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20대 후반, 어린 나이에 대표로서 8년 동안 최선을 다해 두 회사를 운영해 왔다.
매일같이 함께 고군분투하던 50명 가까이의 직원을 뒤로하고 내 애정 가득했던 여러 공간들을 두고 나오는 날
마무리를 준비하는 나의 마음과 새로운 시작에 들떠있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퇴근일에는 밤늦게 회사에 남아 괜스레 곳곳을 둘러보면서 혼자 갖은 추억을 곱씹었다. 사내 인테리어를 하느라 시공팀과 함께 동이 틀 때까지 밤을 새운 기억이며 마음에 드는 조명을 찾으러 국내에 있는 조명회사는 전부 뒤져본 듯한 나날들, 가구 소품 하나하나 열심히 꾸려온 회사인데 나 다음 누가 이 자리를 메꾸게 될지.
퇴사할 때의 여느 직원들처럼 나를 대신할 다음 사람이 궁금한 마음은 대표도 똑같다.
퇴사일이 정해지고 나서 몇 주 전부터는 하나씩 하나씩 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책상정리를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정리 좀 잘해야지.라는 다짐은 항상 한다.)
신조어인 데스크테리어(deskterior)라는 단어가 있더라. '데스크(desk)'와 '인테리어(interior)'라는 단어가 합쳐진 단어라고 한다. 내가 오래 머무는 공간인 회사 내 책상과 자리를 내 취향대로 꾸미고 정리해 두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나 역시도 평소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는 자잘한 것들을 회사에 많이 가져다 두는 스타일인 데다가 매일 생겨나는 서류나 자료는 나중에 다시 볼 거야. 하면서 쌓아두곤 했다. 꾸미는 것에 치중되어 있지만 정리의 부분은 제외되어 있는 데스크테리어인 것 같다.
'대표님, 짐 많으시면 도와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아. 내가 조금씩 하면 되어요!'
나 혼자 살금살금 짐을 챙기고 있자면 직원들은 조심스레 물어오곤 했다.
서로가 좀 더 묻고 싶고 무언가 전하고 싶은 다양한 마음을 삼키면서 우리는 조용히 헤어짐을 준비했다.
오랜 기간 기다려서 구입한 그림, 매일 물 주며 새 순이 나왔나 확인하던 화분은 내 콩알만 한 아쉬운 마음과 함께 두고 가기로 했다. 그림은 꽤 존재감이 있는 탓에 떼가고 나면 왜인지 나의 남은 빈자리를 더 크게 만들 것 같아 마음에 걸렸고, 화분은 집으로 데려가봐야 냐옹이들의 호기심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 뻔했다. 남겨두고 가는 것이 물도 햇볕도 잘 볼 것 같다는 마음. 잘 자라길!
책상에 여럿 올려두던 내 사진들, 그리고 짧지 않던 시간을 증명하듯 쌓여있는 수많은 명함들도 잘 챙기고
서랍을 열어보니 뭐가 이리도 많은지..
직원들이 써준 편지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볼 때에는 마음이 뭉클뭉클했다.
회사에 많은 시간을 있었던 만큼 내 집을 이사하는 것처럼 짐을 챙겨도 챙겨도 끝이 없다. 데스크테리어가 아니라 데스크 테러리스트(terrorist)인 것 같은데?
평소에 정리 좀 잘할 걸 그랬다.
20대 후반. 의료 업계와 전혀 상관없던 내 커리어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병원 입사.
초기에는 실무자로 입사해 병원 곳곳의 일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반적인 회사와는 다른 특수한 업종이다 보니, 회사에서 평범하게 일하던 내가 단기간에 병원 사람이 되는 것은 당연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병원 직원들의 단단하고도 두꺼운 분위기는 병원 사람이 아니었던 나를 밀어내기 바빴고. 나는 병원에서 숙식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빠르게 그들 속에 파묻혀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내가 그들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고, 나아가 닥터들 까지도 관리하며 병원과 법인의 대표까지 올 수 있던 것은 내 유난스러운 열정, 에너지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직원이었지만 리더처럼 일했고 리더일 때에는 꼭 내 회사의 대표처럼 밤낮을 연구하고 고민했다.
퇴사하고 며칠간 잠시 의도치 않은 휴식기간이 있었는데 이 기간이 나는 너무 힘들었다.
항상 회의. 미팅. 컨펌이 종일 바쁘게 가득 차 있던 내가 갑자기 일에서 떠나게 되니 갑작스레 주어진 휴가에 나 자신이 어색해서 참을 수 없었다. 매일 공부만 하던 고3에게 갑자기 놀아라. 하면 막상 무엇을 하면서 놀아야 할지 모른다는 그 심정이 딱이었다. 수년간 이어온 삶의 루틴이 바뀌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짐이 당연하다. 주변에서는 이런 시기에 좀 쉬라며 나를 안심시키는 말들을 건네왔지만 일상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허전함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얼른 다시 바빠지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 가득 차올랐다.
당연히 오랜 기간 쉬어갈 것은 아니었고 (그럴 성격도 아니고)
기존 회사 분야의 확장성을 갖고 병원 경영 전문회사(MSO)를 새로이 설립했다.
나는 앞서 말했듯이 원래 병원 관련 직종의 사람이 아니었지만 우연한 기회로 병원의 관리자로 입사해 실무를 배우고 병원과 MSO , 헬스케어 연계사업 법인의 경영까지 하게 된 특별하고도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 병원의 인하우스로 경영과 모든 운영을 했던 과거를 바탕으로, 그리고 원장님들의 수많은 고민을 들어드리고 해결안을 제안해 드리던 경험을 살려 더 다양한 분야의 병원장님들과 더 큰 헬스케어 시장을 바라보고 내린 결정이다.
다행히도 다시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가려니 해야 할 일이 많다!
회사 BI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회사 소개서 만드는 것 등 회사 모양새를 잡는 것이 우선인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니 재미도 있고. 회사 초창기의 내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아 마치 시기로 돌아간 것처럼 에너지가 다시금 샘솟는다.
더 잘해보자!
나는 최근 1년간 병원경영. MSO에 관련된 책을 집필했고 드디어 이번 해 가을 출간 될 예정이다. 일하면서 쓰다 보니 오래도 걸린 것 같다. 주말 밤낮 업무 중간 틈날 때에는 당연하고 이동하는 차에서도 쓰고 비행기에서도 쓰고 열심히 집필한 나의 첫 책이 어떻게 나올지 너무 기대된다! 다음 책을 준비하면서 이곳 브런치에도 열심히 내 글을 담아봐야겠다.
수년간 회사를 경영하면서 맞닿게 되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
MSO 병원 경영, 헬스케어 관련 연계사업에 관한 경험과 정보들
의료 업계 관련 이야기 등 내 모든 관심사에 대해서도.
나의 모든 이야기를 편하게 이곳에 남기고 싶다.
mso 병원경영 병원운영 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