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입시 습작 '길디긴' 전문과 비평
나는 유명한 반골 청소년이었다. 중학교를 다니는 내내, 속옷 끈이 그대로 비쳐 보이는 교복 와이셔츠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가슴 둘레가 너무 딱 맞아서 숨 쉬기가 어려웠으므로. 중학교 3년을 그렇게 버티다가 고등학교로 올라갔는데, 교복은 똑같은 꼬라지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창문으로 탈출하는 상상을 하다가 정말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학생이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자,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우리 중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중학교에서 나를 유심히 지켜봤던 선생님은 '아, 걔. 자퇴할 줄 알았어요.'라는 말을 남긴다. 역시 선생님들은 학생을 보는 눈이 뛰어나다.
문예창작과 입시를 준비하면서 쓴 글들에도 이런 반골 기질이 잘 묻어난다. 글쓰기 선생님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잘 기록해두라고 충고하셨다. 어른이 되면 이때의 감정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당연하게도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았고,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의 감정을 글로 남기지 않은 것을 지금 뼈저리게 후회한다. 나는 언제나 청소년인 나처럼 선명하게 화나고, 슬프고, 신날 줄 알았다. 감정이 치올랐던 궤적은 키를 쟀던 연필 자국처럼 잔상만 남았다. 오늘의 습작은 청소년인 나의 목소리가 가장 잘 드러난 글이다.
글제: 사진(휠체어, 물, 물에 뜬 사람, 가라앉은 사람)과 음악(평화롭고 여유로운)을 참고하여 3000자 이야기를 창작하시오. (1인칭, 3인칭)
제목: 길디긴
한강 종주를 한다. 등골이 빠진 엄마를 물에 띄운다. 나는 양손으로 엄마를 잡고 힘차게 발길질을 시작한다. 우리가 중간에 딱 끼인 세대이다. 정부는 만 19세 미만인 사람의 옷차림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지정한 기업의 옷만 사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큰 효과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공만 나와도 벌벌 떠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옷은 공짜가 아니다. 가격은 절묘하게 우리의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형성되었고 앞으로도 찔끔찔끔 높아질 것이 거의 확실했다.
나는 이전에 사 놓았던 옷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20살이 될 때까지 보관해두자니 작아질 것만 같았다. 그때, 선생님이 나를 부른다. 이번 정책을 선전하는 광고에 출연해 봐. 수영을 잘 하는 아이가 필요하다고 했다. 페이는요? 선생님은 내가 농담이라도 한 줄 알고 내 등을 퍽 친다. 거기 감독이랑 잘 협상해보든가! 나는 광고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옷이 비싸지든 싸지든 나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나를 입히고 먹이는 것은 내 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가슴이 답답해 명치를 쿵쿵 친다. 고개를 드니 같은 반 학생들이 날 에워싸고 있다. 우리는 항상 빚을 지는 기분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 빚이 우리가 태어난 대가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광고 찍을 거야? 학생이 물었다. 나 좀 도와줘. 내가 손을 내밀었다.
육각형 사슬같이 엮인 태양 빛이 내 등을 푹푹 찔렀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공기에 초겨울 냄새가 조금씩 스미었다. 나는 휠체어를 끌고 앞으로 나온다. 감독이 요구한 대로 손끝까지 힘을 줘 여유로운 느낌을 낸다. 휠체어에는 '엄마'라는 이름의 목각 인형이 타고 있다. 인형의 허리는 녹아버린 허리를 표현하기 위해 용수철로 얼기설기 엮여 있다. 나는 엄마 인형에게 몇 년 전 유행했던 '길디긴' 패딩을 입혀준다. 감독이 인터뷰를 하는 척 나에게 마이크를 가져다 댄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나요?
"엄마가 일하시느라 허리를 다친 후에 계속 강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하셨어요. 그때 생각했죠. 엄마의 허리를 나가게 한 이 허영 덩어리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세상에 알려주고 싶다."
길디긴을 입은 목각 인형은 물에 아주 잘 떴다. 나는 그 목각 인형을 한 손으로 잡고 강을 헤엄쳐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감독이 조각배를 타고 내 옆에 따라붙었다.
