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태도 변화

#15 신뢰할수록 차가워지는 내가 이상하긴 해

by 무정


울산 십리대밭





​사람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것은 비단 어머니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들이 걱정 안 시키는 자식에게는 관심이 덜하고 말썽 피우는 자식에게는 모든 관심을 쏟아붓는 거처럼 나 또한 사회에 나와보니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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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차이도 있지만, 에너지를 유독 많이 필요로 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오히려 말썽을 안 피우는 자식에게서 에너지를 비축하려는 듯한 양상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친구관계, 선후배 관계에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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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그게 싫었다. 부모님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어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싫어서 알아서 앞가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관심 대상에서 나는 제외되었다. 혼자서 앞가림을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 당연해진 것에 대하여 화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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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노력을 해야만 타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건지.

왜 노력한 만큼 나의 노력은 알아주지 못할망정 더 잘할 수 없냐고 질책하는 건지.

왜 나만, 노력해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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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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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알 거 같다. 어릴 적의 나의 행동은 누군가의 관심을 받을 필요를 없게 만들었고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어미 새가 먹이를 들고 왔는데 어떤 아기 새는 계속 입을 벌리며 밥을 달라고 보채고, 어떤 아기 새는 어미가 흘린 먹이를 잘 쪼아먹는다면 당연히 어미 새는 입만 벌리는 아기 새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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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인이 내게 대우해 주길 바라면서, 이 정도만 나를 신경 써도 된다고, 다른 새끼 신경 쓰라고 등 떠밀어놓고, 왜 관심을 주지 않냐고 징징거리고 있었다. 나를 향한 타인의 대우는 내가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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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과거를 되돌아보면 이점도 있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으니까. 그만큼 나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서툴렀고 모든 것을 내가 알아서 해결하길 바랐다. 독립심과 자립심이 꽤 커서 의식을 잃지 않는 한 병원도 혼자 갔고,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부모님에게 일절 손을 벌리지 않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익숙하여 타인 없이도 외로운 감정 상태에 빠지지 않게 몰입하는 법을 배웠고 모든 시간을 생산성 있는 시간으로 바꾸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사회에서 맺은 친구관계에서도 관계 유지 본능, 에너지 이론은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적인 것에 반해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모든 이들에게 심도 높은 관심을 주면서 살면 에너지가 바닥나서 정말 중요한 것에 에너지를 쏟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많이 안 써도 되는 관계에서는 에너지를 비축하고 어느 정도 에너지를 투입해야만 유지되는 관계에 있어서는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 관계에 있어서 에너지는 관심이라는 형태로 발현한다.

가끔 나도 놀랄 때가 있다.

내 목소리가 너무 낮고 차가워서 또는 싹수없어서. 보통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관계 즉, 나의 태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친밀한 관계에서는 나의 본 성향이 나온다. 이는 그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그저 그 순간의 나의 컨디션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의 나는 에너지를 비축한다.

반대로, 아무리 피곤해도 어떤 사람들 앞에서 나는 자주 웃고 관심을 기울이며 목소리 톤이 한층 높아질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이해해 줄 것이라는 신뢰가 없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다. 또는 나보다 윗사람이라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상황일 때다.

내가 신뢰하고 나와 친밀한 관계일수록 내가 주의를 덜 기울이고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만한 일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애정하는 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남기는 것이 아닌 이상 나의 태도로 인하여 그들이 상처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런 현상을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개인의 그릇에 달려있다. 나의 경우는 에너지 이론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차별한다고 생각하고 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관심은 곧 사랑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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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특히 부모 자식 관계에서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상황상 어릴 때 충분히 주어야 했던 관심을 주지 못하고 홀로 크다시피 한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에게 충분히 말해주어야 한다. 또는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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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아끼는지. “네 동생이 하도 말썽을 피우니까 어쩔 수 없었어. 네가 크니까 이해해야지”라는 식의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아이의 선택이자 자유다. 그것을 강요하는 건 아이를 두 번 괴롭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오늘도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