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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 Jun 27. 2023

미디어 한국이 중국에 독을 풀었다

대군사 사마의를(사마의 미완의 책사) 보다가

최근 티빙을 통해 '미완의 책사 사마의'를 보고 있다. 내가 이 드라마에 끌려 들어간 것은 동아시아 최고의 인기 콘텐츠인 '삼국지'에 대한 참신한 현대적 해석이 초반부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계륵'의 의미를 지나치게 명민하게 해석해 조조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양수의 소설적 설정의 현실성을 재고해 본 것이다. 드라마는 후계 경쟁에서 조식을 밀었던 '양수'와 조비를 밀었던 '사마의' 간의 경쟁구도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작된다. 그 자체로 참신함을 보장하진 않지만 적어도 극 초반의 의대조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적 암투를 그리는 부분은 적어도 내가 본 드라마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특히 순욱처럼 조조의 최측근이지만 한나라에 충성했던 신하들의 모순적인 처신과 그럼에도 믿음으로 순욱을 대하는 조조의 태도가 정치극 속에 녹아드는 방식이 대단했다. 삼국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있는 사람일수록 빨려드는 소설과 정사를 오가는 픽션적 완성도가 훌륭했다.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짤로 돌아다니는 제갈량의 공성지계에 대한 해석처럼 두 시즌을 이어지면 길게 늘어지던 이야기에 때때로 빛나는 해석들도 군데군데 들어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 드라마가 양수의 죽음 이후 늘어지고 긴장감을 잃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 긴 시리즈를 진행하기 위해 드라마에는 부가적인 요소들이 더해지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과거가 아닌 지금의 중국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리즈를 늘려감에 있어 한국드라마의 방식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로서, 표면적으로 보더라도 조조와 조비의 인물상을 통해 드러나는 지도자에 대한 이상적 상이라던지, 현실논리로서 군주라는 승자독식의 지도자상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사회개혁을 외치면서 현실적인 충을 강조하는 사마의를 통해 모순적인, 자체로 모순인 중국의 이데올로기가 잘 드러나고 있다.


이 드라마가 사마의를 그리는 방식은 매우 한국드라마적이다. 그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오랫동안 인내하며 결국 역사에서 승리하는 사람이지만 매우 서민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부인의 눈치를 보고 얻어맞는 공처가의 모습이라던지, 아무 장소에서나, 이를 테면 감옥에서도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생활체조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던지, 군법을 어긴 자식을 엄한 군법으로 죽이라는 명을 내리고 그를 말리는 장수들에게 눈치를 줘서 구하게 하는 모습들과 같은 것이다.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위인들에게서 유머를 뽑아내는 방식은 한국 드라마의 익숙한 방식이다. 그리고 무공에 익숙하고 활동적인 여성을 일부 배치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퓨전사극에서 보여줬던 판타지스러운 여성의 역할 부여 역시 시청자라는 대중의 속성을 그대로 상업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다. 모든 드라마는 상업과 사회의 지배논리라는 압력 속에서 오락을 이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채롭게도 제갈량의 능력을 연의에서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 군략에 있어 천재적이고 인의가 깊은 제갈량에 대한 사마의의 인정은 지나침을 넘어서고 있다. (정사를 기반으로 한 일반적인 평가는, 그러니까 삼국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에 있어서는 그다지 평가가 높지 않다.) 그래서 국력의 차이를 배경으로 싸우지 않음을 통해 대적하고 있다는 설정은 지금 이 드라마가 개작하고 있는 그러니까, 유비 중심에서 조조 중심으로, 조조 중심에서 사마의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과정을 완전히 거슬러 오르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제갈량이라는 엄연히 인기 있는 캐릭터에 대한 대중적 봉사이기도 하면서도 그럼에도 제갈량의 꿈은 실현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인의라는 것은 이상향에 지나지 않는다는 중국적 현실주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보며 문득 한국이 중국에 독을 풀었다는 구절이 문득 떠오른 것은 중국사회가 한국사회와 꽤 닮아 있는 부분 때문이다. 중국은 점점 동아시아 인들의 두려움이 되어가고 있다. 오래전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이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꽤 통찰력 있는 비평이었다. 그리고 최근 미국과의 패권갈등과 대만침공에 대한 긴장까지 현실적인 대립 역시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접한 가장 인상적인 중국에 대한 정보는 중국의 출산율 추이이다. 중국의 출산율이 1.28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중국이 강성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자가 되기 전에 늙어버리게 된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 원인 역시 낯설지 않다.  성비가 급격이 차이나는 이유뿐만 아니라 경쟁격화와 청년실업 대도시에서의 생활비 증가와 같은 것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부동산 거품이 중국 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민주주의와 독재라는 결정적인 차이 때문에 우리는 잘 보지 못하지만 중국사회는 한국사회와 꽤 닮아 있는 것 같다. 아주 빠른 성장과정과 물질 중심주의 치열한 경쟁주의, 학력주의(중국은 강제로 사교육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촘촘한 감시체계에 이르기까지(한국을 중국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한국만큼 촘촘하게 cctv가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행정적 촘촘함은 전시 동원국가로서 한국은 중국 못지않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을 쥐어짜서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사람들이 미래를 도모하지 않는 최근의 현상까지도 말이다. 


지금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배제되고 있지만 중국의 성장과정에서 한국 드라마는 한국의 성장모델만큼이나 중국의 미디어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모방을 넘어 미디어의 형식에 스며있다는 것은 한국식의 정서구조가 중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거나, 적어도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사회는 드디어 중국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며 급격하게 반발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전단계에서 한국의 방식은 비슷한 문화권이라는 환경 아래에서 중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미디어 한국이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중국사회에 독을 푼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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