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안개, 더 흐릿해지기 전에

나이 마흔, 벌써 노안인가…휴대폰 내려놓기

by 리앙

어릴 때부터 늘 평균치에 목말랐다.


우선 남들보다 월등히 큰 키가 부담스러웠다. 유치원 때는 또래 친구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고, 학창시절 내내 늘 뒷자리를 사수했다. 유난히 목도 길고 말랐던 터라 의도치 않게 어깨와 등이 굽었다. 조금이라도 작아지고 싶은 열망이 담긴 신체변화였다.


안경 역시 외모 컴플렉스에 한 몫을 했다. 한창 더울 땐 콧잔등을 따라 흘러 내리는 안경이 야속했고, 얼굴에 홍조가 짙어질때면 그 촌스러움은 배가 됐다.


안경을 쓰기 시작한 건 6살 즈음.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유난히 잘 넘어졌다고 한다. 평상시엔 얌전한 아이가 밖에만 나가면 무릎이 깨져 오니 옆집 아주머니가 '안과에 한번 가보라'고 권하셨다고.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랬다. 난 눈이 나빴던 것이다. 어머니는 안과 진단을 받고 나오는 날, 미안하다며 펑펑 우셨다. 앞이 보이지 않아 넘어졌던 것인데 부주의하다며 혼냈던 본인을 자책하셨다고 했다. 당시 어머니께서 느끼셨을 그 죄책감, 막막함, 자신에 대한 원망을 생각하면 괜시리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나의 안경잡이 인생이 시작됐다. 하지만 늘 벗어나고 싶었다. 남들처럼 자유롭게 내 눈으로 직접 바람을 맞고, 말간 얼굴로 밖을 활보하고 싶었다.


대학 때는 하드렌즈와 사투했다. 아름다움을 위해 내 눈의 아픔 따위는 잊을 수 있었다. 심지어 중국에서 공부하던 시기, 그 흙먼지 가득한 곳에서도 하드렌즈를 사수했다. 남들은 흔하게 받는 라식, 라섹 수술도 받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고 한동안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직장에 들어간 순간부터는 소프트렌즈를 선택했다. 출산 이후엔 안경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외모보단 삶의 편리성이 중요해진 탓이다.


안경잡이 인생 삼십여년. 그런데 올해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주일 전부터.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고, 멀리 있는 글자를 도무지 읽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 노안인가.


마흔에 접어들면서 부터 늘 조마조마했는데. 설마 이보다 더 안좋아지랴 생각했는데. 바닥이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밑이 훅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내 삶을 돌아봤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한시간 가량 웹서핑부터 웹툰까지 섭렵했던 지난날. 출퇴근 길 지하철에선 물론 잠자기 직전까지 내 손을 떠나지 않던 휴대폰이다. 이제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된 것인가. 사람은 참 간사하구나. 그간 휴대폰이 눈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정보를 수도 없이 보아왔는데 내 몸에 이상이 생기고 나서야 변화를 다짐하다니.


물론 휴대폰 말고도 내 시력에 해가 되는 존재들은 많다. 업무 내내 들여다보는 노트북, 휴식 시간마다 찾아보는 각종 OTT, 그리고 취미이자 마음의 안정을 위한 십자수까지. 그럼에도 나는 우선 핸드폰을 멀리하기로 결정했다. 내 눈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너다.


변화의 첫날은 오늘. 어젯밤 휴대폰 대신 제본된 스도쿠를 풀다 스르르 잠든 나는 유난히도 일찍 잠에서 깼다. 오전 5시반. 평상시라면 침대에 뒹굴거리며 웹소설이나 웹툰을 열독했을 나인데. 휴대폰을 멀리하기로 결심한 만큼 가벼운 스트레칭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누워있어봤자 할 일도 없다.


집안을 휘 둘러보고 쓰레기를 주섬주섬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 시간대 자진해서 밖을 나온 적이 내 인생에 몇번이나 됐던고. 나온 김에 아파트단지 광장을 두어번 돌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솔직히, 휴대폰을 완벽하게 끊겠다고는 할 수 없다. 지킬 자신도 없는 약속 따윈 하고싶지 않다. 다만, 잠자기 전, 일어난 직후 만큼은 휴대폰을 잠시 밀어둘 생각이다. 내 눈을 위한 작은 약속이다. 어젯밤 10살 아들에게 '이제는 잠자기 전 휴대폰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나의 포부를 밝히자 '잘 생각했다. 그간 너무 하더라'며 뼈아픈 핀잔을 한다. 역시 예리한 녀석.


시력 뿐이랴. 한번 나빠진 건강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간 걷기운동에만 빠져 내 눈 건강은 등한히 했던 나 반성한다. 비록 작심삼일일지언정, 새로운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니까.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는 선택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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