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입시 습작 '프라이팬' 전문과 비평
나는 조건이 많거나 사진이나 음악 등 여러 자료를 제시하는 글제가 어렵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문창과 입시 준비를 수개월 째 계속하다 보니, 오히려 딱 한 단어로 주어진 글제가 훨씬 어렵다고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어, '가을'이 글제로 제시되었다고 해보자. 갑자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평이한 소재들, 단풍, 다람쥐, 고구마 같은 것을 사용해 봤자 다람쥐가 단풍잎에 불을 붙여서 고구마를 구워 먹는 이야기만 나올 것이다. 또는 '고등어'가 주어졌다고 해보자. '어머니가 구워주신 고등어, 짠기가 입이 아니라 눈에서 느껴지네'라는 문장을 써냈다가 나 스스로가 미워져 절필하게 될 것이다. 내가 한 단어 글제를 어려워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집중적으로 연습하기로 했다. 글쓰기 선생님이 가장 어려운 한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우정'이라고 답했다. 오늘의 습작은 '우정'에 관한 글이다. 그리고 미리 당부의 말씀을 드리지만, 이번 글은 특히나 끝까지 읽어주셔야 한다.
글제: '우정'을 소재로 2400자 이내의 이야기를 쓰시오.
제목: 프라이팬
가스레인지에 불이 퉁 튕기며 올라왔다. 수현과 나는 각자 부엌을 쏘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현은 새파랗게 날이 선 부엌칼로 재료들의 옷을 벗겼다. 나는 둥글고 시커멓고 모든 것의 바탕이 될 프라이팬을 꺼내 홀로 타고 있는 불 위에 올려놓았다. 표정 하나 움찔하지 않고 여전히 새까만 프라이팬은 우리 몰래 조금씩 달구어지고 있었다.
수현이 남자 두 명을 프라이팬 속에 넣었다. 수현이 흑설탕을 솔솔 뿌리자 모래바람이 되어 두 남자를 감쌌다. 남자 하나가 바닥에 침을 찍 뱉었지만 금세 부글거리며 끓다가 증발해 버렸다. 남자 둘은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며 프라이팬 가장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남자 하나가 자신의 발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고기 냄새를 맡고 눈을 크게 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남자 하나가 선수를 쳐 상대의 왼쪽 볼에 주먹을 꽂았다. 남자가 허연 치아를 토하듯이 뱉어냈다. 남자들이 난투극을 벌일 동안 그들이 몸에서 빠져나온 땀과 피가 프라이팬 한쪽에 고일 정도가 되었다. 내가 새끼손가락으로 고인 물을 살짝 찍어서 맛을 보니 짜고 기름진 맛이 났다. 굴러다니던 치아가 한 남자의 발에 차여서 소금과 기름이 고인 곳에 풍덩 빠졌다. 치아는 지글지글 튀겨지다가 배를 까뒤집어 안쪽의 내용물을 전부 보여주며 펑하고 튀어 올랐다.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 남자 둘은 싸움을 멈추었다. 튀겨진 치아는 부엌 어딘가에 떨어졌는데, 수현이 용케 찾아서 지 입에 넣는 듯했다. 바삭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남자 둘은 어느새 어깨동무를 하고 자기 고백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둘이 크게 웃어젖히며 어깨동무를 한 채로 뒤로 천천히 쓰러졌다. 그들이 검고 딱딱한 바닥에 머리를 박지 않도록 수현이 재빨리 잔디를 깔아주었다. 내가 계란을 깨어 프라이팬 위에 떨어뜨리자 계란 노른자는 노을이 지는 듯이 천천히 아래로 하강했다. 해가 전부 지고 잔디와 하나가 된 남자 둘을 내가 앞뒷 면으로 골고루 익힌 후에 접시에 담아내었다.
나는 여자 두 명을 프라이팬에 올렸다. 그들은 지퍼처럼 손가락이 맞물리게 깍지를 끼고 있었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연기가 깍지 낀 손을 녹였다. 손가락 틈새로 버터를 녹인 물이 흘러나왔고, 여자 둘은 미끄러지듯 서로의 손을 놓았다.
한 여자의 정수리가 열기를 못 이겨 움푹 파이더니 그대로 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분열을 거듭하던 여자는 어느새 수십 명이 되었고, 재잘거리는 소리는 납작한 프라이팬에서 흘러넘칠 정도가 되었다. 수십 명의 여자들이 분열하지 않은 한 명의 여자를 곁눈질로 흘겼다. 새초롬하게 뾰족해진 눈꼬리에서 별사탕이 튀었다. 여자들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긴 혓바닥을 날름거릴 때마다 소름 끼치게 신 레몬즙이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수십 명 분의 산성을 온몸으로 받아낸 여자는 몸에 구멍이 뚫리며 녹았다. 형체도 없이 곱게 녹은 여자를 수현이 티스푼으로 떠서 맛을 보았다. 시큼털털한 맛에 깜짝 놀란 수현이 혀를 내둘렀다. 여자들은 강강술래를 하며 보름달을 그리다가도 무리를 이탈한 사람은 독사 같은 혀로 녹여버렸다. 마침내 남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침을 뱉다가 동시에 스러지자, 나는 그 레몬 향이 나는 액체를 컵에 담았다.
수현과 내가 프라이팬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 둘 다 티스푼이나 프라이팬을 쥐고 있던 손이 비어서 허전함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수현이 먼저 손을 내밀고 내가 그 손을 잡았다. 맞닿은 손바닥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땀방울이 배어 나왔다. 나는 남은 손을 오목하게 만들어 땀방울을 담아 맛을 보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어느새 맛을 본 수현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눈을 흘겨보기도 했다. 오랜 시간 눈을 깜빡이지 않고 수현만 쳐다보니 벌건 점막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동그랗게 커지다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윗입술까지 다다른 눈물을 혀로 날름 훔쳐내었다. 희미한 짠맛도 나지 않았다.
