 바위 등이 신기하게도 제각각 예쁘다.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신기하지 않은 게 없고 그대로가 예쁘다. 산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원으로 자연 속에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더 빛을 발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소 느끼면서 자연스레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오래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또 깨끗한 자연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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