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존감에 대하여

#12 기능형 인간관계 그리고 나르시시스트

by 무정




매일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면서 팟캐스트를 듣습니다. 오늘은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르시시스트”관련 녹음을 듣다가, 기능형 인간관계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저의 일부분을 발견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능형 인간관계란, 말 그대로 인간관계를 기능적으로 해석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이 좋고, 어떤 면은 별로인지를 분석하는 태도입니다. 이는 타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도 적용됩니다.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이 바로 기능형 인간관계를 맺는 것인데요, 이는 왜곡된 자기애를 유지하기 위하여 본인에게 유리한 사람을 선별하고 자신의 필요에 맞게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이 생각했을 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핍이 부각될 때 공격적이거나 때로는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본인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인간관계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고, 거짓된 모습을 꾸며서 보여주거나, 괜찮은 사람들을 꿰어 가스라이팅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나르시시스트가 본능적으로 자기 객관화를 잘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메타인지력이 좋다는 것인데요, 저는 나르시시스트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험을 합니다.

저의 경우 자신감은 강박적인 성장 욕구와, 루틴을 병행해가면서 조금씩 쌓아 올렸지만 아직도 자존감은 높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자라왔던 환경에 원인이 있는 거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일터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닌 탓에 친구들과 관계를 제대로 맺어본 적이 없었고 친구들에게 있는 그대로 환대 받아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경우, 종종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 설거지나 상을 치우는 건 당연히 네가 해야 하는 거야”라는 말을 하셨는데, 당시 어머니의 의도는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여 타인에게 기여하는 자세”를 가르치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당시 그것을 “조건적인 사랑”으로 받아들였던 거 같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무언가를 해야만, 즉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만 타인에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라고 인식했습니다. 이는 25살이 된 지금의 저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위축되어 살아왔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강박증이 생겼습니다. 매일 머릿속에 “운동해야 해, 공부해야 해, 돈 벌어야 해, 예뻐져야 해”라는 등의 요구들이 울려댔습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실제로 그것을 제 삶에 녹여내기 시작했고 지금은 공부와 일, 책, 글쓰기, 자아성찰을 제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행동을 멈추는 순간 저는 타인에게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으니까요.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든 항상 최악의 결과를 내다보고 만났습니다. 타인이 얼마든지 저를 싫어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그런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등을 돌리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말이죠.

친구들에게 연락을 할 때면 무조건 용건이 있어야 하거나, 친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는 친구의 시간을 불필요하게 간섭하고 싶지 않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제 연락을 기다릴 것이라는 기대 따위는 전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연락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만 했을 뿐입니다.

사적으로 누군가와 만날 때도, 제가 꺼내는 대화 주제는 제 얘기가 될 수 없었고, 오직 들어주거나, 제가 얻은 정보를 주입하는 식의 대화를 고집했습니다. 제 얘기를 궁금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길 바라니까요.

제가 누군가의 발끝에 미치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면, 때로는 잘 만나고 있다가 제가 여지없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상대와 만나는 것이 불편해졌습니다. “이 사람이 날 왜 만나는 거지?” 또는 “언젠가는 나의 부족한 모습이 들통날 텐데 그때 거절당할 바에는 지금부터 안 만나고 내 삶에 집중하는 게 낫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마리의 고슴도치가 자신이 가진 모든 가시를 잔뜩 꺼내놓고 몸을 한껏 움츠린 것처럼, 저는 늘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맺은 인간관계는 쉼 없이 오지만, 미련 없이 스쳐 지나가는 버스정류장과도 같았고,

아무런 기대도 없고 미련도 없는 단조로운 관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덧 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무뎌졌고, 모든 시간을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라도 조금씩 나아진다면 누굴 만나도 떳떳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이끌어줄 수 있는 관계일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상대가 저를 필요로 하니까요.

그러나, 소위 말하는 백그라운드가 좋거나, 지적이거나, 매력적인 사람들이 저와 관계를 맺기를 바라면 저는 돌덩이처럼 굳어버립니다. 상대에게 못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고,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서요. 제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제가 너무 부족해서 말입니다.

이는 과도한 자기 객관화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하는 이타심이 결합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나르시시스트는 과도한 자기 객관화에, 본인의 이득을 쟁취하고 싶은 이기심이 결합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도 이상의 자기 억제와 강박을 달고 살았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가면과 거짓말 속에 자신을 꽁꽁 숨기고 때로는 타인도 속이며, 자신이 만들어놓은 가짜 자아상에 타인을 끌어들이려 노력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저는 아마도, 앞으로도 상대에게 떳떳한 존재가 되기 전까지는 편하게 누군가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고, 누군가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막대한 지식을 얻고 싶으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산 멋진 집에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서툴지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바랍니다.

기능형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를 느낍니다. 타인이 본인을 싫어할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조건적인 사랑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자라오는 환경 속에 자신이 가진 것이 있든 없든, 외모가 어떠하든, 성격이 어떠하든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몇 마디 말만 나누어도 느껴집니다.

실제로 여성분이 80kg가 넘어가도 얼굴에 그림자 하나 없이 환하게 웃으며 버는 족족 자기가 하고 싶은 곳에 쓰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저는 실로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햇살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같이 있어도 긍정의 기운이 느껴졌으니까요. 저는 원래 살이 안 찌는 체질이 아닙니다. 얼굴에 살이 오르는 순간, 밖에 나가는 것이 미치도록 싫어서 안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단 한 번도 사치를 부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와 저는 삶의 질 자체가 다릅니다. 행복을 느끼는 빈도도,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의 행복감도 모두 다릅니다.

햇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것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제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인정욕구와 결핍은 절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설령, 일정 부분 조건을 충족해야 사라지는 것이라면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려워도 상관없습니다. 그럼으로써 제가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와는 다른 케이스로, 본인의 부족한 면을 인지하고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장할 수 있는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무기력에 빠져, 방안에 틀어박혀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저처럼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도 이미 살아오면서 갖은 노력을 해보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와는 다른 노력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본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며 사랑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조건과 결핍도 내려놓고 오로지 본인의 목소리만을 추적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면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사고 싶은 것을 사십시오.

본인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고 심도 있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되돌아보십시오. 자라오면서 어떤 부분이 본인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하락시켰는지, 본인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것인지, 조건부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것인지 확인하십시오. 그 과정 자체가 어쩌면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기능적인 측면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 격려와 응원, 수용을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나 또한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것, 이것만으로도 인간관계는 충분한 힘이 있습니다.

사람은 절대 혼자 살아가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이 곁에 머물 필요도 없습니다. 딱 2명이면 충분합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