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구성하는 팀들 - CS_고객관리팀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 있어서일까. 아파서이던지 관리 차원에서 던 지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그저 환자로서 내원하는 것이 아닌 운영적인 측면에서 병원을 바라보고 방문하게 된다. 나는 견학 가는 학생처럼, 혹은 다른 경쟁사를 염탐하러 가는 스파이처럼 다양한 병원들을 최대한 많이 내원해 보고 경험해 보는 스타일이다.
직업병인지. 병원에 예약을 시도할 때부터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유선 상담만 진행하는 병원인지, sns 상담도 잘 이뤄지는 병원인지의 여부부터
예약전화를 시도하는 순간에는 내 기준대로 대기시간을 체크해 보기도 하고, 전화를 받는 순간에는 현재 나의 인콜을 받는 곳이 병원 내부 실무자인지 혹은 원내와는 별개로 콜 센터가 따로 구축되어 있는 병원인지 등을 생각해 보곤 한다.
내가 컨설팅했던 강남소재 의원의 경우에는 주 고객층이 거의 50-60대로, 한 달 평균 방문객이 800-1000명에 이르는 정신없이 바쁜 병원이었다.
처음에는 데스크에서 대면응대와 유선응대를 모두 담당하고 있었다. 이 시기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병원이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환자들은 데스크에 마주 서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기 바빴고, 전화벨은 이를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댔다. 데스크 직원들은 바로 앞의 환자를 상대하는 동시에 전화기 속 너머의 환자와도 소통해야 하는 상항. 이미 동시에 업무를 처리하는 멀티업무의 선을 넘어선 지가 오래였다.
멀티에 멀티를 거듭해야 하니 직원들의 기본적인 업무 진행이 제대로 될 리 없었고 응대도 성의껏 하질 못하니 하루하루 당연스럽게 환자들의 컴플레인만 늘어났다.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데스크 업무는 단순 환자응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처리할 행정적인 일도 있고 서류업무도 있고 진료실 안의 원장들과도 계속 소통하며 업무를 봐야 하는데, 자리에 앉는 순간 온갖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환자들을 응대하느라 지치는 것은 당연했고 이는 소중한 직원들의 잦은 퇴사로 이어졌다.
개원 초기 2-3년 동안은 별다른 방안을 도입하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룬 채, 몰려드는 환자들을 상대하며 정신없이 흘러갔다. 아침마다 울리는 모닝콜 소리가 종일 사방에서 들리는 것과 같은 원내의 엄청난 전화벨 소리는 분명 마음속에 숙제처럼 남아있는 찜찜한 부분임이 확실했다. 하지만 병원에 별도로 전화를 받을 수 있게 세팅할 만한 여유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데스크 직원들도 정신없는 업무에 익숙해진 것인지 별문제 없이 잘 버텨주고 있는 탓이었다.
그러던 와중 나는 의원과는 별개의 사업체로 병원을 경영관리하는 MSO 법인을 설립하게 되었고 그 시기의 내가 생각했던 제일 중요한 과제는 현재와 같은 복잡스러운 병원의 인상이 아닌 고급스러운 병원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알만한 이름 있는 호텔이나 여느 고급진 스파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제일 큰 부분은 조용하고 무게감 있는 첫인상이다. 나는 우리 병원도 이런 분위기를 갖도록 만들고 싶었다.
드디어 새로운 회사의 여유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되자마자. 나는 CS고객응대팀 세팅을 시작했다.
처음 세팅을 시작할 때에는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부족함이 많았다. CTI 프로그램(콜센터에서 사용하는 pc-전화기 연결을 기반으로 하는 콜 관리 프로그램) 도입도 하지 않은 채 단순 전화기 세팅으로 업무를 시작했었다. 돌이켜 보면 헤드셋도 없이 일반 전화기로 CS팀 업무를 했던 것이 어느 회사 이야기인가 싶다.
병원의 대표번호를 세팅하고 환자들이 알 수 있도록 알리는 것이 최우선 순위임과 동시에, 무엇보다 제일 큰 난항은 원내에서 쓰는 차트프로그램을 외부에서 연결해 동시에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차트프로그램은 당연히 환자의 기본적인 정보 외의 의료정보가 모두 기록되는 보안이 철저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아무 공간의 PC에 모두 설치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합법적으로 해소하고 세팅하기 위해서 우리는 통신사 업체와 차트 프로그램 업체, 서버업체 모두와 동시에 소통하며 마침내 온전한 CS팀을 세팅할 수 있었다.
