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입시 습작 '하루' 전문과 비평
나라를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논쟁은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언제나 대체적으로 약소국이 자의 10% 타의 90%로 문을 연다. '진격의 거인'의 후반부에서도 쇄국이냐 개국이냐 하는 정치적 논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진격의 거인에서는 예외적으로 약소국이 나라를 개방하는 대신, 나라 밖의 인간들을 거의 전멸시키는 미친 선택을 한다. 오늘의 습작에도 나라의 개방을 둘러싼 갈등이 나타난다. 대신 이 나라의 구성원이 조금 특수하다.
글제: 이 달력에는 7일이 사라졌다. 인쇄가 잘못된 달력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달의 하루가 사라진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독창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만들되 4명 이상의 인물을 등장시키시오.
제목: 하루
장은 투표에 따라 달의 1일을 없애 한 달의 시작을 늦추기로 하였다. 본토와 전혀 다른 시간대를 살면서 완전한 고립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나는 숫자 1을 7로 잘못 본 척하며 7일이 없는 이빨 빠진 달력을 만들어냈다. 고립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나라는 여성 노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출신이 분명치는 않지만 모두 먹고살만한 손재주가 하나씩은 있어 국가를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모두들 자기 힘으로 숨을 이어나갔다. 다만 내지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를 잡은 우리를 주변 지역들은 눈엣가시처럼 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지자체로 편입시킬 수 있을까 눈치만 보면서.
"이 할망구들이 드디어 노망이 났다며 공무원이 쳐들어올 거야. 결국 네가 망쳤구나."
장이 말했다. 장이 예언한 대로 한 공무원이 서류를 달랑거리며 찾아왔다.
"참 억척스럽게 버티셨군요."
장도 나도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열에 여섯은 정겨워하고 넷은 눈물을 글썽이는 우리의 솥뚜껑 손. 네 뽀얀 손이 게으르지 않듯, 우리는 억척스럽지 않다. 장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테지만 이상하게 조용하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오겠습니다. 공무원이 돌아갔다.
"이제 와서 두고 온 남편이라도 생각 난 거냐."
장이 말했다. 우리는 모닥불을 둘러싸고 회의에 들어갔다. 도장 장인이었던 장은 모닥불 빛에 비춰가며 국새를 깎기 시작했다.
"내가 두고 온 게 그런 것뿐이겠나."
내가 대답했다. 다른 마을 구성원들이 내게 볼멘소리를 했다. 네 년을 잡아 넘겨도 이제 나라는 돌아오지 않아.
"조용히 좀 해 봐."
인이 목소리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선다. 인의 다리에서 노랗게 빠져가는 멍 자국이 불빛과 섞인다.
"얘가 우리 남편이 자는 사이에 나를 둘러메고 왔던 걸 생각해 봐. 변명은 하게 해 줘."
인이 말했다. 나는 인의 말에 힘입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억척스럽지 않은 할머니가 전부 어디 갔는지 아나? 왜 열심히 살아오기만 한 우리가 억척스럽단 소릴 듣지?"
억척스럽지 않은 할머니는 전부 죽거나 갇혔다. 내가 인을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면 내 오랜 친구처럼 썩어 나자빠졌을 것이다. 우리가 나라의 문을 닫고 고립된다면, 그것은 포기하겠단 뜻이고, 우리가 진다는 뜻이다.
"우린 언젠가 죽어. 죽는 건 지는 게 아니야. 이을 사람이 없을 때 지는 거야."
내가 말했다. 장이 조각칼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이빨 빠진 달력의 구멍이 썩은 잇몸 구멍인지 아니면 다른 돌파구가 될지 지켜볼 사람이 필요했다. 장이 말했다. 투표하자.
공무원이 장이 내민 국새를 코웃음 치며 쳐냈다. 힘이 달리는 장이 골랐던 나무는 썩어서 물러진 나무였다. 그런 나무로 만들어진 국새는 하룻밤 새에 뒤틀려서 형태가 변했다. 공무원은 어차피 아무런 권위가 없는 그 도장으론 서류에 효력이 안 생긴다며 국민들에게 각자의 인감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길게 늘어서서 서류에 빨갛게 이름을 새겼다.
인이 '난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도장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럼 펜으로라도 적으세요. 공무원이 답했다. 나는 인에게 손짓으로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달라고 한다. 인은 이름을 까먹었다고 말한다. 황당해하는 공무원에게 인이 말했다.
"아무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는 걸."
인이 주민 번호도 집 주소도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자 공무원이 인의 팔목을 잡으며 이야기한다.
"할머니, 지금 할머니는 세상에 없는 사람인 거 알아요?"
갑자기 우릴 둘러싼 숲이 더 깊고 어두워진다. 내가 공무원에게 지금 그게 무슨 뜻이냐고 따진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 공무원이 뒷말을 먹어버릴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장이 확성기를 켜는 소리였다.
"국민 투표에 따라 우리는 주권을 포기한다. 다만 주권 포기 각서에는 이 국새로 도장을 찍을 것이며, 우리는 우리가 편입될 지자체를 고를 수 있다."
장이 들어 올린 나무 도장에 곰팡이가 올라와 군데군데 검버섯이 핀 듯했다. 장의 뒤로 검은 차가 줄줄이 서고 공무원이 잇따라 내린다.
