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입시 습작 '검정과 하나' 전문과 비평
로맨스, 그중에서도 이성애 로맨스는 내 주 분야가 아니다. 특히 그 로맨스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질색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슈가슈가룬'에서 쇼콜라와 피에르의 관계를 매우 응원했으며, 그 둘이 가까워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로맨스를 쉽게 즐겼던 이유는 쇼콜라와 피에르가 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한 차원 낮은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둘은 따지자면 인간이 아니고 마족이며, 중지와 검지 사이로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이 로맨스는 나와는 정말 상관이 없는 것이다. 차원을 한 칸 올려서, 나는 '패왕별희'의 장국영과 장풍의의 사랑에 푹 빠졌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경극 화장을 하고 중국어를 하며, 문화 대혁명에 가로막힌 비극적인 운명을 가졌다. 같은 세계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나와는 꽤 거리가 있다. 거리를 조금 더 좁혀서, 내가 유일하게 별점 5점을 던진 한국, 이성애, 로맨스 작품은 '헤어질 결심'이다. 솔직히 탕웨이와 박해일이 어떤 사랑을 하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박해일이 완벽하게 붕괴하는 모습에 박수를 치며 별을 날렸을 뿐이었다. 이 작품 외에 한국을 배경으로 하며, 등장인물이 한국어를 하는 모든 이성애 로맨스 서사에서 중도 하차했다. 이렇게 한국 로맨스가 내 취향과 동떨어져 있다 보니, 문예창작과 입시에서도 마찬가지로 로맨스 장르는 거의 써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습작을 뒤적거리다 보니 딱 한 편, 사랑에 관한 글이 있었다. 무려 등장인물들이 키스를 한다. 세상에.
글제: 김행숙 작가의 시 '포옹'을 읽고 이야기를 창작하시오.
제목: 검정과 하나
너는 많은 것이 섞인 인간이었다. 수학과 언어, 회계와 철학, 보색과 보색이 마구 뒤섞여 검정으로 흘러내리는 널, 난 그날 처음 보았다. 우리는 시험과 면접을 통해 선발된 사람이었다. 뇌과학의 눈에 띄는 발전을 위해 다소 무리하게 진행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국가가 공인한, 서로의 단점을 가장 잘 보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너는 따지자면 이과 같은 사람이었다. 네가 숫자에만 목매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서 풍기는 느낌이 그랬다. 반면에 나는 예술가 기질이 있었다. 가장 완벽한 인간의 표본을 만드는 실험이기에 이렇게까지 판이하게 다른 사람을 골라왔구나 싶었다. 너는 검었다. 세상 모든 것을 짊어진 사람이었다. 너의 일기는 벌을 받아 쓰는 깜지와 같이 검었다. 나도 곧 너와 같아질 것이다.
이 실험에 참여하면 무조건 죽는다고 보면 됩니다. 연구원이 말했다. 우리 둘 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머리칼을 찰랑이며 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죽으려 합니까?"
내가 묻자 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가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동반 자살자도 아니고, 이 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했는데 괜한 것을 물었다 싶었다.
"나라에 도움이 되려고요."
너는 너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실험의 최종 목표는 우리의 뇌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다. 한 번에 진행시키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았으므로 단계를 밟아갈 예정이었다. 우리는 샴쌍둥이가 될 것이다. 두개골이 허물어진.
수술이 끝나고 나는 눈을 떴다. 하필이면 우리는 전두엽이 연결된 상태였다. 나는 너를 보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너의 검고 깊은 동공을 보려 했지만, 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너의 가느다랗게 ㅌ터진 실핏줄밖에 볼 수 없었다. 너의 모공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너의 피부일 테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냥 모공이었다. 모공이 보이네요, 하고 내가 중얼거렸다. 너는 벌게진 실핏줄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물었다.
"나는 검어 보입니까?"
눈물이 폭포수처럼 흐르는 너는 내가 검다고 새카매서 볼 수가 없다고 소리쳤다. 나도 울며 말했다. 내 뒤에 불빛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그리고 우리 둘은 이마를 맞대고 빙글빙글 돌았다. 너는 잠깐 환해졌다,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새카맣다. 나는 아, 하고 소리 냈다. 너도 따라서 입을 벌렸다. 내가 말했니? 내가 말했지. 아니 내가. 우리가 완벽에 가까워진 걸까. 네가 입술을 뻐끔댔다. 우리 사이는 가까워졌지. 너와 내가 동시에 입을 놀리다 침이 튀었다. 알갱이 알갱이가 뛰쳐나가며 곡선을 이루다 서로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실험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마지막 단계를 눈앞에 두고 말았다. 이제 드디어 여러분이 하나가 되는 겁니다. 연구원이 말했다. 이제 우리의 거리는 0에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0 자체이다. 우리는 너무 가까워진 탓에 죽어도 서로를 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수술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우리는 속삭였다.
"이 실험은 실패할 거야."
그리고 동시에 뻐끔거렸다. 잇사이로 새어 나온 우리의 숨이 격자로 엮이며 서로를 끌어당겼다. 한 코, 한 코 정성스레 당겨지며 우리의 입술이 겹쳐졌다. 서로의 입술은 서로를 통과하며 하나가 되었다.
