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세상에 비밀은 없다
“너랑 나 말고 아무도 몰라. 괜찮아.”
“아니, 틀렸어. 절대 알아서는 안 될 두 명이 알게 된 거잖아. 너와 나”
단언컨대,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삶을 엉망진창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에 대한 신뢰를 잃고, 타인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이 없어지고, 정신과 신체를 타락시켜버리는 것이다.
아주 작은 균열은, 시간이 흐를수록 벌어지고 깨어져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잠식시켜버릴 수 있다. 술과 마약에 허우적거리는 것이 최선인 삶이 되어버릴 수 있다. 매일 따뜻함이라고는 없는, 오로지 욕구 해소를 위한 얄팍한 섹스와 더러운 거짓과 지독한 담배와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아주 작은 균열이 만들 수 있는 결과다.
나의 실수를 알려서는 안 된다.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습관적인 자기 합리화도 막지 못한다. 이기심과 욕구 해소를 위한 잘못된 판단을 덮고 뒤집는 것은 순간적인 죄책감을 덜어줄지 언정, 엎어진 물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자기합리화도 결국, “알지만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꺼림칙하고, 찝찝하고, 답답하고, 불편한 감정이 말해준다. 우리가 한 실수를.
친구가 물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누군가를 죽여야만 네가 살 수 있다면, 너는 그 사람을 죽일 거야?”
나는 답했다.
“나는 엄청나게 정의롭고 책임감이 강하고 선한 사람이 아니야. 나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타인을 죽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아서 그런 선택을 당연하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니야. 사회가 정해준 도덕과 윤리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평생 그 기억을 가지고 살 자신이 없어서.
누군가를 죽이고 연명한 이 삶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질 테고, 마치 좀비처럼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그런 인간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게 무서워서 차라리 자살할래. 엄청 높은 아파트에서 떨어지면, 떨어지다가 쇼크로 기절할 거고, 기절한 사이에 바닥에 떨어져서 죽을 테니까 덜 고통스럽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죽는 건 두렵지 않다. 내일 당장 죽어도 괜찮다. 괜찮을 수 있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하니까.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하는 선택이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면, 내게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결코 나의 삶을 구렁텅이에 던져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던져버리기에는 내가 이 땅에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희생하신 수많은 선조님들과,
고통으로 나를 낳고, 고통으로 나를 키우며 어느덧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걸어가시는 부모님들과,
우울증에 걸린 남동생과, 크게 기댈 곳이 없고 또 기대려고 하지 않는 나의 언니가
나를 사랑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과,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절대 헛되이 죽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머니에 쓰레기도 바닥에 버리지 못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도덕심이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행동과 내가 내뱉는 말을 내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나를 관찰하고 평가하고 기억하는 존재가 있다. 아주 끈질기고도, 집요하게 나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라는 프레임안에 나를 끌어들이려는 존재가 있다. 바로 나다.
어려서 부모님 지갑에 손을 댔다.
순간적인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떠맡긴 새끼 고양이를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서 상자에 담아 밖에 두었는데, 그날부터 다음날까지 비가 세차게 왔고, 나는 새끼 고양이를 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는 숨을 거두었다.
고등학교 때는 가장 친한 친구가 희귀병을 앓고 있었는데, 증상들이 눈에 보였음에도, 친구 손을 잡아끌고 병원에 가지 못했다. 이미 갔다 왔는데, 병원에서 괜찮다고 한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친구는 죽었다. 친구가 뇌사상태에 빠지기 3일 전, 함께 시내에 나가자는 연락을 받고 나갈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친구보다는 당장 운동에 지친 몸을 쉬게 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아니 몇십 년 전의 내가 저지른 실수와 안 좋은 기억들도 드문드문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내가 한 실수에 대하여 합리화를 하고 싶지도 않고 관용을 베풀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더 떳떳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내가 기억하는 나라는 사람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영원한 관찰자의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내가 나 자신을 더 좋게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 순간에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거나, 내가 느끼는 감정과 욕구를 부정해야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