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에는 다섯 가지 거짓말이 있습니다.

문예창작과 입시 습작 '목소리' 전문과 비평

by 정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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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나는 거짓말쟁이였다. 하루라도 구라를 안 치면 입에 가시가 돋았는지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오늘 치 구몬 학습지를 다 못 끝냈는데 다 했다고 말했다. 사실 너와 놀고 싶었는데 꼴도 보기 싫으니 우정 반지를 빼겠다고 말했다. 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 시원한 공기가 기분이 좋았지만, 힘들어 죽겠으니 빨리 내려가자고 말했다. 난 항상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지껄였다. 오늘의 습작에는 나의 전매특허, 거짓말이 다섯 가지나 나온다. 누가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찾아봐주길 바란다.


글제: 다섯 가지 거짓말이 포함된 이야기를 쓰시오. (3000자 이내)

제목:목소리


난 내일 태어날 거야.

최초의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가 인의 뱃속에서 울리다가 트림처럼 인의 목구멍을 넘어올락 말락 했다. 결국 인의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간 목소리는 인의 뇌를 뎅뎅 쳤다. 임신 8주 차였다.


인은 헐레벌떡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첫째가 울어재끼는 소리가 교실을 찢어놓았다.

"내가 안 훔쳤다고!"

첫째의 조그마한 주머니에서 나온 낡아빠진 폴더폰이 인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다.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던 인을 어린이집 선생님이 멈추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님. 거짓말은 아이의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이에요. 아니, 이제야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인은 수그린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림자 진 두 눈으로 아직 부풀 기미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태아가 임신 8주 차에 태어나겠다고 말하고 나서 인은 분주해졌다. 유산 시 검사 비용은 얼마인지, 수술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느라 손가락이 쉴 틈이 없었다. 물어뜯은 손톱이 수북이 쌓였다. 중간중간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는 것은 덤이었다. 결국 그 다음날 태아는 태어나지 않았다.


인은 첫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말하지는 않았다며 태아의 정체를 물었다. 첫째보다는 자신이 조금 더 빠를 뿐이라며 태아는 으스대듯이 말했다. 태아가 말할 때마다 인의 목울대도 같이 울려 인은 목이 점차 건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태아와 인이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은 알았으니까 그만 좀 쫑알대라며 태아를 쏘아붙였다.


김현철이 집에 들어오며 인에게 코트를 건넸다. 물 먹은 듯이 축 가라앉은 코트는 옷걸이에도 잘 매달리지 않았다. 한참 옷걸이와 씨름하고 있는 인의 뒤에서 싸구려 스프링 침대가 퉁하고 울렸다. 이웃한 스프링들이 연쇄적으로 삐걱이다가 그것이 가라앉은 뒤에야 김현철이 말을 꺼냈다.

"아들이면 낳자."

그 반대의 경우는 김현철이 일부러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먹어버렸는지 인은 알 길이 없었다. 일찍 재운 첫째의 코 막힌 숨소리를 들으며 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햇살이 인의 몸에 녹진하게 묻어내렸다. 온몸의 털이 녹아내린 김에 인의 눈꺼풀도 슬슬 감겨와 인은 무심코 묻고 말았다.

"너는 남자니, 여자니?"

"아들이야."

인도 태아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인은 임신한 뒤로 배를 쓰다듬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가물가물한 눈을 세게 비비고 손을 바닥에 내칠지언정 배에 얹지는 않았다. 태아가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는 소리가 났다. 태아는 어디서 본 것 같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했다.

"사실은 딸이야."

인이 심호흡을 하자 태아와 인 사이에 팽팽한 긴장의 끈이 놓였다. 넌 아직 생식기가 다 안 만들어졌어. 인의 말에 태아가 한 방 먹은 듯이 벙어리가 되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의사가 말했다. 아주 예쁘군요. 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화면에 보이는 태아는 대부분 짙은 회색이었고 어떤 부분은 아주 검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스프링이 울리고 나서야 김현철이 소리를 내었다. 끼익 거리는 소리는 김현철의 신호이자 자신의 목소리를 묻어주는 가림막이었다. 가림막이 얇은 여름철 이불처럼 방안을 뿌옇게 메꾸었다.

"병원에서는 뭐래?"

인의 혀가 입천장의 가장 연한 부분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힘이 부족해 입안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인의 혀를 김현철도 보았다. 김현철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노랗게 꺼져가는 전등을 가리키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때, 태아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 윙윙거리던 목소리가, 화음을 열몇 개를 쌓아놓은 듯한 목소리가 다시 인의 머리통을 울렸다.

"우리 가족은 모두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인이 태아의 말에 힘입어 김현철에게 말했다.

"태아가 말을 해."


인이 들어보라며 배를 내미는데 김현철은 귀를 갖다 대는 대신에 솥뚜껑 같은 손으로 자기 귀를 막았다. 김현철은 회사에서 시달린 얘기, 늘기만 하는 빚, 집안 꼬락서니 얘기를 마구 쏟아냈다. 손으로 귀를 막은 김에 김현철은 관자놀이까지 주물러댔다. 인은 한 번만 들어보라며 김현철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김현철의 차가운 귀에 인의 배가 닿자 뜨거웠다. 인이 저녁으로 먹은 계란죽이 소화되는 소리가 김현철에게 들렸다.

"말을 하긴 뭘 해!"

인은 이럴 리가 없다며 자기 배에다 대고 얘, 얘 하고 말을 걸었다. 인의 목소리가 위와 장을 휘젓고 다녀서 인이 계란죽에다 말을 거는지, 똥에다가 말을 거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인이 짝꿍에게 속닥이는 정도에서 핏대를 세우며 윽박지르는 정도까지 소리를 키웠다.


