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PURPOSE
아내와 둘이서 드라이브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눈 이야기의 내용을 소개드립니다. 아내가 한 목사님의 말씀을 예로 들면서 삶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보통 이럴 때 아내를 통해서 엄청난 인사이트를 받을 때가 많거든요. 몇 분 동안 그런 삶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뜬금없이 20년 전에 방문했던 런던의 커피숍 생각이 났습니다.
Progreso 프로그레소
멋진 이름의 커피숍입니다. 제 나름대로는 Progressive와 Espresso의 결합 정도로 예상했습니다. 전위적인 에스프레소? 엄청 맘에 드는 콘셉트이기도 했고, 마침 커피숍 옆에 공중 화장실이 있어서 (무료!) 런던 쇼핑가 시장조사를 하다가 화장실이 필요할 때쯤이면 굳이 이 커피숍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2004년, 2007년 이 두 번의 런던 출장 때마다 이 커피숍은 런던 시장조사의 전초기지 혹은 베이스캠프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그런데, 전위적인 커피숍의 이름이나 베이스캠프로써의 역할 이외에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커피숍의 적립쿠폰? 적립카드? 스탬프카드? 였습니다. 요즘은 다 어플이나 커피숍 단말기에 직접 적립을 하지만 이 당시는 핸드폰은 있었지만 스마트폰은 없던 시절이라 이런 것은 다 아날로그식이었습니다. 최초 이용 시 적립카드를 지급받고 다시 이용할 때마다 스탬프 받고, 10개 모이면 커피 한잔 공짜로 먹는 이런 시스템. 요즘도 아날로그 카드로 하는 커피숍 꽤 있긴 하지요? 커피숍 말고 국밥집도 있던데 ㅋㅋ
뭐 이런 흔하디 흔한 커피숍 적립카드가 뭐 그리 대단하길래 마음까지 사로잡았을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거 같아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자기 계발이나 삶의 목적까지 연결된다고 하니 귀가 솔깃하시죠?
먼저 카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20년이 다 되었는데 아직 모셔두고 있는 제가 더 신기합니다.
적립카드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반으로 접혀 있는데 표지에는 커피숍 로고와 염소 한 마리 그리고 로열티 카드라고 인쇄되어 있습니다. 뒷면에는 카드 사용방법이 설명되어 있고요, 안쪽에는 스탬프를 찍는 란과 스탬프를 다 찍었을 때의 혜택이 적혀 있습니다.
먼저 표지 뒷면에 적혀 있는 How it works라는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뭐라고 적혀 있냐면요...
How it works
염소 한 마리를 살려면 스탬프 10개가 찍힌 카드 24장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24장의 카드를 다 완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의 완성된 카드를 커피숍의 Big Goat에 붙이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미 확보한 염소가 몇 마리인지 확인해 보세요.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막 쓰고 ㅜㅜ 의역을 좀 했습니다. 결론은 저처럼 10개의 스탬프를 모은 적립카드가 24개 모이면 염소 한 마리를 기증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안쪽에 인쇄된 글도 번역해 보겠습니다.
Free goat or coffee
커피 한 잔 드실 때마다 스탬프를 카드에 찍어드립니다.
10개의 스탬프가 찍힌 카드를 기증하시면 아프리카의 Oxfam Unwrapped에 있는 한 가족에게 한 마리의 염소를 사주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냥 커피 한잔 드셔도 되고요.
정말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그냥 평범한 화장실 옆 ㅋㅋ 커피숍인데 이름답게도 정말 전위적인 목적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커피 한 잔 공짜로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아프리카의 가난한 가정의 생계 수단으로 활용될 염소 구매에 기부를 하시겠습니까?
삶의 목적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목적만 확실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 목적대로 사는 방법은 찾을 수 있습니다. 목적을 찾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돕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삶의 목적은 돕는 마음까지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삶의 목적은 "나의 영향력/재능 (......)을 사용하여 (......)에 기여한다/도움을 준다."의 형태를 띱니다.
이 커피숍의 운영 목적은 "프로그레소의 판매 수익과 고객들의 기여를 사용하여 아프리카의 한 가족이 자립하는 데 기여한다."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삶의 목적과 실천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습니다. 내가 명확하게 정의하는 순간 목적대로 살 수 있는 방법도 따라옵니다. 그것이 직업이 되고 나의 소명이 되고 나의 비전이 됩니다.
자, 이제 프로그레소 커피숍 한 번 구경해 볼까요??? 사진은 모두 필름 카메라인 로모 lc-a로 찍었습니다. 필카감성 흠뻑 느껴보시죠 ^^
이런, 너무 가까이서 찍었네요.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Lomo lc-a로 찍다 보니 거리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프로그레소의 시그니처 컬러인 light green이 전형적인 런던의 벽돌벽 컬러와 잘 어울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런던 코벤트 가든 Covent Garden에 있는 닐스야드 Neal's Yard 지하 센터홀에 있는 커피숍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갔을 때는 없었던 거 같아요. 아쉽다. 지하에 있다 보니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빈자리가 있는지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라이트 그린 컬러의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띄네요.
전체적인 전경입니다. 쇼핑몰의 가운데 공간을 과감하게 커피숍에 할애한 것도 영국다운 발상인 것 같습니다. 한국 쇼핑몰에서는 이런 공간을 아일랜드 Island라고 하는데 여기도 패션샵이 거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맞아요. 기억납니다. 지하에 Superdry 스토어가 있었습니다. 빈티지한 느낌의 스트리트 브랜드였는데 한국에서는 크게 히트를 치진 못했지만 유럽에서 그리 나쁘지 않게 전개가 되었었습니다. 원래 일본 브랜드였는데 영국 기업이 인수했다는 얘길 들었던 듯. 제가 브랜딩 디렉터로 근무했던 중국 패션 기업 Trendy International에서 이 브랜드 중국 판권을 가져와서 전개하기도 했었습니다. 저와 인연이 좀 있는 브랜드네요.
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됩니다.
어둑어둑한 지하답게 로모 카메라가 빛을 완전히 흡수하는 동안 시간이 좀 걸렸나 봅니다. 사진이 흔들렸네요. 그런데 흔들려서 더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필름카메라 감성 물씬~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입니다.
손님이 많을 때는 앉을자리가 없더라고요. 신문 보는 사람,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사람. 다들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갑니다.
우리도 한자리 잡고 좀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시장조사 스케줄표 꺼내 놓고 또 회의를 했나 보네요. 좌측 위쪽에 있는 것은 토이 카메라 포장지입니다. 어떤 카메라 샀었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 20년 전인데 저 볼펜의 필기감도 기억납니다. 신기하네요.
사진 보니 기억납니다. X-Large 스토어도 있었어요. 맞아요. 저 브랜드는 X-Girl이라는 여성전용 스트리트 브랜드도 만들었는데 옷도 옷이지만 스토어 디자인을 제가 아주 좋아했었어요 ^^
작은 커피숍입지만 매출이 좋은지 직원수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저는 커피 안 마시고 레몬주스와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