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한 천장과 피해 없는 아랫집.
마감이 다가오고 재충전을 위해 평일에 하루 쉬는 날을 가졌다. 잠도 푹 자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기분 좋은 휴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출근하고 나서 '왜 하필'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됐다.
휴일 간 푹 쉬고 쾌적한 컨디션을 만들고 점심 도시락을 챙겨 차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어떤 일을 어떻게 진행할지 등등을 차를 타고 이동하며 이야기를 나눴고 구매해야 할 필요한 물건은 없는지 그런 평시와 다름없는 이야기들을 아내와 함께 나눴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고 우리 집 층수에서 문이 열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복도였지만 우리 집 문 하부에 뭔가 다른 자국이 있었다. 아내에게 "이게 뭐지?"라는 말을 하고 아내와 함께 살펴봤는데 그건 다름 아닌 '물 자국'이었다.
우리가 휴일을 가진 이유 중 하나에 비 소식이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내일은 비도 오는데 하루 쉴까?'라는 느낌으로 휴일을 가졌다. 하지만 비는 그리 많이 오지 않았다, 새벽에 잠시 쏟아진 정도. 그건 그렇다 치고 비가 왔더라도 현관문 앞에 물자국이 있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 물자국은 현관문 하부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자국이었고 누가 봐도 안에서 흘러나온 형태의 자국이었다.
아내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서로를 쳐다봤다. 그때 우리의 머릿속은 그 누구보다 복잡했을 것이다.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을 열었을 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집에 누수가 생긴 것이다.
누수도 보통 누수가 아니었다. 바닥 전체에 손바닥이 잠길 정도의 수위로 물이 고여있었다. 작업하려고 놓아둔 목재나 물건을 담아둔 박스들은 모조리 젖어있었다. 우리 집 바닥에 물이 고였으니 분명 이건 윗집에서 떨어진 물이라는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디서 물이 떨어졌는지 천장과 벽을 살펴봤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천장은 시공한 후와 전혀 다를 것 없이 깨끗했고 벽도 물이 떨어져서 튄 흔적 하나 없이 깔끔했다. 그 모습을 마주하고 생각의 흐름이 바뀌게 됐다. '그럼 우리 집의 누수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아랫집에서 연락이 왔어야 한다. 보통의 경우 누수가 생기면 아랫집에서 연락이 오는 게 정상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니까. 그런데 물은 우리 집 바닥에 고였다. 그것도 심지어 장판 위에 물이 고여있었다. 만약 우리 집 누수라고 한다면 장판 하부에 있는 수도나 난방배관의 누수일 것이다. 그런데 그 물이 아래로 새지 않고 우리 집 장판을 뚫고 위로 올라온다는 게 내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일단 이 상황을 관리실에 알렸다. 관리실에 연락하여 물이 새긴 했는데 윗집에서 샌 흔적이 없다는 말과 아랫집에 피해가 없다는 말을 했다. 관리실 소장님께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말을 전해 들었고 나는 시간 괜찮으시면 한 번 올라와보셨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관리실 소장님께서 우리 집에 방문을 했다.
구축아파트이다 보니 누수가 종종 생기기 때문에 소장님은 가장 누수가 많이 발생하는 곳으로 바로 걸음을 옮기셨다. 하지만 그 주위는 바닥도 천장도 너무나 깨끗했다. 소장님께서는 곧장 누수업체에 연락을 하셨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누수업체에서는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싱크대 물을 틀어놓고 간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혹시나 싱크대 하부에 벽수전에서 물이 새어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 싱크대 문과 하부 칸막이를 벌컥 열었다. 아쉬워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물이 샌 흔적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싱크대 주변은 물이 고여있지도 않았다. 누수업체에서 이야기한 대로 기본적으로 누수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으로 누수를 확인했지만 그 또한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상황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단 관리실에 알렸으니 물을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리소장님께 말씀을 드렸다. 아내와 나는 속상한 마음을 숨긴 채 본격적으로 바닥의 물을 닦아냈다.
여담으로 관리실 소장님과 경비아저씨가 함께 올라오셨는데 바닥에 물이 고인 것을 보시고 아직 장판을 안 했는데 아랫집에 물이 안 샌 게 신기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5초 정도 멍하니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 집은 장판이 되어 있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그리고 경비아저씨께 장판이 되어 있는 거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바닥이 회색인데 이게 어떻게 장판이 되어있는 거냐며 그냥 콘크리트 아니냐며 되려 나에게 물어보셨다. 대부분 장판은 나무색상이 많으니 회색 장판을 처음 보시나 보다 싶었다. 그리고 바닥을 확인하시더나 놀라신 목소리로 "장판이 되어있네!"라고 말씀하셨다. 아내와 나는 그 반응을 듣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둘이서 키득키득 웃어댔다.
바닥을 벽과 만나는 모서리부터 닦으며 혹시나 벽에서 새어 나온 곳이 있나 살폈지만 그 어떤 벽도 젖어있거나 훼손되어있지 않았다. 닦으면서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긴 일인지를 골똘히 생각했지만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정말 우리가 물을 틀어놓고 간 걸까? 집에 들어와서 물 잠근 곳 있어?" "혹시 누가 호스 가져와서 우리 집에 물을 뿌렸나?". 우리는 이런 말까지 했지만 정말 이게 아니고서는 물이 이렇게 고이 있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천장에서 떨어졌으면 물이 튀어 벽에 묻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 바닥에서 샜으면 우리 집 바닥은 멀쩡 할 테고 아랫집 천장이 왕창 젖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집에 왔을 때도 계속 새고 있어야 할 것이다. 분명 어디선가 물은 유입됐지만 우리가 집에 오기 전에 물의 유입이 끊긴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정말 마지막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내부에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퇴근을 했다. 밤새 카메라를 켜두고 혹시나 물이 다시 샌다거나 누군가 들어온다거나 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이다. 첫날 퇴근길에 설치해 두고 다음날 출근하면 거뒀다가 다시 퇴근하면서 설치해 둠을 약 3일 정도 반복했다. 이 또한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런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떤 누구도 밤에 들어오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버렸다.
물이 더 이상 새지 않는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정말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내는 새로 했는데 이렇게 물이 새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현관 타일의 하얀 줄눈에도 물때가 스며들어 누렇게 되어버렸다. 열심히 닦아냈지만 완전히 닦아내지는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자국은 남아서 우리에게 존재감을 내비치고 있다.
정말 이 물들은 어디서 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