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뜨개. 요즘 나는 뜨개를 일로 시작하고 제일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계속 행복하고 좋았던 건 아니다.
막연히 뜨개가 좋았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싶다는 꿈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다. 늘 마음속에 바라고 바라던 일이었다. 막연하게 40대 중반 즈음에는 뜨개를 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결혼 후 울산에서 3년간 간호사 생활을 하고 포항으로 이사를 오면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울산에서는 계속 상근직 근무를 했고 연구실 근무를 하면서 사무 행정 일도 나와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직 간호사나 건강 검진 파트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포항은 일자리도 훨씬 적을뿐더러 급여도 낮아서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고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 무렵 남편과 합의하에 딩크족으로 살기로 결정을 했고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남편이 지원해 주었다. 마음속에 늘 그리고 있으니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하고 설레고 좋았다. 두려움과 걱정도 있었지만...
나는 엄마가 있었기에 이전까지는 다른 곳에서 뜨개 배울 생각을 해 본 적도 배워 본 적도 없었다. 엄마가 하는 뜨개방 스타일만 알고 있었을 뿐... 하지만 요즘은 공방이 대세이고 학원처럼 적정 수강료를 받고 꼼꼼히 가르쳐 준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일단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려고 마음은 먹었는데 포항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래. 이럴 때는 맘 카페가 최고지!! 맘 카페를 둘러보니 어랏?! 포항 맘 카페에 뜨개를 좋아하고 재능기부가 반응이 좋다. 그래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능력이 되는지 한번 해보자 싶어 열심히 초보자도 뜰 수 있는 아이템 몇 가지 샘플과 파워포인터로 끄적인 도안을 만들고 재능기부를 했다. 반응이 좋았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이 생겨 소정의 수강료를 받고 소소하게 클래스를 했다. 첫 홈클래스였다. 포항에는 진짜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는지 점점 수강생들이 늘어났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때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어쨌든 도전해 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겠지?
수강생 중 다른 공예를 하시는 회원님이 오셨는데 공예공방을 오픈한다고 거기서 수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셔서 사용료를 지불하고 일주일에 2~3번 그 공방에서 수업을 했다. 어랏?! 또 수강생들이 마구마구 늘어난다. 욕심이 생겼다.
남편을 조르고 졸랐다. 일단 상가나 알아보자 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수업을 하던 공방 근처에 10평짜리 상가를 얻었고 언제든 실패하고 망할 수 있다 생각한 남편은 최소한의 투자만 해야 한다고 했다. 매우 현실적인 남편이기에 불만이 많았지만 이렇게라도 공방을 오픈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진짜 최소한의 비용으로 공방을 오픈했다. 에어컨이며 냉장고며 남편이 발품 팔아 다 알아보고 구매하고 공방 도배 및 청소도 여름에 땀 뻘뻘 흘리며 남편이 해주었다.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공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강생들이 찾아주었다. 아기 엄마들이 대부분이라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많이 수업했던 시절이다.
