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에 대하여

# 지옥의 줄다리기

by 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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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관점이 넓어질수록,

생각이 확장할수록

삶의 긴장도가 높아진다. 단 1분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 단 하루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가 않아서 잠을 덜 자고, 많이 움직이고, 많이 읽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꺼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미지가 하나 떠올랐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아주 섬뜩한 이미지.

공중에 칼 10자루 이상이 나를 향하고 있는 이미지였다. 그전까지는 몰랐다. 칼이 있는지도 몰랐고, 내가 언제나 무언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걸었다. 여유롭게 걸었고, 힘들면 쉬었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산속을 헤매고 있는 내 상황에 한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아니었다. 칼은 늘 내 목을 겨냥하고 있었다. 아주 위태롭게. 위협 속에서 나의 삶은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숲속을 거닐고 있는 것은 마치 기적이라고, 그 어떤 위협도 아직 나를 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 속에서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살아갈 수 있었다고. 유토피아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아무런 문제 없이 걱정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자유. 이게 바로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는 환상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

정신적인 여유.

모든 불안과 걱정에서의 해방.

자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세계.

우리는 그런 것들을 꿈꾸고 갈망하면서, 현재 자신이 노출되어 있는 환경과 본인이 누리고 있는 것들과 본인이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실질적인 가치보다 낮게 평가하고 폄하했다.

항상 나는 부족했고, 모자랐고, 불안했다.

그래서 늘 행복이 멀게만 느껴졌고,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못했고, 너무도 소중한 1분 1초를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된 상태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허비하도록 방치해버렸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이 유토피아는 환상이다.

내가 ‘어떤 것’을 ‘어떻게’ ‘인지하느냐’가 지금의 세계를 유토피아로 만들지, 지옥으로 만들지를 결정한다.


투자 공부를 할수록 갈피를 잃는다. 나는 안전하고 확실하고 지속적으로 생각 없이 돈을 묻어둘 수 있는 투자 대상을 찾았지만, 투자 세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확실하고 안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대책, 상황을 바랐지만 우습게도 그런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주식이 몇십 년 동안 유럽과 중국 등을 제치고 우상향을 했으므로 미국 지수 추종 ETF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답이라고 얘기해서 묻어둘까 싶다가도,

현재 미국과 중국, 인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각국들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트럼프가 자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감세 정책을 시도하고 있는 와중에, 부족해진 미국 재정 적자를 메꾸기 위해서 미국 국채를 무리하게 발행하고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하려고 하는지,

미국 주가에는 거품이 너무 커져서 중국에 투자할까 싶다가도, 중국의 부진한 내수와 갖은 위기 상황을 시진핑이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갖은 의문들 속에서,

결국, 무엇 하나 온전하고 미래가 창창하다고 보장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 대상을 잘못 물색해서 전 재산을 날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경제 침체기를 극복하지 못한 국가의 시민들이 어떤 생지옥을 겪게 될지를 내다보는 일이다. 나라가 부유하고 잘 사는 나라는 시민들의 시민의식도 높고 매너 있으며 질서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국가가 시민들을 보호하지 못하면 시민들은 각자 입장의 이해득실에 맞춰서 자신이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적으로 인지하고 분란을 야기하고 싸우고 죽인다.

정치와 경제,

환경 보호와 이윤 극대화,

국가와 개인,

정부와 시민.

우리는 모두 같은 줄 위에 너무도 다른 위치에 서서 각자 힘겹게 줄다리기를 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세게 당기면 균형을 잃어서 모두가 무너질 수 있는 지옥의 줄다리기.

너무 버겁고 어렵다.

미리 위험을 예상하고 예방하는 것도,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을 지키면서 나의 입장과 반대편에 선 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도, 서로가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이와 같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평생 고민하며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그런데 이렇게 매일 고민하고 분투하며 균형을 유지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속에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있다. 한 측으로 치우치지 않고 약간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시 중심으로 왔다가.

누구 한 명 크게 다치지 않고, 누구 한 명 너무 잘 살지도 않고 그렇게.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유토피아’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누군가는 말한다. 경쟁의식과 물질주의 속에 한국은 디스토피아라고.

너무도 빠른 경제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노인들의 자살율이 너무 높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타살을 가장한 자살로 보험금을 타서 자식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나라.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기보다는 이런 환경에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분노한다.

그런데 아니다. 내가 느끼기에 지금 한국은 균형을 너무도 잘 유지하고 있다. 물론 수도권에 노숙자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곳에서 노숙자들이 바닥에 뒹굴지 않는다.

전화 한 통이면 빠른 시간 내에 경찰차와 소방차가 달려온다.

늦은 저녁 거리를 거닐며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집에 돌아갈 수 있다.

이민자들 때문에 일자리에 쫓겨나서 알바로 생계를 연명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주기적으로 청년 지원금을 비롯한 각종 부양책을 내놓는다.

너무도 체계적이고 편리한 시스템 덕분에 아프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고 어느 정도의 돈만 있다면 바로 치료받을 수 있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

매일 저녁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위에 나열한 어쩌면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들에 감사하는 것이 억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눈을 돌려 타국의 상황을 돌아보면 한국 시민들이 누리는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 있다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산다는 좀비 동네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물론, 이것 또한 줄다리기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언제 돌변하여 위협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하루아침에 우리나라가 마약 위험국이 될 수도 있고,

밤에 돌아다니지 못할 수 있고,

전쟁이 일어날 수 있고,

내수가 부진하여 경제 침체기에 들어설 수 있고,

넘쳐나는 이민자 때문에 젊은 청년들이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고 입에 풀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칼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칼이 당장 내 목구멍을 찌르지 않는다면,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면, 지금 이 삶에 충분히 감사하자는 말이다. 환상을 좇지 말고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다방면에서 노력해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내 삶에 감사하자는 말이다.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자. 최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루아침에 나라가 망해서 전 재산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나는 희망을 갖는 거다. 몇십 년 후에 부자가 돼 있을 내 모습을 그리며 최선을 다하는 거다.

내 힘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해 무릎 꿇더라도 그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는 계속 나아가는 거다. 그러다 보면 이런 내 움직이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경제 부양에 일조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내 이익만 좇을 게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순간이 오기까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자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