이 글이 내가 쓸 수 있는 최대한의 로맨스다. 어쨌든 키스를 하긴 했으니 로맨스가 맞다고 우겨보겠다. 이번 글제는 김행숙 작가의 '포옹'이라는 시를 모티브로 하여 서사를 창작하는 문제였다. 이 시에서 '포옹', '연인', '입술'과 같이 사랑을 암시하는 상징이 등장하기 때문에 쉽게 로맨스라는 장르를 발상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 글제가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 로맨스를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평소의 나였다면 이렇게 해석의 여지가 많이 필요한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글쓰기 선생님은 이 글을 읽고 영화 '무드 인디고'가 떠올랐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영화는 내가 손에 꼽는 최악의 영화 중 하나다.) 나는 어쨌든 컨트롤 프릭 같은 면모가 있어서 내 글을 읽고 나와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이 많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글은 서사보다는 상징과 이미지가 주가 되므로, 읽는 사람이 자신의 자원을 사용해서 열심히 해석해야 한다. 여러모로 이번 글제는 나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유도했다.
이 시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라는 행이 반복된다. 김행숙 시인은 '타인과 완전한 하나가 될 수는 없더라도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것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을 하더라도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찰나의 순간이라도 서로 교차할 수 있다. 낭만적이고, 애절하며, 사랑을 믿고 싶게 하는 시이지만 어린 나는 완전히 반대로 해석한 듯싶다. 시를 읽고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까워질수록 상대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역설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인간을 하나로 만드는 실험을 설계해 놓고, 이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못을 박았다. 로맨스 혐오자의 해석이란.
이번 습작에서는 두 명의 뇌를 하나로 합치는 실험이 등장한다. 이 글을 쓰면서 했던 낙서도 찾았는데, 실험이 시각적으로 구현된 모습을 보니 훨씬 자극적이다. 가장 동떨어진 사람 두 명을 합치면 완벽한 인간 하나가 탄생할 것 같지만, 실험은 실패할 예정이다. 바로 앞에 있는 한 사람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완벽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때의 나는 이런 회의적인 물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우리는 너무 가까워진 탓에 죽어도 서로를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한 이해에 회의적이라는 것은 반대로 진정한 이해를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다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서로의 머리에 USB 선을 연결해서 고통과 감정을 직통으로 주고받길 바랐다. 포스텍 SF 어워드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외딴 섬 뉴런'에서는 이 상상이 확대된다. 이 단편에는 축삭돌기가 아무 뉴런 하고도 연결되지 않은 '외딴 섬 뉴런'이 등장하는데, 이 뉴런은 사실 다른 사람의 뇌와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 존재한다고 설정하였다. 사실 어른스럽게 타인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와의 주기적인 만남과 건강한 대화를 해야만 한다. 그 모든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타인과 뉴런 레벨에서 일체화되고자 하는 욕망은 유아적인 것 같기도 하다. 타인은 항상 속내를 숨기고 있고, 그것을 낱낱이 까발리지 않으면 우리는 아직 하나 된 게 아니라는 유치한 생각 때문에 내가 로맨스를 멀리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뇌인지과학과를 졸업한 지금 와서 이 실험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피험자가 무조건 죽는 실험이라니, IRB가 뒷목 잡고 나를 족치러 오겠다. 지금의 나는 이런 용감무쌍한 실험은 설계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겁 없는 실험은 차치하고, 현실에서도 두 개체의 뇌를 합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Revah, O. et al. (2022) 실험에서는 인간의 뇌 일부를 쥐에게 이식했다. 물론 살아 있는 인간의 뇌는 아니고 실험실에서 키운 인공 뇌 오가노이드를 잘라서 붙인 것이다. 쥐의 면역 기능이 이식된 뇌를 공격하지 않도록 유전자 조작을 통해 면역기능을 상실시켰다. 실험실에서 키운 인간 뇌를 살아 있는 쥐에게 이식하니, 쥐가 성장하면서 인간 뇌 부분의 볼륨도 점점 커졌다. 인간 뇌의 뉴런은 점차 자라서 쥐 뇌의 뉴런과 신호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인간 뇌 부분의 뉴런만을 자극해서 쥐가 물을 찾아 먹는 행동을 유도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는 쥐의 생각을 읽을 수 없으니, 인간 뇌를 이식받은 후 실험 쥐의 사고 패턴이 변화했는지 알 수 없다. 두 개체의 뇌를 합쳤을 때 더 진보된 뇌를 가질 수 있는지는 모른다. 아직 SF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엔 시간이 필요한 듯하나, 일단 두개골부터 잘라 전두엽을 붙였던 나의 실험보다는 세상은 훨씬 앞서나가 있다.
이 습작에서 아쉬운 점은 동떨어진 인간을 표현한 방식이다. 가장 다른 인간을 서로 붙여야 완벽한 인간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에, 완전히 다른 두 인간상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때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완전히 다른 인간상이란 바로 이과형 인물과 예체능형 인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예체능에 특화된 인물로, '너'는 이과형 인물로 묘사된다. 글쓰기 선생님은 문과와 이과가 정말 완전히 다른 사람들인지, 이것이 문학적으로 괜찮은 비유인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은 이해가 간다. 문이과가 통합된 지도 꽤 지났고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의 구분은 점차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갈 것이다. 게다가 현실에서 '나는 이과여서 냉철하고 기계 같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바로 레드 플래그를 세운다.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은 잠깐 동안은 유효할지라도 사람의 본성을 나누는 데 사용될 수 없다. 그런 기준을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가져다 쓴 게 매우 아쉽다.
참고 문헌
1. Revah, O. et al. (2022). Maturation and circuit integration of transplanted human cortical organoids. Nature, 610(7930), 319–326. https://doi.org/10.1038/s41586-022-05277-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