엄마의 뜨개방을 보고 자랐기에 "피나의 소소한 즐거움"공방은 뜨개방 + 현재의 공방의 느낌이었다. 수강료는 그리 비싸지 않았고 나름의 커리큘럼과 교재는 있었으나 찾아오시는 분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기초과정을 체험으로 해보고 수업을 계속 참여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게 하였다. 장기 수강생들은 할인 혜택을 주었으며, 예약을 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오는 대로 자리를 채울 수 있게 했다. 오픈을 했으니 일단 돈을 벌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무모하고 멍청한 짓이지만 부딪히고 겪으면서 몸소 배우고 깨달았다. 수강생이 매우 많았고 늘 시끌시끌 활력 있는 공방이었지만 나는 점점 시들시들 지쳐갔다. 오는 수강생들이 원하는 수업은 다 달랐고 그 욕구를 다 충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밤낮없이 뜨개와 공부를 해야 했다. 그리고 실력 좋아요 나 잘하는 선생님이에요 하며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힘든 만큼 진짜 돈을 벌기는 했다. 그런데!! 분명히 돈을 벌었지만 돈이 없다. 새로운 실이 나오면 실을 들여야 하고 도매로 거래는 팩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고가 쌓인다. 벌었지만 벌지 않은 것이 된다. 공방 유지 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갔다. 역시 자영업은 힘든 것이야. 수업도 엄청 많이 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풀로 했고 화요일 목요일은 직장인 반도 운영했다. 그나마 30대 초반이라 가능했지 지금은 절대 못한다. 너무 힘들어지니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계속 수업 방식을 바꾸고 예약제로 전환하며 수강료는 인상하고 커리큘럼은 재정비하고 퀄리티를 올리는 쪽으로 바꿔갔다. 지방 소도시라 수강료가 매우 낮게 책정되었음에도 수강료 비싸다는 얘기도 참 많이 들었다. 내가 다른 공방에서 수업을 받고 창업을 했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나는 몸소 겪고 실패를 해야 깨닫는 듯하다. 뜨개 수업이 저평가되는데 내가 한몫한 기분이 들어 찜찜하기도 했었다. 뜨개도 엄청난 공부와 시간을 투자해서 배우는 것인데... 뜨개방 문화를 보고 자라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준비 없이 그냥 막 도전했다. 하지만 지난 시간 이 모든 도전을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많이 배우고 깨달아 지금의 내가 되게 해 주었으니깐.
공방을 운영하며 뒤늦게 여기저기 배우러 다녔다. 도원 모사 사장님이 서울에서 포항까지 영업 왔을 때 깜짝 놀랐고 도원 모사와 협업하는 나무님의 블로그는 오래전부터 보며 많이 배우고 있던 터라 도원 모사와 거래를 하게 되면서 나무님의 탑다운 수업도 들을 수 있었다. 더 넓은 뜨개의 세계를 처음 만났고 또 한 번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무님도 선생님들도 내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잘 들어주시고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셨다. 그 이후로 제도와 대바늘 인형 등등 더 많은 공부를 또 하게 되었다. 보그 과정은 너무 힘들던 시기에 시작해서 결국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너무 쟁쟁한 선생님들 사이에 있으니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실력의 소유자인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 공부가 이제야 다 내 것이 되어가는 중이다. 배울 때는 반은 이해하고 반은 이해 못 했다. 선생님들의 당당함과 실력에서 오는 아우라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나무 선생님도 처음 봤을 때는 연예인 보는 기분이었다. (팬심 발동) 원래도 SNS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난 나무 선생님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뜨개에 대한 마인드와 생각들이 너무 좋았다. 낯간지러운 애정표현을 잘 못하는 나이기에 표현은 못 하지만 항상 마음속의 멘토로 많이 배우는 중이다.
에피소드 아, 그리고 제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어떤 임산부 수강생이 엄마와 함께 수업 문의를 하러 와서 친절하게 설명을 여러 번 해드렸다. 첫 수업료는 재료비 포함 얼마이고 2회 차부터는 1회당 오실 때마다 얼마의 수강료를 내고 수업을 들으셔야 한다고 설명드렸다.(그 회당 수강료가 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 다음 수업에는 혼자서 왔는데 수업 끝나고 오늘 수강료 지불하고 가셔야 한다고 얘기했더니 엄마한테 물어봐야 한다 하고 집에 가서 계좌이체해 준다며 그냥 갔다. 그날 퇴근하고 남편이랑 산책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수강료가 어떻게 되냐고 묻길래 또 똑같은 설명을 했더니 갑자기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수강료가 뭐 그리 비싸냐고!! 도둑놈 심보 아니냐며 나를 막 나무라는 것이다. 재료비도 받으면서 수강료를 왜 받냐는 말과 함께.. 전화를 하신 분은 수업을 들은 임산부 수강생의 엄마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수업은 오지 않았고 수강료도 영영 입금되지 않았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니 뿡이다!!!
