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광 기록일지] 0교시, 오리엔테이션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양손을 꽉 쥐고 있다. 안에 쥔 것을 절대 잃지 않겠다는 듯,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작지만 단단한 꿈과, 당장이라도 일을 낼 듯 펄떡이는 열정을 각 손에 나눠 들고 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시간을 건너서 손을 펴봤을 때,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을까 두렵다. 혹은 단단했던 꿈이 가루가 되어 있을까 두렵다. 혹은 펄떡이던 열정이 힘을 잃고 축 늘어져 걸리적거린다고 느껴질까 두렵다.
그래서 입대 직전, 거대한 50L짜리 세계일주용 여행배낭을 샀다. 논산으로 향하기 전, 그 안에 꿈과 열정, 패기 같은 것들을 소분해 둔다. 내가 시간에지지 않길 바란다. 죽은 채 살아가는 뻔한 어른이 되지 않길 바란다.
다행히도 적어도 4년간은, 시간에 지지 않았다. 작대기 하나가 쌓여 네 개가 되고, 까까머리가 가르마를 타고, 군복 대신 회사 유니폼을 입고 2년간 사회생활을 할 동안, 오히려 꿈은 더욱 단단한 바위가 되었고, 열정은 더 이상 내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날뛰게 되었다.
시간을 건넜고, 양손엔 여전히, 아니 전보다 더욱 견고하고 커다래진 것들을 쥐고 있다. 사직서를 내고, 집에 와 4년 전 배달된 가방의 택배 박스를 뜯는다. 4년 전부터 방 한켠에 꿋꿋이 자리를 지키던 내 꿈은,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긴 잠을 자고 막 깨어난 것처럼, 오히려 더 생기 있어 보인다. 4년 만에 처음 대면하는 가방에 정중히 안녕을 묻는다.
어제까지는 오전 9시에 회사에 있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었지만, 내일부터는 내가 초원에 있어도, 바닷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어도, 에베레스트에 있어도, 설원에 있어도, 아프리카에 있어도, 오로라 아래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먼지를 툭툭 털고 가방을 멘다. 현관문의 문고리를 돌리자 익숙한 멜로디가 날 배웅해 준다. 집 밖으로 발을 내디딘다.
2023년 3월 22일, 나의 세계일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