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입시 습작 '지퍼' 전문과 비평
특별한 0시 0분 0초가 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때. 1999년에서 새천년으로 넘어가는 그 때. 미성년에서 성년이 되는 그 때. 그 시간이 지나면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정작 나는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미성년이었던 나는 성년이 되는 순간을 오래도록 고대해왔으나, 너무 들뜬 티가 나면 가오가 살지 않아 아무 감흥이 없는 척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성년이 되는 시점에 무엇을 할지 신나게 계획을 세웠다. 나는 1월 1일이 되자마자 집 근처 술집에서 흑맥주를 시켜보았다. 그냥 노란 맥주를 시키지 않은 이유는 특별한 순간을 장식하려면 특별한 맥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흑맥주는 재떨이를 마시는 맛이었고, 그 이후로 다시는 흑맥주를 마시지 않았다. 처음 술을 마셔서 뜨거워진 내 가슴에 얼음 덩어리가 몇 개 굴러오듯 갑자기 슬픈 기운이 엄습했다. 음. 이거였군, 이런 거였군. 오늘의 습작에는 성년이 되는 0시 0분 0초에 내가 느낄 감정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다.
글제: 지퍼
제목: 지퍼
형의 정수리에서 성기까지 길게 지퍼가 있다. 누구나 성인이 되기 전에 지퍼를 내려 자신의 허물을 벗어야 했다. 형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순간 지퍼를 잡아 내렸다. 일종의 세레모니인 것이다. 형의 이마가 열리고, 가슴과 배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마지막으로 성기 털이 지퍼에 엉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약간 축축한 형의 중심이 껍데기를 완전히 벌리고 나왔다. 형을 둘러싸고 있던 엄마와 아빠, 나는 박수를 짝짝 쳤다. 0시였다.
형은 그날부로 담배를 피웠다. 시계 분침 한 칸 사이에서 모든 제약을 떨친 것이다. 이것봐라, 이게 도나쓰다. 형은 타이밍을 잘 못맞추어서 이빨 빠진 도나쓰를 만들었다. 형은 머쓱한 듯 웃으며 불이 붙어있는 담배를 자신의 허물과 교복 위에 던졌다. 생각만큼 불이 일지 않자 형은 라이터까지 동원하여 교복을 태웠다. 그 행동이 유치해보여 나는 픽, 웃었다. 형은 말했다.
“짜치냐? 짜쳐도 돼. 중요한 건 상징이야.”
졸업식이 다가왔다. 나도 곧 형처럼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항상 모두와 같이 주류의 길을 걸어 왔다. 한날 한시에 다 같이 손을 잡고 결승선의 흰 띠를 자르듯이 발을 내딛으면 어른이다.
졸업생 대표로 강이 뽑혔다. 선생님은 평소 행실과 성적 등을 종합하여 모두의 귀감이 될 만한 학생을 골랐다. 강은 졸업식 날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 올라 전교생의 앞에서 그의 지퍼를 내려보일 것이다. 그리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튀어나올 테지만, 우리는 그를 선망하지 않을 것이다. 지퍼야 언제든지 내릴 수 있다.
“졸업생 대표, 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강의 어머니가 계단을 뛰듯이 올라갔다. 강은 긴장했는지 걸음걸이가 미적거렸다. 어머니는 강의 몸을 가리기 위한 가리개를 마술 도우미같은 몸짓으로 드륵드륵 끌고 왔다. 가리개 너머로 강과 어머니의 그림자가 비쳤다. 강의 긴장된 숨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려왔다. 자, 이제 내립니다! 어머니는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처럼 손을 쭈욱 펴서 그림자가 뭉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지퍼를 한 번에 내렸다.
강의 비명소리가 스피커를 찢었다. 파릇파릇한 풀의 비린내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강의 어머니가 허둥대다가 가리개를 쳐서 넘어뜨렸다. 강의 지퍼는 그의 성기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허물은 강의 배 어딘가부터 중심과 융합되어 있었다. 허물과 중심의 균형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강은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중심에 공기가 닿자 고통스러운듯 무대를 굴렀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중심에 붙어 너절한 허물을 억지로 잡아 뜯으려 했고, 강은 기절했다. 선생님들이 강을 들것에 실어 무대를 내려갔다. 우리는 졸업했다.
엄마와 아빠, 형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내 정수리의 지퍼를 잡았다. 졸업식에서 맡았던 풀비린내가 지금도 나는 듯 했다. 맞물려있던 한 쌍의 돌기만큼 지퍼를 내리다가 나는 울었다. 못하겠어. 엄마가 걱정스러운 듯이 일어나 말했다. 엄마가 대신 내려줄까? 나는 엄마가 내게로 뻗은 손을 세게 쳐냈다.