인콜*과 아웃콜* 모두 CS팀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업무분장을 명확하게 하고 나니, 데스크 직원들은 본연의 업무와 내원객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전화연결이 어렵다고 소문 나 있던 우리 병원은 고객센터의 도입으로 내원객의 증가와 환자들의 만족도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인콜 : 전화가 유입되어 들어오는 것
*아웃콜 : 원내에서 환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
나는 CS 상담사를 5명까지 두고 센터(팀)를 운영했었는데 유선전화 인콜이 하루평균 130-150 콜인 것에 비해 카카오톡 문의는 10-20 건 정도로 유선문의가 90% 이상의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요즈음엔 다양한 시설들의 이용이 점차 디지털화 되어가는 사회의 흐름에 '디지털 약자'라는 말이 생길 정도인데 우리 병원에 내원하려는 어르신들이 카카오 플러스 친구로 우리 병원을 검색한 뒤 친구추가를 하고 챗봇의 사전 질문들을 통과한 뒤에 마침내 고객센터까지 연결되어야 하는 과정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주 환자층인 우리 병원과 같은 경우, 앞서 말했듯 카카오톡 보다는 유선문의가 주를 이루었다. 당연히 카카오톡 채널보다는 유선상담에 업무중요도를 더 가져가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카카오톡 채널을 무시하고 아예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카카오 채널 문의도 분명 환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소통도구가 되고 병원의 환자를 다양한 층으로 넓히려는 마케팅 전략에 분명 필요한 요소였다.
대신 카카오채널은 미미한 소통창구의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우리 병원의 소식을 알리는 것을 주 용도로 활용하기로 했고 원내에 카카오톡 채널의 친구추가를 독려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상시 진행했다. 데스크 직원들은 전화를 받지 않게 되었으니 그나마 여유로워진 시간에 환자들에게 카카오톡 채널의 친구추가를 유도했고 펜이나 메모지와 같은 소소하지만 나름 쓸모 있는 보상품을 내밀었다.
이렇게 진행한 결과, 수개월이 지난 후에 카카오 채널을 들여다본 나는 2000명 중반을 향해 가는 친구의 수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던 나 자신을 질책하며 이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직원들과 없애야 할지 유지해야 할지 고민했던 채널이 이렇게 많은 환자들이 우리가 보내는 소식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니, 역시 무엇이든 가능성이 있다면 쓸모없는 행위는 없구나.
나는 바로 카카오톡 채널 활용 안에 대해 회의하고, 원내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나 새로운 프로그램 등 병원의 정보전달, 즉 홍보의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당연히 환자층의 나이를 막론하고 분명 효과적이었다. 원내에 새로 런칭하는 프로그램이나 신제품 관련 정보 등을 보낼 때면 환자들이 보내오는 발 빠른 반응에 이보다 좋은 홍보채널이 없었다.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인력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고!
CS 팀에 매달 발생되는 환자 관련 이슈는 너무 너무나 다양하고도 다채롭다.
세상에 아무리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병원으로는 더욱이나 특이하고도 당황스러운 이슈를 만들어 주시는 환자분들이 많이 유입되는 것 같다.
이런 다양한 분들을 상대해야 하기도 하고 원내의 모든 이슈를 직접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부서이기도 하다 보니 여느 팀보다 기억에 남는 사례들이 많다.
이미 모두 확정되어 있는 원장님들의 진료일을 갑작스레 며칠 비워야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빈번하다. 갑작스러운 원장님의 개인적인 일정이 생기기도 하고, 학회 일정으로 어쩔 수 없이 변경되어야 하는 등 다양한 이유에서다. 이 경우에는 사전에 해당 시간대와 날짜에 잡혀있는 예약환자들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모두 이동시켜야 한다! 당연히 CS 팀에서 제일 난처하고 힘들어하는 아웃콜 업무가 될 수밖에 없다. 환자 입장에서도 병원에 가려고 비워둔 일정을 변경하고 또 미뤄져야 하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예약 변동 업무가 있는 날이면 CS직원들의 이석시간이 평소보다 눈에 띄게 줄고는 했다.
