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의심하는 병

문창과 입시 습작 '천국 뒤에' 전문과 비평

by 정도겸


유튜브 영상을 하나 잘못 봤더니 내 알고리즘이 모두 천국에 관한 이야기로 뒤덮였다. 어렸을 때는 하도 권선징악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진심으로 천국을 믿어보고자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듯하다. 천국을 믿는 사람 앞에서 질문을 조심하고자 하는 사회성 정도는 갖추었다. 천국에 대해 깊은 토론을 하는 자리를 항상 동경해 왔다. 천국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믿을 수 없는 사람은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걸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지겨운 환경과 유전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리고 이걸 증명하려면 또 어디선가 데려온 쌍둥이를 찢어놓은 후, 한 명은 종교 집안에 다른 한 명은 무교 집안에서 길러야 할 것이다. 불쌍한 쌍둥이들. 오늘의 습작에는 천국이 등장한다. 그리고 천국을 향한 나의 물음도.


글제: 지극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사람을 중심인물로 이야기를 꾸리시오.(2011년 한예종 극작과 문제)

조건 1. 지극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인물의 행동 도기나 이유가 명확할 것

조건 2. 결말 부분에서 중심인물은 자기 존재가 붕괴되는 고통을 경험해야 하고, 그 경험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재발견, 자기 깨달음, 재인식을 획득해야 한다.


제목: 천국 뒤에


성은 수술복을 입은 채로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은 모양인지 성의 아랫도리는 터진 그대로였다. 미처 제거되지 못한 잔여물을 허벅지 아래로 길게 늘어뜨리며 성은 힘겹게 걸어왔다. 많은 망자들이 열을 맞추어 이동하며 격자무늬를 만들었다. 아직 줄을 배정받지 못한 성이 열을 흐트러뜨리며 매표소로 갔다. 안내원이 낭랑한 목소리로 출신 국가, 이름, 주민번호 등을 물었다. 안내원이 리드미컬하게 키보드를 튕기더니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새하얀 표를 내밀었다. 성이 무언가를 묻기도 전에 안내원은 커다란 도장을 쾅 내려 찍었다. 타오르듯 빛나는 인주가 성의 천국행을 알리고 있었다.


천국 입구에 다가갈수록 길바닥에 널브러진 망자들이 성의 눈에 띄었다. 다들 사후처리가 잘 되지 않은 건지 각자의 사인이 한눈에 보였다. 지옥행을 선고받은 자들이 천국 입구라도 만져보러 봤구나, 하고 성은 생각했다. 성은 있지도 않은 묵주를 손으로 덧그리며 남은 죽음을 보낼 천국을 상상했다. 좌우대칭의 날개를 퍼덕이며 망자들을 이끄는 천사, 바닥이 투명하게 비치는 호수, 온통 새하얀 풍경에 혈색을 불어넣는 꽃밭. 성은 감격한 나머지 차표의 가장자리를 약간 구겼다. 성은 놀라서 땀이 흥건한 손으로 구겨진 차표를 폈지만 새카맣게 손 때가 묻었다.


입국 심사대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성의 자기 차례가 되자 자랑스럽게 천국행이 새겨진 차표를 심사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표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이곳이 아니라 더 안쪽으로 가셔야 합니다."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보죠?"

"아니요, 여기도 천국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따지려는 성의 등을 심사관이 거칠게 밀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성의 아래에서 덜렁거리던 살점들이 빠져나왔다. 성이 저릿 거리는 다리로 그것들을 밟으며 나아갔고, 붉은 발자국을 뒤에 남겼다. 남은 의문들이 성의 고개를 돌렸고, 성은 백인 한 쌍이 천국으로 힘차게 입장하는 것을 보았다.


심사관이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가자, 정문보다 작은 샛문이 나타났다. 정문의 그림자에 먹혀 훨씬 왜소해 보이는 문이었다. 심사관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시선을 성의 부스스한 머리부터 아래로 쓱 내렸다. 그가 성의 초록색 수술복 아래쪽에 흥건한 피를 보자, 그의 입꼬리는 여전히 위를 향했지만 구겨지는 미간은 감출 수 없었다. 심사관은 성에게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성이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 붙박은 듯 서 있자 심사관이 말했다.


"천국은 모두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곳이라서요. 그 상처만 수습하고 오시면 기쁘게 맞이하겠습니다."


