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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 May 19. 2023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다. 인도네시아 1일차

자카르타에서의 숙소사기

낯선 여행지에 늦은 시간 도착한다는 것은 그닥 반가운 일이 아니다. 특히 치안이 좋지 못한 도시에서는 나 같은 쫄보 여행자는 공항에 좋은 자리를 찾고 노숙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출발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안전하고 변수들에 대처할 선택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저가 비행기 티켓은 자비가 없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한 우리의 비행기는 긴 경유지 대기와 약간의 연착이 겹쳐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입국심사를 마칠 수 있었고, 우리의 숙소는 이미 예약되어 있었다.      


입국 심사는 도착비자를 50만 루삐아에 사는 것 말고는 너무 간단하게 끝이 났다. 우리는 환율이 좋지 않은 공항에서 환전을 하고 싶지 않았고 달러로 결제하는 것보다는 루삐아가 훨씬 나았기 때문에 명동에서 100만 루삐아를 미리 바꿔갔던 차라 절차도 복잡하지 않았다. 언제나 주의하듯 공항에서 택시를 타지 않고 빠져나오는 방법을 미리 알아 두었고 인도네시아의 대표 버스 회사인 담리 버스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오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인도네시아의 택시 기사들은 다른 나라 공항의 기사들보다 전투력이 현저히 약해 부담스럽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그들은 ‘부스’라고 이야기하자 순순히 버스 타는 곳을 알려 주었고, 영어로 티켓을 판매했던 버스회사 직원도 있어 생각보다는 간단히 버스를 타고 자카르타 시내로 향할 수 있었다.       


담리 버스보다 조금 빨리 도착한 다른 회사의 버스는 좋은 버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나쁘지도 않은 버스였다. 어찌 보면 이후에 만난 담리 버스들처럼 딱 그 정도의 낡음을 유지하는 버스였다. 도로의 왼쪽을 달리는 담배냄새 그윽한 낯선 버스를 타고 덥고 습한 거리를 4-50분 정도 달려 감비르라는 곳에 내릴 수 있었다. 버스가 향하는 중간역이 불확실했기 때문에 담리 버스가 향한다는 감비르 역을 중심으로 가까우면서도 싼 숙소를 예약해 두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감비르 역은 보고르와 같은 주변 도시로 향하는 근거리 열차나 장거리 열차가 모두 정차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낯선 곳으로 무거운 배낭과 함께 내린 우리는 숙소를 향해 걸어가야 했다. 내리자마자 몇 분의 툭툭과 오토바이 기사들이 호객을 했지만 우리는 걸어간다고 하자 별로 더 권하지는 않았다. 눈앞에는 한국의 남산타원 겪인(나중에 현지인이 그 말 그대로 알려 주었다) 모나스가 있었지만 문이 잠겨 들어갈 수는 없었다. 가로지르면 더 가까웠지만 돌아가면 2km 정도의 거리라 생각보다는 거리가 있어 택시나 다른 수단을 이용해 볼까도 했지만, 주변의 풍경이 너무 느슨해서 마음이 풀려버렸다. 몇몇의 노점상들이 여전히 영업을 하는 둥 마는 둥 했고, 몇몇 기사들도 대충 오토바이나 툭툭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리고 동네 주민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11시가 다 된 시간임에도 돗자리 같은 것을 바닥에 깔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후 55일 동안 꾸준히 보게 될 그런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완전히 마음이 놓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야밤에 택시기사들과 실랑이하는 것보다는 걸어보기로 했다. 공원에는 여전히 간간히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문을 열기도 했고 텅 비고 넓은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 족들의 굉음이 간간히 우리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인적이 좀 드물었기도 했다. 밤은 점점 깊어졌고 주변에 유적지와 관공서가 많았는지 총을 든 가드들이 야밤에 걷는 우리를 불러 세우더니 이런저런 말을 걸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자 저쪽으로 가라고 이야기하고 보내기도 했다. 숙소부근으로 향해 걸을수록 걷기가 무척 좋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날씨가 덥고 도로사정이 좋지 못하다 보니 사람들이 잘 걷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인도가 없다시피 한 곳이 많았고 걷기에 무척 좋지 않은 곳이 많았다. jalan-jalan 이 산책하다 정도의 단어인데, 교통수단을 호객당할 때면 bisa jalan-jalan 대충 산책, 걸을 수 있다 정도의 말을 하면 이상하게 웃으며 물러나곤 했는데, 걷다와 산책하다를 섞어 써서 그런 건지 사실 그들도 잘 걷지 않아 그런 건지 하여간 그랬다. 마지막 5분 정도를 남겨두고 거리도 좋지 않고 길을 헤매는 바람에 아주 어렵게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의 자정에 1시간가량을 인적도 없는 거리를 걸어 도착해 처음으로 맞이한 숙소는 대뜸 큰돈은 아니지만 추가금을 요구했다. 번역기를 돌려보면 자신은 여기 직원이 아니고 오요에 돈을 낸 거니 추가로 돈을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미 모든 돈을 결재했다는 말에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OYO는 한국의 야놀자 같은 것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핑계로 저가 숙소에서 추가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밤 9시만 되었고 유심을 바로 구매했었다면 바로 주변 숙소를 검색해 숙소를 옮길 수도 있었겠지만 이 낯선 도시에서 시간은 너무 늦었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당시는 도저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한 유투버가 인도네시아에서 겪은 일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겨우 받아들이고 더 이상 추가요금은 없는지 몇 번을 확인하고 들어간 숙소는 뭐 침대시트도 6개월은 갈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텔레비전은 케이블이 없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치직거렸고 모기도 많았다. 웬만한 나라에서는 저가의 숙소라도 비교적 평점이 높은 숙소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건 뭐 홍콩의 청킹맨션보다 10배는 더한 곳이었다. 지금까지 겪어본 수많은 숙소 중에서 단연 최악의 숙소라 아니할 수 없었다. 정말 순간적으로 대략 정신이 멍해져 버렸다. 과연 여기서 잠들 수 있을지, 과연 정상적으로 이번 여행을 할 수 있을지조차도 조금 의문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숙소를 이런 식으로 맞이해야 한다면 정상적으로 여행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숙박비로 책정해 두었던 예산 역시도 완전히 계산에서 어긋나 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고다를 다시 살펴보니 왠지 이런 구도의 사진이 있는 oyo나 red door 프랜차이즈의 저가 숙소들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황망한 정신을 챙기고 상황을 수습해야만 했다. L에게 인도네시아가 이상한 곳이라면 정상적이었던 말레이시아로 넘어가 버리자라고 우선 이야기했다. 언제나 그렇듯 최악의 상황에서는 퇴각계획이 있으면 마음이 놓이는 법이다.

       

다행히 우리는 이럴 때를 대비해 얇은 침낭을 하나 준비하고 있었고, 모기에 약한 나는 훈증기도 하나씩 들고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샤워실은 다행히 미지근한 물이 나오고 있어 샤워도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다. 다행히 층고가 높아 샤워실에서 몰려오는 담배냄새는 잘 빠져나갔고, L이 챙겨 온 세면도구들은 자신의 일을 다했다. 위생에 나보다 훨씬 예민한 L이었지만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고 내일 위해서 꼭 먼저 자라는 얘기를 하자 L은 잘 자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금방 잠이 들었다. 잘 때 예민하지만 체력적으로는 내가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기에 가능한 한 L을 재워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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