카메라에는 필터 효과가 있어서 강물의 색을 상쾌한 코발트 블루로 바꿔 놓았다. 꼴사납게 퍼덕이는 내 두 발은 슬로우 모션으로 우아한 백조의 다리와 겹쳐질 것이다. 물결과 함께 노래가 흐른다.
나뭇결 사이로 강물을 잔뜩 머금은 엄마가 계속 가라앉았다. 나는 엄마를 손봐달라고 감독을 부른다. 감독이 조각배 끝에 손을 짚는다. 감독과 카메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조각배가 순식간에 뒤집어진다. 수영을 못하는 감독이 허우적대며 카메라부터 챙긴다. 감독이 내 어깨를 밟고 조각배로 다시 올라간다. 나는 눈썹까지 잠긴 뒤에 다시 물 위로 올라온다. 카메라는 방수다. 끊임없이 녹화된다.
초겨울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감독이 벌벌 떤다. 감독이 말한다.
"야, 저 인형한테 입힌 길디긴 좀 벗겨서 줘 봐."
나는 말한다.
"돈 주셔야 하는데요."
"돈이 어딨냐, 육지에 다 두고 왔지."
"돈이 없으면 척추 뼈라도 주셔야 하는데요."
감독이 하, 이 새끼 한다. 나는 조각배의 난간을 잡고 배를 흔든다. 돈 달라구요, 돈을 주라구요, 왜 우리 등골은 안 사가냐구요. 감독이 균형을 잃고 휘청인다. 또 다시 배가 뒤집힐 것 같자 주변을 살피고 내 어깨를 밟아 암청색 물을 잔뜩 마시게 한다.
"아니, 벌써 돈 귀신이 붙었나, 왜 이래?"
물 속에서 목각 인형이 보였다. 길디긴의 품속에서 물살에 엉킨 용수철이 흔들렸다. 그 사이로 숨을 쉬듯 강물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나는 목각 인형을 낚아채고 빠르게 결승 지점을 향해 헤엄쳤다. 발이 일으키는 물보라 뒤에서 감독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육지에서 기다리는 촬영팀이 감독 없이 나 혼자 헤엄쳐 오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감독이 촬영 장비에 문제가 생겨 반대편 육지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감독이 이쪽 촬영을 먼저 끝내 놓으라고 했다고 말하니 촬영팀이 고개를 끄덕인다.
먼 길을 전력으로 헤엄쳐 왔더니 자연스럽게 거친 숨이 나왔다. 허공에 하얗게 부서지는 내 입김에 카메라가 초점을 맞춘다. 내가 천천히 엄마와 함께 가라앉을 때 어디선가 힘내!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다. 학생들이 응원의 목소리를 내면서 길디긴을 강물로 던진다. 그리고 촬영팀이 미리 쥐어준 현수막을 넓게 펼친다. 이런 길디긴보다 너와의 우정이 더 소중해! 꽃가루가 날리고 학생들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른다. 촬영은 그렇게 끝나야 했다.
학생들은 지정된 기업에서 맞춰 입은 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한다. 하얀 와이셔츠가 물에 젖어가며 투명해진다. 촬영팀의 웅성거림이 커진다. 학생들의 속옷 색깔이 똑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속옷을 드밀며 해방을 외쳤다. 촬영을 지켜보던 선생님이 우왕좌왕하며 앞으로 뛰쳐나왔다. 나는 그제야 몸을 떨며 말했다. 감독이 저를 물에 빠트려 죽이려고 했어요. 다 찍혀 있다구요. 아무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선이 삐뚜름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나'의 속마음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감정선이 널뛰는 부분도 있다. 그것도 하나의 매력으로 느껴주었으면 좋겠다. 글제는 사진과 음악 두 가지로 제시되었는데,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이도 메모해둔 것이 있어 글제에 대한 설명을 첨부할 수 있었다. 사진에 등장한 휠체어나 물에 빠진 사람은 글 속에서 중요 소재로 활용하였고, 음악은 글 안에서 광고 bgm의 형태로 직접 삽입되었다. 글제를 최대한 살린 글은 아닌 듯 싶다. 음악의 존재감이 있으나마나 하다.
