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구차함 그것도 나의 일부
구질구질하다는 표현은 무언가 매정하다고 해야 하나. 어떠한 행동의 가치를 폄하하고, 비난하는 거니까. 사전적 의미로는 “상태나 하는 짓이 깨끗하지 못하고 구저분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구질구질하다. 나라는 사람이 참 그러하다. 과거의 상처를 충분히 수용하고 극복한 줄 알았는데, 어느 때가 되면 나는 다시 그때를 회상하고 괴로워하고 누군가의 위로를 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 구질구질해서 나 자신이 너무 구차해지고 속 좁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 자신이 싫어지고 후회할 것을 알지만 나는 왜 참지 못하는가. 나는 왜 또 분노하는가. 어릴 적 상처받은 마음은 어른이 되어서도 회복될 수 없는가. 어린아이처럼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서도 투정 부릴 수밖에 없는 건가. 나는 앞으로도 누군가의 진심 어린 위로를 갈구하며 괴로워하게 될 것인가.
가족이라는 의미. 부모라는 의미는 내게 있어서 아픈 손가락이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꽤 뒤끝 있는 사람인가 보다. 나는 아직도 부모의 진정 어린 용서와 진정 어린 인정과 조건 없는 사랑을 기대한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적당히 얼버부리며 넘어가는 태도, 번번이 좌절되는 기대, 깨져버리는 부모에 대한 환상, 또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기대하지 않고 의존하지 않기 위한 발버둥, 감정은 배제하고 결과만 바라보는 태도.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나라는 존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은, 내가 단지 숨만 붙어있는 존재여서는 안 된다고 부르짖었다. 돈을 좇고, 책을 읽고, 자신을 통제하고, 감정은 배제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내 행동의 동기는, 그러한 것들이 내 목숨이 붙어있어야 할 명분이 되어주었고 부모를 비롯한 형제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쩌면 가질 수 있는 가족들을 보호해 줄 힘을 만들어줄 테니까
처음에는 나를 속였다. 우리 가족의 행복이 내 행동의 동기라고. 실제로 그러했다. 하지만 그 행동의 동기는 내가 어릴 적 겪어야 했던 상처를 내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심연 밑으로 묻어둘 때만 실효성이 있었다. 그 상처가 다시 외부로, 내 자아의 일부로 고개를 내밀면, 그것은 내 행동의 동기가 되지 못했다. 그들의 행복이 내 행동의 동기가 아니라, 책임감과 의무감이 내 행동의 동기가 되었다.
어찌 되었든, 내 혈육도 책임지지 못하고 방치하는 내가 어떻게 제삼자를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들을 방치하고 내 행복만 좇기에는 내 천성이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일단 돈부터 많이 벌고. 부자가 되고 나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다.
어쩌면 평생 가족으로부터 기대하는 것들을 나는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수준이 타인을 포함하여 자식도, 심지어 본인조차도 진정으로 인정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외계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닐까.
나는 운이 좋게도 책을 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고, 원하는 정보를 얻고 적용할 수 있었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사랑하는 만큼 원망한다. 이 원망을 배제하는 것은 내가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가능하다. 왜 원망해서는 안되는가. 그만큼 사랑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도 좀 아팠다고, 지금도 그 과거로 인해 힘들다고. 내 정체성을 발전시키고 보호하고 유지하는 게 미치도록 힘들다고.
나는 왜 늘 있는 그대로 나 자신도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냐고. 투정 부려도 되는 거 아닐까. 상처받고 좌절하고 지금도 그로 인해 고통받아도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아닐까.
내가 부모에게 기대할 수 없듯, 부모도 내게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나도 내 삶을 살아도 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