글제는 2011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문제였다. 이때 한예종 극작과 시험이 임박한 시기여서, 극작과뿐만 아니라 연극원의 모든 과에서 출제된 문제를 닥치는 대로 풀었던 것 같다. 이 문제에서는 달력에서 하루가 사라진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굳이 7일이라는 날짜를 제시한 것을 보면, 숫자에도 어떤 의미를 담길 바랐던 것 같다. 차라리 달의 첫날이나 마지막 날이었으면 의미를 부여하기 쉬웠을 텐데. 나는 달력의 1일을 삭제하려다가 '나'의 개입으로 7일을 삭제한 상황을 상상했다. 하루가 삭제된 이유를 짜내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건 인물을 네 명이나 등장시켜야 했던 것이다. 인물의 수가 늘어날수록 골치가 아프기 시작하는데, 대화의 핑퐁을 짜다가 머리가 꼬여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뉴월에도 빛이 내리고'의 주인공을 세 명으로 설정한 것은 내 나름의 도전이었다. 그러나, 결국 대화를 짜다가 이 말을 누가 했는지 헷갈려버렸고, 편집자님이 '이것은 누구의 대사일까요?'라는 피드백을 수십 번 하게 만들었다. 이 습작도 누가 말했는지 제대로 표시를 안 해두어서 정신을 붙잡고 '00이 말했다'를 추가해야 했다.
이 습작은 사실, '덴데라'라는 소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덴데라는 주기적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내 책장에서 12년을 버틴 책이자, 아직 읽은 사람을 만난 적 없는 책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나이가 많아 설산에 버려진 할머니들이 모여 여성 공동체, '덴데라'를 이룬다. 그러나 설산의 주인인 식인 곰(!)이 할머니들을 공격해 잇따라 사망자가 나와, 할머니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덴데라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이야기지만 어린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 습작에서 완고하고 우직한 '장'은 덴데라의 수장이자 식인 곰을 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 '메이'를 닮았다. 이런 '장'과 계속해서 부딪히는 '나'는 덴데라 소설의 주인공 '가유'와 비슷하다. 덴데라가 이토록 인상 깊었던 이유는 '할머니'란 집단을 단일하게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할머니는 식인 곰을 잡아 족치기 위해 진형을 짜지만, 다른 할머니는 다른 곳으로 이주하길 택한다. 죽은 친구의 시체를 붙잡고 무너지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어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에 세상에 식인곰과 자신, 단 둘만 남은 듯이 고요해진다. 할머니는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으며, 논쟁을 벌일 수 있고, 싸우기를 택하거나 포기하고 도망갈 수 있다. 굉장히 당연한 듯 보이는 말이지만, 글을 쓸 때는 생각보다 이 당연한 말을 놓치게 된다.
이를테면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것이 있다. 어린이라는 캐릭터를 쓸 때, 어린이가 이야기 속에서 해줬으면 하는 역할이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거나, 서사를 지연시키는 장애물이 되거나, 아니면 바이럴을 위한 마스코트가 되어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 역할에만 매몰되어 쓰다 보면 혀 짧은 소리로 앙앙대는 어린이의 탈을 쓴 키메라가 탄생한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어린이의 껍데기 속에 모니터 빛으로 눈이 퀭한 내가 들어 있다. 그러니 지금 읽는 사람도, 나중에 읽을 나도 기분이 더럽다. 그래서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의 대사를 쓸 때는 정신줄을 똑바로 붙잡으려고 한다. 언젠가 글쓰기 선생님께 어린아이의 대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아마 학생과 똑같이 말할 걸요...'라고 했다. 잘 들어보면 정말로 할머니든 어린이든 나와 똑같이 말한다. 할머니들도 이야기에서는 어린이와 비슷하게 사용된다. 사실 모든 마이너리티는 이야기에서 비슷하게 사용되는 것 같다. 걸음이 느리니 재난 상황에서 대피하지 못하고 주인공을 희생시킨다. 혹은 그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관객은 눈물을 글썽이고 깨달음을 얻는다. '억척스러운 손'이 할머니에 얽힌 클리셰를 상징한다. 억척스럽지 않으면 이야기에서 배제되니, 이야기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모두 억척스러운 손을 가지고 있다.
이 습작에서 나는 개국을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정치적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도록 설정했다. '장'은 나라의 문을 닫아서 완전히 고립된 국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어딘가에 종속되더라도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 글에서 '나'는 나라가 완전히 고립된다면, 나라 밖에 있는 할머니들을 저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연결되기를 포기한 나라는 팽창하지 못하고 결국 패배한다고도. 나도 이성적으로는 주인공의 말에 동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니 근데 왜!'라는 억울함이 튀어 오른다. 기껏 나의 이상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졌는데, 이를 포기하고 바깥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건강한 토론과 논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공존해야 한다고? 이런 모든 책임감과 인간 된 도리를 저버린 이야기가 진격의 거인이 아닌가 싶다. 진격의 거인은 일단 한 세대의 인간을 모두 쓸어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한다. 나는 진격의 거인의 결말에 큰 거부감을 느꼈는데, 밟혀 죽는 게 일본 밖에 사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내 속에도 비슷한 파괴 충동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낀다. 나도 철조망으로 칭칭 감은 빌딩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넣어서, 이 한 세대가 죽을 때 모든 것이 끝나는 세계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이기적이며 파괴적이지만 달콤하다.
결국 내 습작에서 '나'의 주장에 따라 '장'은 나라의 문을 열기로 한다. 그러나 '장'은 어떤 지역에 종속될지는 국민의 손으로 정한다고 말했다. 이 결말에는 많은 걱정이 드는데, 약소국이 종속될 국가를 스스로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갈가리 찢겨 분단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들의 나라가 유지되는 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싶다. 물론 진격의 거인처럼 할머니들이 외집단을 다 죽여버리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겠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그런 이야기를 써주신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 글을 다시 쓴다면, '장'은 주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할머니들의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강대국 사이에서 자신들의 나라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장'과 '나'는 서로를 물어뜯으면서 완전한 고립과 식민 지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나간다. 주권을 포기하거나 완전히 울타리를 치는 세계선보다 이들은 더욱 험난한 길을 걸어가니, 건투를 빌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