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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Apr 02. 2024

선택

가지 않은 길


크고 작은 많은 계획들이 있었다.  선택의 순간에서 누구나 그렇듯 항상 최선 최고의 하나를 고르기 위해 고민했다.  때로는 그 하나를 위해 시간, 돈, 다른 욕망들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내가 선택했던 것들, 그 선택에 따라올 부수적인 또 다른 계획들, 욕심은 굳센 의지로 포장되고 허황된 기대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들떴다. 기대와 희망은 가시밭길에 서서 피나는 맨발을 보면서도 인내를 말했다. 점점 더 내 뜻은 우상이 되었다. 망망대해에서 바람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펼친 야망의 돛은 바람을 타기도 하고 바람에 맞서기도 하였고 나는 배의 키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몸과 마음으로 사투를 벌였다. 내가 한 그 선택을 지키고 이루기 위함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대로 사람의 의지는 자석같이 원하는 것을 끌어당길 수도 밀칠 수도 있어 돌아보면 결국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생각했던 선택과 얼추 비슷하게라도 살아지고 있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해서 원했고 바라던 것을 갖기 위해 마음 졸였다. 때로는 그것을 위해 그보다 더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먹잇감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맹수의 심정으로 그것만을 생각했다.

한번 달려가기 시작하면 가끔 드는 목표를 향한 의심조차도 유혹이라 여기며 냉정히 뿌리치고 더욱더 그것만을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목표의 가치성.  하나를 갖기 위해 잃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인생의 철칙을. 가지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잃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눈감았던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때 이미 내게 남은 것은 없었다.      

목적지로 가는 중간 길목에서 아름다운 오아시스를 만나면 그곳에 안주하며 목적지로 가는 것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인간은 되지 않으리라 확신했지만 육체와 정신의 안락함은 시간이라는 늪속에서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내게 인생은 언제나 시험을 보는 것 같았다. 틀린 답을 골랐다가는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순간마다 몇 개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일은 내게는 정답 하나를 골라 문제를 맞히는 것처럼 언제나 어려웠다.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시험지를 받아 펼치면 문제는 언제나 예상을 빗나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생은 바로바로 정답을 알 수 없었던 탓에 스스로는 언제나 맞았다고 자위하며 그런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인생 낙오자는 아니라고 믿으면서.  시험이 끝나고 내가 쓴 답이 틀렸음을 알았을 때, 추호의 의심의 여지없이 확신했던 정답이 오답이었을 때의 그 어리석은 느낌, 세상에 속은 기분, 망친 시험만 자꾸 생각나는 시간들을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답이라고 굳게 믿었던 정답이 사실은 오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 어쩌면 오답이라고 아예 처음부터 답의 범주에 넣어놓지도 않았던 것이 정답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연기 속에 나는 완전히 갇혀서 한 발자국도 발을 뗄 수가 없게 되어 아무것도 선택할 수가 없는, 선택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게 되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때로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선택지들을 보면서 문제가 너무 쉽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인생이 너무 쉬웠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히 선택될 수 없는 선택지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다 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나의 정답만 고르려고 했던 내가 오히려 선택된 것 같다. 내 뜻대로 하는 일에는 나의 욕심이 드러난다.  욕심의 끝은 언제나 파멸이다.      


희망과 기대가 부질없어 겁쟁이가 되는 것이 의욕에 불타 승리를 자신하는 돈키호테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선택하지 않은 길, 오답이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아예 제쳐두었던 선택지, 그 길들을 상상해 본다.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어 쳐다보지도 않았던 그 선택을 하였더라도 생각처럼 그렇게 터무니없이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길도 최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정답은 하나라고 믿었던 내 오류가 더 명확해지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까. 어차피 어떤 길을 가더라도 인간의 끝은 후회일까. 언제나 지나고 나면 고르지 않았던 다른 선택이 정답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일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피천득 역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출처 : google 나무위키)      


    

인생의 길은 유턴과 후진이 없다. 오직 직진하거나 우회전 좌회전만 용납된다. 지나온 길은 모두 소금기둥이 되어 무너져 내린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썰물이 따라와 발자국을 지우고 오래된 길들은 바다가 되었다.      

인생 우여곡절 굽이굽이에서 돌고 돌아가다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곳에 와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 곳이 아닌데 여기는 어디지 왜 이런 곳에 와있는 것일까 분명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막상 와보니 생각과 달랐지만 돌아가기에는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수고가 아까워 그냥 가게 되는 길이 있다.  어디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까 좌회전이 아니라 우회전이었나 맞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이 얼음이 되어버린다. 


어디서부터 틀어졌나 기억을 거스르면 일주일 전? 2년 전? 20년 전? 결정적인 그 순간을 찾느라 나는 하루를 다 써버리는 것이다.     

마침내 그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것은 아주 구체적이어서 오래전 어느 해 겨울 대학 시험에 떨어진 내가 무기력함과 자괴감에 다시 고3이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던 그날 그래서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 짧은 선택이 시간여행으로 나를 여기로 오게 한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에 이르렀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몰고 오듯 그저 연못에 작은 돌을 던졌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단순한 선택이 꼬리를 물고 다른 선택에 빨려 들어가 늪이 되는 느낌을.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미친 사람이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고 하듯 추호의 의심도 없이 자신만만하였다.      

사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묻지도 않았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러나 아마도 사랑은 내가 원하는 답을 했을 것이다. 사랑을 사랑하지 못했던 나는 나만을 사랑했다.

      

삶이라는 선택에는 많은 힌트가 있었다. 도움의 손길이 마치 천사의 위로처럼 내게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천사는 힘든 고갯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천사를 보지 않으려는 것 또한 우리의 선택이었다.  

   

마지막 죽음 앞에서 아무런 아쉬움과 회한도 없이 “아! 잘 살았다” 하며 힘들었지만 그것을 보상할 만큼 충분히 기뻐서 삶에게서 받았던 그 어떤 수고로움도 오히려 고마운 그런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고 영원 속에서 그 기쁨을 오래오래 누리며 살아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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