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의 취향이 있고 나는 그걸 존중해 줄 거야.
나는 어쩐지 제멋대로인 강아지들에게 마음이 끌린다. 개들이 자기 고집을 부리는 행동할 때면 "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구나" 싶어 그 모습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 작은 머릿속에 자신만의 취향, 고집, 개성, 성격이 가득 차 있음을 생각하면, 멋지고 경이롭기도 하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밥을 제 때 주지 않으면 “6시 5분이야!!” 발로 무릎을 팍! 친다. 생고기 대신 사료를 주는 날은 노골적으로 음식을 천천히 쩝쩝대며 맛없게 먹으면서 불만을 표시하는데 그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귀여워 웃음이 난다. 그래, 이 사회 기준에서는 네가 내 소유물일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관계지. 너는 너의 취향이 있고 나는 그걸 존중해 줄 거야.
강아지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되었다. 19년 전, 하얗고 작은 강아지를 둘째 언니가 집으로 데려왔을 때였다. 분명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리고 왔다고 했는데, “이 강아지가 버려졌다고?” 믿을 수가 없이 사랑스러웠다. 가족들은 곧바로 사랑에 빠졌다. 강아지 입양을 반대하던 아빠도 딸기를 먹고자 빙그르르 돌며 애교 부리는 이 생명체에게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사랑에 응답하듯 강아지 나나는 매일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문 앞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반겼다.
나나는 취향이 확고한 강아지였다. 18세까지 자신이 원하는 길로 산책하겠다며 목줄을 당겼다. 기억력도 아주 좋았는데, 작은 형부에 대한 불만을 10년 넘게 기억하며, 형부를 만날 때마다 싫어하는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또, 밥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나면 밥그릇과 물그릇을 발로 차서 뒤집었다. 때로는 다른 강아지들을 멸시하며, 자신이 개라는 사실을 잊은 듯 행동하기도 했다. 자기 몸집의 4-5배 만한 진돗개에게 왕왕 짖으며 그 개의 성깔을 돋궈서 물려 죽을 뻔한 일화도 잊기가 힘들다.
이 작은 강아지는 18년 동안 우리 가족의 인생 굴곡을 여과 없이 지켜봤다. 가족 갈등으로 때로는 서로를 떠나고, 미워하고, 싸우기도 했는데, 나나에게 그 모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왜 내가 싸운 뒤 5년이나 집에 오지 않았는지, 왜 가족이 서로 소리 높여 다투는지, 왜 가끔 자신을 안고 서글퍼 우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인간이 보여주는 세상이 그 강아지의 우주가 된다"는 말은 나나가 우리 가족과 함께 겪어야 했던 일부 일들에 대한 슬픈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운 이는 많지만, 그 그리움에 책임감까지 느끼게 하는 존재는 드물다. 나나가 내게는 그런 대상이다. 나는 나나의 우주를 어떻게 채워줬을까? 내가 기억하는 나나의 시간들, 또 내가 기억할 수 없었던 나나의 모든 순간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