이 글은 사실 문예창작과 입시를 위해서 연습한 글은 아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매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종횡무진'이라는 청소년 창작극 워크숍을 진행하는데, 거기에 지원하기 위해 쓴 글이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서류 문제 중에 '5개의 단어 중 하나를 골라 짧은 이야기를 쓰라'는 질문이 있었고, 그 단어 중 하나가 '지퍼'였던 모양이다. 이 글로 무사히 합격하여 종횡무진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었고, 또래 청소년들과 연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해보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 이 글로 맛 보았던 성공을 잊지 못했던 나는 포스텍 SF 어워드에 지원할 때, 이 글을 모티브로 한 초단편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원고지 00장'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어, 나는 정말로 원고지 형식으로 써야 했던 줄 알았다. 포스텍 SF 어워드의 미니픽션 부문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5000자 이내의 초단편 두 편을 제출해야 한다. 나는 전공을 녹여낸 '인면화'와, '지퍼'를 새로 쓴 '허물'을 제출하여 수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상 작품집에는 '인면화'만 실려 못내 아쉬웠다. 이렇듯 내가 글로 거둔 성과를 거슬러 올라가면 뿌리에는 '지퍼'가 있다. 내게 큰 의미를 가진 글을 기록해둘 수 있어서 기쁘다.
인물이 어떤 중요한 시점을 지나갔을 때, 신체 일부가 변화하는 설정은 자주 등장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일본 고전 BL, Loveless가 있다. 이 만화에서는 모든 인류가 태어날 때부터 귀와 꼬리가 있지만 성관계를 한 순간 귀가 사라진다. 첫 성관계에 이 만큼의 의미를 부여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는 잠깐 넣어두겠다. 어떤 시점에 신체의 큰 변화를 맞는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순간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변했어야만 했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 헛헛한 것이다. 사고의 방식이 바뀌든, 귀와 꼬리가 잘리든, 한 꺼풀 벗고 새로운 내가 되든, 무언가 달라져야만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성년이 되기 약 2년 전에 '지퍼'를 썼다. 이 글을 쓰며 내가 0시 0분 0초를 맞이했을 때의 기분을 깊게 상상하였다. 그러나 느껴지는 것은 온통 불안, 불안, 불안 뿐이었다. 한날 한시에 발을 내딛으면 모두가 어른이 될텐데, 그 시간을 통과하기 전의 나와 후의 내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을까봐 무서웠다. 더 나아가서 나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세상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이 두려움으로 깊숙히 들어가보면, 나를 괴롭혔던 모든 상징이 깡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미성년이었기 때문에 인권이 반만 있는 듯한 취급을 받았던 적이 있다. 입고 싶지 않은 옷을 입고, 부당한 말을 들어도 참았고, 의견이 묵살되어도 웃었다. 사람 말을 말 같지 않게 듣는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은 녹록치 않다. 설명되지 않는 불합리는 사람을 미치게 하므로, 내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냈다. 내 사고가 미성숙해서 그렇지, 어른이 되면 이 모든 이치를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며 스스로에게 되뇌였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어떤 시간을 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징을 획득하였고, 세상은 나를 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물론 어린 성인 여성의 말을 진짜로 귀담아 듣는 사람은 몇 없지만, 예전과 비교해서 듣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0.5 인권에서 0.8 인권 정도는 올라왔다고 볼 수 있다. 그깟 교복을 불에 태우고, 담배 연기로 도나쓰를 만드는 얕은 주술에 날아갈 것들이었다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 걸 그랬다. 이 마음 때문에 한 모금 마신 흑맥주 앞에서 기분이 들떴다가 추락하기를 반복했다.
지금 와서는 모두가 한날 한시에 되는 무언가가 존재할 수 없다고 느낀다. 누구는 너무 이르게 지퍼를 내렸다가 불타는 고통을 겪고, 누구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내리겠다. 반만 내렸다가 영원히 나머지를 내리지 않을 수도 있겠고, 누구는 매년 조금씩 내리다가 언젠가 지퍼 이빨이 완전히 분리되겠다. 궁극적으로는 지퍼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지퍼를 내렸든 아니든 세상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19살의 내가 큰 허탈함을 느꼈던 0시 0분 0초는 그저 2025번 중의 한 번일 뿐이었으므로.
최근에 나는 성인을 만날 때보다 청소년을 만날 때 말을 더 조심하려고 한다. 0시 0분 0초의 허탈함을 다 잊은 것처럼 나는 비굴해졌기 때문이다. 나이 지긋한 어른 앞에 가면 자연스레 목을 숙이게 되지만, 청소년 앞에서는 나는 어른이라며 목이 빳빳하게 서버리니까. 지퍼의 상징에 먹히지 말아야지. 지퍼를 썼던 나를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그 때의 나를 대하듯 다른 청소년도 대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