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입시 습작 '사골' 전문과 비평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란 뭘까? 매력적인 이야기의 필수 요소를 분석한 연구는 많지만, 그래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이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게 답한 작품으로 웹툰 '매치스틱 트웬티'를 추천한다.
'매치스틱 트웬티'에서는 테러리스트 여고생이 빌딩을 점거하고, 사람들은 인질이 된다. 인질이 된 사람들 중에 세계 제일의 이야기꾼이 섞여 있었고, 그는 테러리스트에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 테니 자신을 살려달라고 말한다. 이야기가 끝난 후, 테러리스트를 포함하여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이야기꾼을 살려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란, 바로 자신이 당사자가 되는 이야기다. 그는 테러 현장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엮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글쓰기 선생님을 가장 끌어당겼던 내 습작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는 홍대 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수업을 했는데, 매주 들리다 보니 어느새 그 카페의 단골이 되어 있었다. (여담이지만 그 카페의 벌꿀 라테는 정말 최고였다.) 어느 날 사장님께서 우리에게 베이글을 서비스로 주셨고, 나는 그 베이글에 얽힌 비밀을 상상하며 글을 썼었다. 어쩌다 보니 미완성인 채로 글을 남겨두었고, 그 글이 선생님께서 결말을 알려달라고 부탁한 처음이자 마지막 글이 되었다. 오늘의 습작도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다.
글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자유 글쓰기 시험 시작 직전, 창밖으로 비행접시가 나타나더니 땅에 착륙한다. 잠시 후 비행접시의 문이 열린다. (3인칭 시점, 2000자 이내)
제목: 사골
비행접시가 인주의 뒤쪽 창문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인주는 책상의 나무 무늬만 눈으로 좇고 있었다. 감독관이 원고지를 휘날리며 밖으로 달려 나갈 때도 인주는 고개를 숙인 채였다. 비행접시는 공터에 착륙했다. 문이 열렸다. 인주를 부르고 있었다. 사골국 냄새가 기름지게 올라왔다.
삼십 대 초반 인주의 새벽. 부엌 창문을 열어 놓는 것을 깜빡해 냄비에서 끓어오른 수증기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아이폰 알람은 두 시간에 한 번씩 울리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인주는 기계적으로 알람을 밀고 부엌까지 걸어가 국자로 냄비를 여러 번 휘저었다.
인주가 십 대 때 날렸던 비행접시가 부엌 창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엌 창문과 접시가 충돌하자 비닐 튜브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십 대 인주가 엉금엉금 기어서 문 밖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십 대 인주가 사골 냄비를 흘낏 내려다보았다.
"보지 말아라."
사골 기름에 머리가 떡지고 목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인주가 말했다. 십 대 인주는 그 모든 것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인주가 부엌 창문을 벌컥 열었다. 증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인주는 국자로 사골을 가득 퍼 담아 십 대 인주에게 뿌렸다. 십 대 인주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인주는 냄비의 은색 손잡이를 맨손으로 잡아 비행접시에 던졌다. 번쩍이는 스테인리스 냄비가 깜깜한 비행접시의 문 너머로 사라졌다. 비행접시는 왼쪽으로 기울었다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하며 달의 뒤편으로 날아갔다.
인주는 대학 입시를 위한 글쓰기 시험을 보는 중이었다. 십 대 인주가 1 지망으로 써냈던 그 예술 대학이었다. 감독관은 핸드폰을 한 손에 꼭 쥔 채로 외쳤다.
"시험은 중지입니다. 안내에 따라 신속하게 대피하세요."
비행접시는 아가리를 벌린 채 인주를 부르고 있었다. 인주는 자연스레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겼다.
비행접시 곳곳에 허옇게 말라붙은 기름이 있었다. 구석에는 몇 년 전에 던졌던 냄비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십 대 민주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굴러다니는 냄비를 발로 멈췄다.
"왜 하필 지금 온 거야?"
인주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나는 가끔씩, 불쑥불쑥 중요한 순간에 나올 수밖에 없어. 네가 가장 찬란했다고 생각하는 시간이니까."
십 대 인주가 붉고 커다란 버튼을 가리켰다. 시동을 거는 버튼이었다. 인주는 망설임 없이 큰 보폭으로 걸어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사골은 누가 끓이게 했어?"