그리고 원내 혹은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쇼핑몰의 특정 이벤트나 물류이슈가 있어 문의콜 유입이 많아지는 경우.
이벤트 관련 문의전화는 그나마 낫다. 물류 이슈가 있는 날이면 전화기에 불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마다 CS 직원들은 해당 이슈가 발생된 주체 팀인 MD팀에 한마디 시원하게 하지도 못하고 그저 바삐 후처리를 담당해 주었다. 나는 이런 이슈가 있는 때이면 슬쩍 나가 달달한 간식이나 음료를 사다 주곤 했다. 헤드셋 너머 고객들의 모진 말에 귀도 마음도 따끔거릴 것은 구태여 묻지 않아도 당연했다. 달콤한 간식으로 입이라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산업안전 보건법 개정에 따라 상담원에게 폭언, 욕설 시 상담이 중단되며
고발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유난히 입이 거칠기로 우리 차트 프로그램의 메모창에도 '특별한 분'이라는 의미의 까만색 별이 엄청나게 달려있는 환자분이 있었다.
내 방에서 여느 때와 같이 업무를 보고 있는데 CS팀 업무메신저의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특별하신 환자분이 본인이 원하는 때에 예약해 주지 않는다며 또 거친 말, 심한 욕설까지 섞어가며 우기고 있는 탓이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빨리 오고 싶으신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병원 입장에서도 믿고 찾아주시니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원장님의 몸은 하나인데 동시에 몇 명의 환자를 볼 수도 없고 물리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우기시니 직원들은 그저 떼쓰는 어린아이 달래듯, 역정내시는 어르신을 달래듯 다양한 멘트들로 그 화를 어떻게든 사그라뜨려야 한다.
내가 제일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이 먹먹한 상황이 이런 상황이었다. 당장이라도 전화기를 내가 붙잡고 환자분께 속시원히 직접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뒤편에 서서 터무니없이 뱉어내는 욕을 듣는 직원을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이 속이 터지는 것이다. 몇 번을 내가 직접 응대하면 안 되겠느냐고 CS팀장에게 묻곤 하였는데 본인들이 처리하는 것이 맞고 더 낫다며, 단단한 직원들은 오히려 내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이런 특정 이슈들에 맞춰서 우리 CS 팀장과 나는 상황에 맞게 직원들의 kpi에 적당한 변화를 주며 매달 새로이 보상체계를 설정하곤 했다.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안은 금융치료 밖에 없었다.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는 팀 내의 더 많은 이벤트를 설정해 주고 인센티브도 더 많이 챙겨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였다.
CS 직원들은 유난히 직원들의 이동이 많은 직종이다. 다른 팀의 직원들은 근속연수가 몇 년씩 되는 것에 비해 CS팀 직원들은 1년이 지나면 퇴직금과 함께 실업급여를 요청하면서 사라지기 일쑤. 이 같은 현상을 막아보고자 나는 CS 팀의 동기부여와 우리 회사에 존속하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 주고자 유난히 신경 썼다.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 곧 이석시간을 최소로 해야 하는 CS 팀이기에 종종 진행했던 전 직원 대상 이벤트나 파티에서도 다급히 자리를 뜨는 것이 나는 항상 마음에 걸리곤 했다.
전 직원이 바람 쐬러 한 번씩 나가는 테라스에서도 담배 한 대가 전부 태워지기 바쁘게 돌아가는 발을 내디뎌야 하는 고마운 마음가짐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피부과의 CS팀도, 사용하는 카드사, 항공사 등등 어느 회사의 CS팀이던지 마찬가지일 터. 나는 고객으로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 때마다 전화기 너머 그들의 친절함에 감동하고 나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 고객이 되고자 최대한 그들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6개월에 한 번씩 치과에 검진을 받으러 간다.
6개월 전에 방문하면서 이번 예약도 미리 해두었는데 주기가 길다 보니 매 번 당연스레 잊곤 한다.
잊고 있던 찰나에 언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예약 확인 전화가 온다.
'환자분 요즘 치아는 어떠세요?
이번주 예약 안내 차 전화드렸습니다~시간 괜찮으세요?'
매일 함께 끼니를 떼우는 가족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지인도 그 누가 내 치과 검진을 기억하고 챙겨줄 수 있을까.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주는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한마디를 건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