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백과 비급여
과배란 주사 투약 8일 차 약값만 130만 원 나왔다. 진료비 다 빼고 순수하게 약가만.
다른 때보다 배 이상 더 나온 건데 시험관 6차에 접어드니 쓸 수 있는 수는 다 써보고 싶어서 좋은 약으로 맞아보고 있다. 지자체에서 지원해 주는 110만 원에서 차감하고도 앞으로 하게 될 주사, 혈액검사, 채취, 수정, 배양, 동결 비용은 전액 내 돈으로 내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섯 번이나 하고나니 좋은 배아만 얻을 수 있다면 다 하고 싶다는 영혼 깊은 마음 뿐이다.
이번 차수 갈 길이 구만리인데 채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130이라는 금액을 크게 견인한 데는 특정 약 하나가 전액 환자 부담을 해야 해서다. 알려주고 싶은 게 있는데, 전액 환자 부담을 비급여라고 통칭하곤 하는데 비급여와는 다르다. 내가 맞고 있는 주사는 고시된 약가가 있고 적응증도 있다. 약을 시중에 판매하려면 그 약이 효과가 있고 안전하다는 자료를 식약처에 제출해서 판매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대로 팔면 비급여다. 식약처에서 판매 허가를 받고 심평원에 약가를 산정해 달라는 자료를 제출해서 약가를 받으면 그건 급여다. 130만 원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그 약은 과배란주사 중에서 적응증을 좁게 받은 편이고, 그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으면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보험금을 부담해주지 않으며 쓰고 싶으면 고시 약가를 전액 환자가 내야 한다. 이렇게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아 환자가 고시 약가를 100퍼센트 부담하는 약을 급여100 일명 ’ 백대백‘이라고 부른다.
좀 어려운가? 일상에서 난임인들과 대화 나누다 보면 비급여와 백대백을 혼용해서 모두 비급여라고 지칭하는 걸 듣고 한 번 정리해주고 싶었다.
쉽게 말하면 백대백과 비급여 둘 다 건강보험공단의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는데, 백대백은 아무리 많이 내도 환자가 부담하는 가격 상한이 정해져 있고, 비급여는 그 기준이 없다. 병원에서는 적응증을 벗어난 질환이라 해도 백대백은 고시 약가 이상을 받을 수 없고, 비급여는 병원에서 정하는 대로 받을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비급여는 정해 놓은 약가가 없기 때문에 병원마다 금액이 다르고 수납할 때 체감하는 금액도 높다고 느낀다. 비급여가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이런 이유에서 나오는 거다.
백대백과 비급여 중에 뭐가 좋은지는 상황이 워낙 다양해서 단정 짓기가 어렵다. 만약 병을 앓고 있는데 계속 백대백 처방을 받아야 한다면 환자는 경제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살긴 살아야 하니 울며불며 약값을 충당하고 있고…)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약이라면? 비급여 약은 그럴 수 있다. 입맛을 더 좋아지게 한다거나, 피부를 고와지게 한다거나,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만들고 싶어서 약을 쓴다면, 반드시 약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고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다. 이런 약들은 전적으로 환자 선택에 달려 있으니 내 삶의 질이 높아진다면 얼마든지 내겠소 하는 마음으로 비급여여도 지갑을 연다. 이러한 현실로 제약회사는 약을 출시할 때 비급여로 팔 것인지 고시 약가를 받아서 팔 것인지 면밀한 시장조사를 거쳐 전략적으로 결정한다.
뭘 아냐고 이런 말들을 하나 생각하지 말길. 일명 ‘제약회사 약밥’ (제약회사에서 근무한 사람을 비하하는 업계 은어) 10년 먹는 동안 주워 들어 전문용어까지는 못써도 일반인 이해시킬 정도로 설명할 줄 안다. 그러니 이해가 됐다면 나는 소기의 임무를 달성한 양 의기양양해질 것이고, 이래도 이해가 안 간다면 마음이 짠해질 것이다.
(약가 2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