김현철이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애엄마가 왜 이렇게 약해 빠졌어. 김현철의 목소리가 여러 개의 층으로 갈라져 화음을 열 개는 쌓은듯한 목소리가 되었다. 기괴한 목소리가 인을 스치고, 꺼져가는 노란 전등에 작별인사를 하며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정답을 발표하겠다. 다섯 가지 거짓말은 다음과 같다.


1. 난 내일 태어날 거야.

2. 내가 안 훔쳤다고!

3. 아들이야, 사실은 딸이야.

4. 우리 가족은 모두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5. 태아가 말을 해.


다들 잘 찾아주었는지 궁금하다. 1,3,4번은 태아가 직접 한 거짓말이고, 5번은 인이 속아서 하게 된 거짓말이다. 2번은 그리 중요하지는 않지만, 이 글을 쓰면서 제기하고픈 의문을 이끌어내는 거짓말이다. 첫째가 시도 때도 없이 거짓말을 하자, 유치원 선생님은 '아이가 거짓말을 해야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태아가 언제 인간이 되는지 궁금해서 이 글을 썼다. 그 질문이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을 괴롭혀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수정된 순간부터 출산 직전까지, 무수히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태아는 언제 인간이 아니었다가 인간이 되는가? 그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하던 질문이었다. 정자와 난자인 순간부터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월경은 곧 살인이겠다. (피칠갑된 모습이 살인 사건 같기는 하다.) 수정된 순간부터 인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매우 보수적인 사람일 것이다. 이들은 주로 수정란이 온전한 태아가 될 확률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인간이 될 확률이 큰 개체는 곧 인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과는 곧 사과나무가 아니기에 인간과 수정란은 같을 수 없다. 그렇다면 모체와 독립되어 생존할 수 있을 때 인간이 된 것인가? 그럼 일단 태아를 꺼내놓고 죽는지 사는지 지켜본 후에 죽으면 인간이 아니었다고 안심하는 수밖에 없다. 출산 직전까지도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출산 직전의 태아와 직후의 태아는 질이라는 통로를 지나온 것 이상의 차이가 없다. 질에 '천국의 통로'와 같은 상징을 부여하는 것은 뭐 당신들의 자유긴 하다. 출산 후에는 인간이 덜 됐다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아닐 수는 없다. 결국 수정과 출산 그 사이에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되긴 하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인간만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전제를 제시하고, 태아가 거짓말을 하게 했다. 인은 8주 차가 된 태아에게 질문을 던지고, 속고, 배신당한다. 마지막에는 태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서, 모든 것이 인의 상상이었는지, 태아는 결국 인간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 된다. 수수께끼 같이 이야기를 맺기로 한 것은 내가 태아가 언제 인간이 되는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인이 자기 뱃속에 있는 것을 인간으로 대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마음만 더욱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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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에서 인은 태아와 대적한다. 태아는 인을 속이지 못해 안달이 났고, 인은 그런 태아가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어 한 방 먹이기도 한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하는 꼴이 '케빈에 대하여' 같다. 에바는 케빈을 낳지만, 어렸을 때부터 케빈은 에바에게 이유 없는 적대감을 보인다. 에바는 끊임없이 케빈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케빈의 엄마로서 살아가고자 하지만, 동시에 케빈을 경계한다. 나에게 태아는 항상 케빈 같은 이미지다. 뱃속에 있는 어느 시점에 태아가 인간이 된다면, 내 뱃속에 속을 모르는 존재가 생긴다는 뜻이며, 의중을 모르는 지적 생명체는 언제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김현철은 '태아가 남자면 낳자'라고 말한다. 그 말은 여자면 낳지 말자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인은 태아에게 남자냐, 여자냐를 묻고 있다. 그러나 인은 태아가 여자기를 바라지도, 남자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태아가 자신이 던진 질문의 함정에 걸리길 바랄 뿐이었다. 태아는 처음에는 자신이 남자라고 말하고, 이후에는 여자라고 말하지만 둘 다 거짓말이었다. 이후 의사에 의해 성별이 지정되기는 하지만, 그 순간 인과 마찬가지로 태아에게도 자신이 여자냐 남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태아는 오직 인을 골탕 먹이고 싶어 할 뿐이었다. 이건 번외이지만, 생식기가 생기기 전의 태아가 자신의 성별을 지정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도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이 글에서 인은 낙태를 하냐 마냐의 기로에 서 있으나, 죄책감에 휩싸이지 않아서 좋았다. 인의 이면에 숨은 감정을 어떻게 읽는 것은 자유이지만, 인이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고 엉엉 울거나, 초음파 사진을 따스하게 어루만지지 않아서 좋았다는 것이다. 태아도 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았다. 태아가 하는 모든 거짓말들은 '엄마, 나 좀 살려줘'와 같이 태아의 입을 빌린 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글을 쓴 이유는 출산에 덕지덕지 붙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하고자 하는 물음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뱃속에 있는 것이 인간이냐, 아니냐. 인은 그것을 궁금해하고 있다. 그래서 인은 태아가 딸이어도 낳을 것 같다. 그가 태어나서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때, 인이 그 애를 붙잡고 마구 물어볼 것 같다. 그래서 그때 말을 건 게 네가 맞아? 맞으면 맞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인은 시큼털털한 기분을 느끼겠다. 혹은 그 애가 웃으며 말할지도 모르겠다. 맞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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