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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핫 Mar 16. 2023

2. 지루한 사랑이 좋습니다.

미소와 케이크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아침은 몇 번을 만나도 친해지기 어렵다. 

푸르스름한 공기에 이불속을 좀 더 꼼지락거린 뒤에야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부단히 노력한 끝에 찬 공기에 맞설 용기가 생겼다.

곧바로 욕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씻었다.


옷매무새를 만지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머리를 만져본다.

이 과정에서 보통 단추를 풀었다 잠그기를 몇 번 반복한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는 데이트를 한다.

만나러 가는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너를 써 내려간다.




좋은 사람이고 싶다.


단순히 선하기보다 깊고 넓은 존재이고 싶다.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존재이고 싶다.

햇살에 그늘을, 장대비에 우산을.


내가 너에게 배우고 있듯이,

너도 나에게 무언가 배워가고 있을까?


길다면 길고 길 이 남은 날들이

우리가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가는

여정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버스를 내린다.


여느 때와 같이 웃으며 맞이해 주는 네게,

나는 같은 방식으로 인사한다.


지난 일주일의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이래서 저번주의 내가 버틸 수 있었지 참.'


만남과 동시에 벌써,

잊고 있던 걸 하나 배운다.




봄은 여직 본인이 나설 차례임을 잊었는지,

서늘한 바람이 분다.


"오빠 오늘 날이 춥다. 잘 챙겨 입어."


평소 출근하는 길에 알려주는 말을

곰곰이 떠올려보면,

그녀가 내 봄일지도 모르겠다.


얼른 들어가라고 눈치주며

등떠미는 쌀쌀한 바람에

결국 자주 가는 근처 카페 들어간다.


케이크를 참 좋아하는 여자친구.

빠르게 진열장을 스캔하는 그녀의 눈동자.


내가 나설 차례임을 나는 안다.

시선이 멈추는 곳을 캐치해내야 한다.

같은 공간에 선 우리는,

각자 다른 것에 집중한다.


"이거 태리 좋아하게 생겼는데?"

내가 말했다.


"오 좋아, 오늘은 이거다."

그녀가 말한다.


빙고.

가끔 들어맞는 게 괜히 신난다.


케이크를 두고 그림을 그리며, 대화를 한다.

일주일 간 있었던 일, 서로의 그림, 시시콜콜한 장난.

케이크를 중간중간 먹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루하고 진부한 연애 이야기다.

평범한 로망이며, 반복의 로맨스이다.


그 점이 '빈틈없이' 행복하다.


같은 데이트와 같은 대화로 이다음 주

그녀와 만난다 해도,

나는 그날의 그녀가 기대될 것이다.


누구나 겪는, 그러나 소중한.

너와 나이기에 가질 수 있는 순간들을

간직하고 싶다. 기억하고 싶다.


날 맞이해 주는 너의 미소와

케이크를 골라주는 나의 눈썰미가 다면,

(간혹 틀릴 때가 있지만)

 특별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겨울과 봄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그런 생각에 잠긴다.




부산 광안리 바다를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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