인주는 비행접시의 시동을 걸지 못하고 십 대 인주를 돌아보았다. 인주의 핸드폰이 울렸다. 대학교에서 보낸 문자였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자유 글쓰기 시험은 취소되었습니다. 인주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변경된 시험 일자는 일주일 뒤에 개별 공지하겠습니다.
이쯤이면 다들 눈치챘겠지만, 특이한 글제가 나오면 십중팔구 예술대학교 문제다. 이 글제는 2017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의 글쓰기 문제였다. 나는 집에서 모의 실기로 시험을 봤지만, 시험 현장에서 이 글제를 맞닥뜨렸을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이해가 되긴 한다. 이 글제를 살리기 위해서 '나'를 주인공으로 써야만 할 것 같은데, 내 이야기를 썼다간 글이 평이해질 수도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글쓰기 시험 도중 비행접시가 등장해서 수험생들은 혼란에 빠지고, 주인공은 비행접시를 물리쳐야 한다. 이 플롯에서 나는 최대한 벗어나고 싶었고, 현재의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나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기로 한다. 그 덕분에 미래인인 나에게 이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했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가 섞여 있긴 하지만.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와 만나는 이야기는 클리셰다.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 태풍을 부르는 나의 신부를 보면, 훈이는 만화 작가가 되지 못한 미래의 자신에게 실망한다. 이 극장판에서는 결국 과거와 미래의 내가 협력해서 세상을 구하지만, 내 습작에서는 둘이 죽일 듯 싸우기만 한다. 뜨거운 사골국을 어린 나에게 뿌리기도 하고, 어린 나는 비행접시를 끌고 와서 중요한 글쓰기 시험을 망쳐버린다. 쓸 때는 어린 나의 시점으로 썼지만, 지금은 어른인 나의 시점으로 읽게 되었다. 어린 나에게 한 마디 하겠다.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예나 지금이나 나는 꽤 오만하지만, 그때는 더했다. '사골국이나 끓이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아니 30대 초반인 인주가 능숙하게 사골국을 끓일 수 있으면 정말 대단한 거라고. 나는 라면이나 잘 끓이면 다행이다.) 나이가 들어서 입시를 다시 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입시장에 가보면 생각보다 수험생의 나이대가 다양하다. 물론 고등학생이 제일 많긴 하지만, 20대 중후반인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미 중년에 다다른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이 모든 사람들이 글제를 받는 순간 원고지에 코를 박는다. 십 대의 나는 무의식 중에 그런 사람들을 무시했다. 대학에 입학하는 나이와 취직하는 나이가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내가 미래에 재수하고, 휴학하고, 졸업 전에 입시를 한 번 더 해보고, 지금 백수라는 사실을 알면 걔는 정말 뒤집어질 거다. 어쩌겠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 걸.
어린 내가 미래의 나에게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냈던 것은, 그 당시 내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였다. 이미 고등학교는 자퇴해 버린 상태로 어영부영 지내다 보니 다른 학교로 재입학할 시기도 놓쳤다. 글에 흥미를 붙여서 문창과 입시를 해보고는 있으나 그 조차도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미래를 그리게 되었고, 그것이 사골국을 끓이는 인주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십분 이해가 간다. 나는 삶의 주체성을 잃고 타인에게 종속되는 삶을 살까 봐 두려워했다. 나는 이 습작에 그렇게 되지 말자고 다짐하는 메시지를 담아 지금의 나에게 보낸 것이다. 그것이 이 질문이 나온 이유다.
"사골국은 누가 끓이게 했어?"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삶의 형태든 함부로 연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애란 작가님의 비행운에는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는 어른인 내가 어린 나한테만 할 수 있는 말이지, 내가 아무나의 삶에 대해 대충 들쑤실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최악을 두려워하다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최악이라고 정의해 버렸다. 그 생각은 타인과 동시에 나를 옥죄어버린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떻든 최선의 선택이 이어진 결과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은 나의 몫, 타인의 인생은 타인의 몫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
글제가 글제다 보니 나에 대한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내뱉게 된다. 아마 지금의 삶도 어린 나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일 테다. 그래도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기회를 줬다. 비행접시의 등장으로 중지된 글쓰기 시험은 완전히 취소되지 않았고 일주일 연기되었을 뿐이다. 어린 나에게 또 한 마디 하겠다. 네가 기회를 줬으니 최선을 다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