그 남자들처럼 싸워보면 어찌 될까 싶어 수현과 나는 서로의 머리카락을 쥐 뜯었다. 내 손톱에 몇 가닥 걸린 수현의 머리카락을 삼켜도, 서로의 몸에 난 잇자국에서 흐른 피를 핥아도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숨을 헐떡헐떡 쉬다가 산발이 된 수현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수현도 내 몸에 내려앉은 먼지를 훌훌 불어서 털어냈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가 프라이팬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수현이 내 어깨를 밟고 프라이팬 바깥으로 나갔고, 힘차게 도약하다가 추락하는 나를 수현이 받아주었다.
나는 세상이 여자와 남자의 우정을 다르게 묘사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남자들은 주먹다짐을 해도 뒤끝이 남지 않지만, 여자들은 쩨쩨한 감정을 붙잡고 서로 질투나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선입견에 한 번 큰 코를 다친 적이 있어 나의 경험을 이 글에 풀어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글은 문창과 입시에 사용되기에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너무 추상적이고 상징적이라는 점이다. 특히 극작과나 서사 전공의 시험을 칠 생각이라면 목표와 결핍을 가진 전통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기승전결을 꾸미는 것이 안전하다. 내가 문예창작과 시험을 보기 위해서 어느 정도 서사 공부를 했다는 점을 채점자에게 어필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하고자 하는 말이 맨 뒤에 나온다는 점이다. 채점자는 바쁜 교수님들이시기에, 전반부에서 제대로 된 주제의식이 나오지 않으면 결말 부분까지 읽어주실 확률이 희박하다. 내 글은 전반부만 읽으면 '남자의 우정만이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보이므로 더욱 심각하다. 그래서 습작을 보이기 전에 제발 끝까지 읽어주십사 하는 당부의 말씀을 드린 것이기도 하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글을 내가 쓴 습작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한다.
나는 인식이 실제에 선행하는지 궁금해서 내가 마음대로 굽고 찔 수 있는 프라이팬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성별 간 우정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같은 장면을 봐도 정보가 왜곡된다고 생각했다. 프라이팬 속에서 남자들은 만신창이가 되어도 어깨동무를 하고 잔디밭에 눕는다. 여자들은 깍지 낀 손도 풀어버리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침을 퉤퉤 뱉는다. 불닭볶음면에서 불닭볶음면 맛이 나길 기대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들의 우정을 안 먹어봐도 무슨 맛인지 알아버린다. 우정에서 한 가지 맛만 날 것이라는 기대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여자아이들의 거짓된 우정'이라는 표어 아래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애정, 질투와 소유욕이 전부 뒤섞여버린다.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는 얄미운 여자아이들 모습만 남고, 그 이면은 모두 잘려나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내가 그랬듯이) '여자들보다는 남자가 편해'라고 말하게 된다. 나는 우물 속에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세상의 반쪽과 나눌 수 있는 모든 감정적 교류를 포기하고,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얕은 감정에서만 놀게 되니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물론 여자들이 나누는 우정이 언제나 최고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찍어 누르려는 사람도 있고, 비열하게 뒤에서 배신하는 사람도 있다. 여자 아이들도 공격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여자들은 원래 천성이 앞뒤가 다른가보다 하는 엉뚱한 결론으로 다다른다. 이에 관해서는 레이철 시먼스의 '소녀들의 심리학'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사춘기 남학생들이 주먹다짐을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처럼, 여자들도 공격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자 아이들의 욕구는 물리적 폭력으로 표출되기보다는 '관계적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오늘 잘 놀다가 갑자기 내일 너를 무시하고, 뒤에서 속닥거리고, 쉬는 시간에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관계적 공격성이 나타나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여자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 그 자체를 긍정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행동이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해도, 이를 직접적으로 지적하기보다 대상 자체를 무시하기로 결정한다. 둘째는 여자아이들이 얌전하기를 바라는 사회적 규범 때문이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행동을 크게 하는 여성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조용히 은밀하게 상대를 망가뜨리는 수동 공격을 선택한다.
나도 모든 것을 다 바친 우정이 있었다. 그때만큼 타인을 사랑했던 적도, 미워했던 적도 없어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해도 이 정도로 강렬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멀어진 이유는 쌍방에 있지만 내 잘못이 조금 더 컸다. 너와 점심시간에 밥을 같이 먹거나 하교를 함께 할 수 없게 되면서, 나는 '아! 이게 여자의 우정이구나!'라는 이상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관계를 회복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남자 애들 무리로 쏠랑 도망갔다. 그러나 남자아이들도 성격이 맞아 친해지고 싶어 온 사람과, 그냥 무작정 도망쳐 온 사람이 다르다는 걸 안다. 나는 이면에 숨긴 것이 아무것도 없는 단순무식한 사람을 연기했지만, 아무하고도 동등해지지 못한 채로 졸업했다. 끝까지 노력했던 너와는 다르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겁했다. 내 안에 여자들의 우정이 시큼털털하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하는 의미 없는 가정을 하게 된다. 나는 물을 붓기로 했다. 백 리터, 이백 리터의 물을 부어서 시큼털털한 맛을 희석시켰다. 그래서 네가 눈을 흘기어도, 손깍지를 빼도, 팔짱을 풀어도 아무 맛이 안 나게 했다. 폭포수처럼 물을 흘려보내고 나니, 너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만 남았다. 그 마음을 붙잡고 나는 오랫동안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