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쉬어가야지
요즘 들어, 영화 보는 게 좋다. 술 마시는 것도 좋다. 맛있는 음식을 내주는 가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웃고 떠드는 게 좋다. 일하러 가서 미친 듯이 일만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피곤에 절어 잠에 드는 것도 좋다. 2-3시간밖에 못 잔 날에 투잡을 하면서도 짬 나면 카페에 가서 책 읽는 것도 좋고, 그냥 내 삶이 좋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물건, 아름다운 분위기, 아름다운 동물, 아름다운 자연.
나는 꽤나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목표가 뚜렷하다. 그런데 그런 장기적인 목표 외에도, 단기적인 목표가 하나 생겼다면, 매일 주어지는 일상에 아름다움 한 방울 섞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한날 영화를 보며 맥주 한잔 마시는 것도 사치라고 여겼다. 그냥 있어 보이려고, 혼자 궁상떠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그런 순간순간들이, 내 삶을 조금 더 밝게 빛내준다고 생각한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좋아하는 와인을 사 와서 치즈와 곁들여 먹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떠들고,
바쁜 와중에 시간 내서 본가로 가서 부모님을 세게 껴안고, 밥 한 끼 사드리고,
한 번씩 바다 보고 싶은 날에, 좋아하는 책 한 권 들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하염없이 책만 읽고.
그런 순간들이 내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거 같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고, 언제 고통과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그런 순간이 오기 전까지,
찰나의 순간들을 예쁘게 닦아놓으면,
예쁜 추억들로 가득 채워두면,
그런 힘든 시기가 왔을 때 추억을 움켜쥐며 견뎌낼 수 있을 거 같다. 힘든 순간이 올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아름다운 순간들로 도피할 수 있다면, 다시 잠시 쉬었다가 내일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인생이라는 도화지에 아름다운 것들을 가득 그려 놓기 위함이 아닐까. 어차피 죽을 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면 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