또 하나 더 생각이 났다. 어느 날 오전 수업을 하고 있는데 전화 문의가 왔다. 다짜고짜 도안 그리는 법을 알려주냐고 묻는다. 취미 뜨개 수업만 했던 터라 도안 그리는 법은 수업하지 않고 취미 수업만 하고 있다고 설명을 드렸다니 그러면 도대체 뭘 가르치길래 수강료를 받냐고 묻는다. 그래서 질문이 너무 무례하신 거 아니냐고 하니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니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낸다. 아 머리가 쭈뼜서고 뒷골이 땅긴다. 지금 수업 중이니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노라 하고 끊었다. 다시 전화 안 했지 내가 왜 해!!!
이런 일뿐만 아니라 정말 크고 작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공방이 1층에 있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 수업하는 중에 들어와서 무례한 질문이나 말을 하시는 분들이 꽤 많아서 지치고 지친 나는 선생님 아닌 척 수강생 아닌 척 앉아서 낭창하게 있었다. 누군가 들어오면 수강생들이 더 안절부절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죄송스럽지만 진짜 너무 힘들었었다. 어떤 분은 들어와서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고 일요일도 쉬고 아주 배가 불렀네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독기가 올라온 나는 저도 먹고살아야죠~ 저도 사람인데 쉴 땐 쉬어야죠 얘기했더니 머쓱해하시더니 뜨개 샘플들을 구경하고 쓰윽 나가신다. 선생님이 젊네~로 시작해서는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의 2번째 공방은 2층이 되었다.
첫 번째 나의 공방은 공원을 끼고 있었는데 지금은 스페이스 워크로 너무 유명해진 공원이지만 그때는 그냥 조용한 공원이었다. 늘 바빴던 나는 공원을 즐기지 못했고 끼니는 근처에 국숫집에서 주로 때우거나 굶고 집에 와서 야식으로 배를 채우곤 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수업하고 도안 그리고 뜨개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서 많이 아프기도 했다. 공방을 오픈한 초기에만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 즐거움과 행복함이었고 그 뒤로는 계속 힘들고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주변 상가 어르신들의 텃새도 정말 지긋지긋했다. 몸도 마음도 많이 다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랬는지 소소하게 아프기는 했지만 원형탈모는 재발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던 시간들이다.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첫 번째 나의 공방은 애증의 공간이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건 신중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는 뜨개가 좋고 가르치는 일이 좋았다. 첫 번째 공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2번째 공방에서는 모든 것이 더 좋아졌으니깐!!!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헛되이 보낸 시간은 없다. 그 속에서도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위로를 받기 위해 쓴 글은 아니지만 많은 이웃님들이 댓글로 위로를 해주셨다. 나도 그랬던 것처럼 공방창업과 공방운영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우아하고 좋은 모습만 상상한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으니 그저 행복하고 좋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도 힘들 수 있으며, 생각하지도 못한 난관과 위기에 봉착할 수 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뜨개를 어느 정도 배우고 나면 다른 공예도 마찬가지겠지만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공방을 창업하는 상상을 많이 한다. 나 또한 그러했듯이 환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다. 공방의 현실을 알려 드리고 싶었다. 나의 시행착오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는 것도.
글을 마무리하며 나의 미숙하고 부족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고 이웃님들 기억 속의 선생님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이웃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좀 더 반성하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은 질문이다.
글을 쓰면서 문득 궁금해졌어요~ 이웃님들의 첫 번째 공방 또는 뜨개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유튜브 선생님이 첫 번째 선생님인 경우도 많겠지요? 저를 통해 뜨개를 처음 접하신 분들께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될지.. 어떤 이에게는 최악의 선생님이었기도 했겠다 싶어요. 경험이 너무 부족하고 모든 것이 미숙했어요
이웃님들은 간혹 어렵고 무서운 선생님도 만나셨지만 대부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좋은 기억을 안고 계신 것 같다. 좋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더 공방 창업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다음이야기도 궁금해하신다. 요즘은 유튜브 선생님들이 참 좋아서 독학하시는 분들이 참 많다. 유튜브로도 좋은 튜토리얼과 정보로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