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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이 드는 숲 Apr 20. 2024

타고난 우울감이란 것에 대해서


   학교에서부터 회사까지 늘 어느 정도 인정받아 왔고, 넓지는 않지만 솔직한 오랜 인연들로 주변을 다져온 내 인생은 크게 아쉬울 것이 없다. 하지만 오랜 기간 불시에 그러나 꾸준히 찾아오는 우울감에 나는 면역이 생기지 않았다. 

   십 대에는 키가 크는 것과 같은 내면의 성장통으로 치부했고, 이십 대에는 사회인으로서 독립하기 전 겪는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무력감이라고 단순히 정의 내리고 묻어 두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적당한 경제적, 물리적 자유가 주어진 삼십 대에도 여전히 오늘과 같이 불쑥 찾아온 우울감에는 굴복하고 만다. 나름 이 오랜 애증의 감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그 실체를 직면해 보려고 노력했다. 실존주의에 빠져보기도 하고, 용기를 내 한 번은 상담을 받아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거창하게 생각할수록 독이라는 것. 서른셋의 현재는 그저 이런 날은 타인으로부터 응원이나 기운을 얻기보다는 혼자인 것이 낫고, 이왕이면 한적한 카페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는 것쯤을 배웠을 뿐이다. 당연히, 여성으로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호르몬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우울감을 타고났음을. 이것은 좋고 나쁨이 아니다. 내가 육식보다 채식을 할 때 속이 편한 것과 같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 뿐이다. 잠깐씩 찾아오는 감정을 부정도, 억지로 긍정하지도 말고 그저 이렇게 비가 위에서 내려 다시 경사진 도로를 따라 흘러 내려가는 풍경처럼 지나가도록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여러 매체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다루지만 누구에게나 맞는 해법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마치 그것에 도달한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을 'Like'로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간 어느 누구도 있는 그대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죽는 날까지 우리 인류 모두에게 주어진 달성할 수 없는 그러나 하게 되는 삶의 숙제이다. 닿을 수 없는 자신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삶의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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