교복 이야기로 포문을 연 만큼, 이 글에서도 나는 교복을 증오하고 있다. 그때는 교복 업체가 여러 개가 있어서 업체마다 질이나 가격이 달랐다. 좋은 교복을 입으려면 아이돌을 내세워 광고하는 회사에서 30, 40만 원 돈을 주고 맞춰야 했는데 딱 '신경을 긁는' 가격이었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에게도 이게 뭔 희극인가 싶었다. 고등학교 교복은 더욱 비싸졌는데, 그 비싼 교복을 3개월도 못 입고 버려야 했으니 가슴이 아팠다. 자퇴를 해서 필요 없어진 교복은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요즘에는 교복 업체들이 먼저 가격을 학교에 제시하고, 학교가 그 중 한 업체를 낙찰한다고 한다. 교복 업체들 사이의 담합이 없어지니 가격도 조금 내려간 듯 하다. 나아지고 있긴 한 것 같아 다행이다.
교복보다는 교복 위에 걸치는 외투가 더 큰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지금은 일상이 되어버린 롱패딩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센세이션했다. 특히 학생들이 롱패딩을 많이 사 입기 시작하자, 롱패딩은 제 2의 '노스페이스' 처럼 여겨졌다. 학생들의 롱패딩 값을 대느라 부모의 등골이 휘어버린다는 얘기였다. 뼈가 거꾸로 선 나는 기모 스타킹을 두 겹 겹쳐 입으며 '그럼 교복을 따뜻하게 만들든가'하고 생각했다. 추위를 잘 타는 나에게는 '길디긴이 우정보다 소중할 수도' 있었다. 사실 청소년들이 서로를 모방하여 소비를 하고,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점은 짚을 필요가 있는 문제다. 그러나 청소년인 나에게 그 모든 말이 고깝게 들린 이유는 나는 이미 엄마의 등골을 뺐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에서 '나'는 항상 빚을 지는 기분으로 산다고 말했다. 이 시기의 나는 강박적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얼마나 심했냐면, 농부가 피땀 흘려 만든 쌀을 나 같은 사람이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다. 그때 키가 164 센티미터에 몸무게가 41키로였다. 이러니 부모에 관해서는 얼마나 큰 죄책감을 느꼈을지 말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먹여주고 재워주는' 부모님께 '보답'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그리고 자퇴를 한 순간, 학생으로의 본분도 다 하지 못했던 나에게 혐오감이 일었다. 어찌되었건 생산성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밖으로 나갔다.
자세히 얘기할 일이 언젠가 있겠지만, 나는 한 극단에서 노동력을 제공했다. 나는 연극을 배우고, 출근할 곳이 생기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만족해서 돈 받을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같은 학교 밖 청소년이었던 동료는 당당히 돈을 요구했고, 돈을 주지 않으면 극단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극단을 나갔지만, 그 일의 결과로 내 손에는 약간의 팁이 떨어졌다. 그때 눈이 살짝 돌았던 것 같다. 내가 부모님께 죄책감을 가지는 이유는 내가 나를 먹여살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산성을 증명하기 위해 집밖으로 나왔으나, 청소년은 같은 노동을 해도 그 값을 덜 쳐준다. 내가 내 등골을 팔겠다는데, 왜 값을 안 쳐주는 거지? 나는 죄책감의 굴레에 갇힐 수밖에 없는 중요한 구조를 찾아낸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나는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가졌다. 내가 인권에 관심을 갖는 계기는 항상 똑같다. 청소년인 내가 싫어서, 여자인 내가 싫어서 안으로 파고들다가 미치기 직전이 되면 갑자기 멘토스 넣은 콜라처럼 폭발한다.
지금의 나는 불합리를 그때만큼 예민하게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하나가 다 거슬리다가 신경줄이 닳아버린 것 같다. 혹은 내가 이제 청소년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 문제에 그만큼의 정신력을 투입하지 않는 듯 하다. 이렇게 비겁할 수가! 내가 싫어했던 어른의 전형이다. 그래도 반골 청소년은 반골 어른이 된다. 나는 이따금씩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죄책감을 누르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 같은 딸을 가진게 부모님의 행운이 아닐까'하고 정신 승리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산출하는 선(善)을 모두 합해도, 내가 만든 환경 오염을 상쇄할 수 없다. 이런 세상에서 죄책감에 짓눌리지 않고 살려면 약간의 정신승리가 필요하다. 청소년인 내가 원했던 세상은 아직 요원하지만, 조금이라도 그곳에 가닿기 위해 정신줄 붙잡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