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 May 10. 2023

관계지향적이지 않은

  

1976년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날 반편성 대자보가 공고되었다. 1학년 건물 벽에 붙은 반 편성 대자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였다. 한 반에 60명도 넘는 반이 10개나 되던 인구과밀의 시대였다. 흙먼지가 일어나는 봄날의 학교 운동장에서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들과 어른들 틈에 끼어 있다가 새로운 반을 확인하고 엄마와 돌아서는 순간 어떤 낯선 여자아이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많은 사람 사이에 있는 것도 처음이었고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아보는 일도 처음이라 잔뜩 겁이 나 있는 나에게 그 아이는 나와 달리 시장처럼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이런 상황이 재미있기라도 한 듯 명랑하고 활기찬 얼굴로 나와 같은 유치원을 다녔다고 엄마에게 자기소개를 하고 나에게 반갑다고 아는 체를 하였는데 미안하게도 나는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랍기만 하였다. 그러고 보니 유치원에 내가 아는 친구라는 사람이 있었던가 잠시 후 생각해 보니 또 본 듯한 얼굴이기도 하고 그 아이 말대로 같은 유치원을 다녔다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아이 말대로 우리는 함께 유치원에 있었고 그림이었던가 만들기였던가 무언가를 같이 한 기억도 났다. 매일매일 유치원에서 보았음에도 나는 왜 그 아이가 생각나지 않았을까. 어린 마음에도 나는 내가 이상했다.      



지금도 가끔 2년 남짓 다녔던 유치원에 대한 기억이 있다. 우리 가족이 다니던 성당의 유치원이어서 항상 지나다니며 봐온 덕분인지 놀이터와 미끄럼틀, 강당 같던 큰 교실 하나가 전부였던 전경과 많은 아이들의 기억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러나 나는 그 많은 아이들 중 누구와도 친하지 못했다. 유치원과 집 사이의 길에 대한 기억, 그때 맨 가방과 화방도구들, 그 길의 돌멩이 하나까지 기억이 나지만 친구나 사람에 대한 인상은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점심으로 주던 하얀 쌀죽 끓이는 냄새가 사람보다 더 오래 유치원을 기억하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기억들 속에는 그 후로도 여전히 사람보다 그 상황과 풍경이 더 많은 것이다.  


    

그 후로 그 아이와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한두 번 같은 반을 한 적이 있었고 우리 집의 아랫동네에 사는 이유로 길에서도 몇 번 만난 적도 있었다. 그때는 같은 반이라도 너무 많은 아이 탓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일 년을 지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웃음소리가 크고 목소리도 컸던 그 아이와 한 동네에 계속 살면서도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첫날의 기억으로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그 아이는 나의 이름을 잊었을 것이다. 이름은 고사하고 그날의 일조차 까맣게 없던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관계 지향적인 사람의 주변에는 언제나 수없는 사람이 넘쳐나고 흘러가기 때문에 나처럼 존재감이 없는 사람은 금방 쉬이 잊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가 많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개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잊히지 않게 된다. 게다가 그 아이처럼 특별한 기억을 준 사람은 더욱더. 타인에게 주의를 잘 기울이지 않는 성향이 오히려 사람에게 더 집착한다고 할까, 사람에게 얽매여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관계 지향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져서 쉽게 관계를 무시하지 못하고 더 오래 그것에 연연하는 사람이 된다. 관계 지향적이지 않을수록 알고 보면 사실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상처에 민감하고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과의 경계에 더 예민하지 않을까 하는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꼬부랑 할매 손은 약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