성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입구 근처에 있었던 사람들처럼 길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성은 바쁘게 걸어온 길을 되짚다가 수술실에 다다랐다. 성은 아기 울음소리만 들었지, 손가락 발가락 세는 소리를 못 들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내가 길을 잘 닦아 놓아야 나중에 우리 아기도 잘 찾아올 텐데. 성은 피곤함에 자꾸 감기는 눈을 부릅뜨며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멀리서 한눈에 봐도 심하게 썩은 망자가 걸어왔다. 하얗게 센 머리를 보아하니 노인이었다. 노인이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살이 뭉텅이로 부서져 흩날렸다. 노인이 알 수 없는 물로 축축하게 젖은 차표를 심사관에게 내밀었지만 심사관은 눈알을 밑으로 내리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그가 성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듯 노인에게 했다.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내 시체를 수습해 줄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내가 죽은 걸 몰라요."


심사관이 그럼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며 노인 뒤쪽으로 길게 늘어진 줄로 시선을 옮겼다. 구멍만 남은 노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성의 눈알이 오른쪽, 왼쪽으로 똑딱이며 움직였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와 붉은색으로 쓰인 천국행 기차표. 아기와 붉은색 차표. 아기와 붉음. 그러다 성의 눈이 중앙에서 멈추었다. 성의 눈이 노인을 투명하게 반사했다. 성은 관절 사이사이마다 망설임이 잔뜩 낀 손으로 차표를 구겼다. 성은 손을 세차게 털어내듯이 휘둘렀고 차표가 많은 것을 주렁주렁 매달고 무겁게 떨어졌다.


"할머니, 저랑 같이 가요."

성이 노인을 꽉 붙잡았다.


성과 노인이 천국으로 향하는 망자들에 역행하며 나아갔다. 마찬가지로 갈 곳 없이 스러져 있던 사람들이 뒤에 따라붙었다. 천국의 입구가 조그마해질수록 성의 무리는 불어났다. 성은 아랫도리가 따끔따끔하여 수술복을 들어 올렸다. 두 갈래로 째진 살이 아물고 있었다. 너절한 상처는 안으로 말려 들어갔고, 실이 상처의 입을 다물렸다. 피가 낭자한 수술복이 벗겨지고 하얀 수의가 성의 몸을 감쌌다.


누군가 천국 너머에도 땅이 있다고 소리쳤다. 다들 눈이 부셔서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몰랐지만, 몸은 이미 그리로 향하고 있었다.

-

수술실 안은 건조했다. 성은 약에 취해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주마등. 성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지난날을 잡아보려고 눈을 찌푸렸다. 물기 없는 각막이 안구에서 들뜨고 그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 성은 괜히 눈물만 흘렸다. 성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저 너머로 후퇴하자 수술실 안은 더욱 분주해졌다.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 빼놓았던 묵주를 생각하며 성은 손목을 움직였다. 팔찌 자국이 허옇게 남은 성의 손목에서는 힘줄 하나도 꿈틀대지 않았다. 아기가 힘차게 울었다. 수술실 안을 날카롭게 휘적이는 울음소리가 성의 긴장의 끈을 끊었다. 엉켜있던 실밥 뭉치들이 쏟아져 내렸다. 핏기가 싹 가신 성은 마음속에 십자가를 굳게 새기며 중얼거렸다. 엄마가 먼저 천국에 가 있을게.


지극한 아름다움이란 대체 뭘까? 한예종 시험이 항상 그렇듯 난해한 글제에 머리가 아팠다. 나는 때때로 미와 선을 구분하지 못해서, 굉장히 아름다운 것을 봐도 선하지 않으면 동태 눈깔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건 가장 선한 것이기도 했다. 그 기준에서 보았을 때 (관념적인) 천국이 지극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선한 존재만 선별해서 들어갈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내가 내놓는 천국 이미지는 어디선가 한 번 재해석된 모습이다. 이 글에서 나온 천국은 표를 내밀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천국이라기보다 공항에 가깝다. 망자에게까지 출신국가와 이름, 주민번호를 요구하다니. 글을 쓸 당시에는 질서를 유지하려면 당연히 인간을 식별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별생각 없이 쓴 줄이었다. 한국인이 아니면 주민번호가 없다는 사실마저 인식하지 못하다니. 굉장히 한국적인 생각이었다.


습작에서 '성'은 죽을 때의 모습 그대로 아랫도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영혼이 있다면 죽은 당시의 모습과 동일하리라 생각했다.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은 피부가 파랗고, 차에 치어 죽은 귀신은 절뚝거리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피칠갑이 된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본 천국에는 항상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정한 영혼뿐이었으므로. 그래서 아마 어떤 대기실에서 시신이 잘 수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닐까 추측했다. 문제는 수습되지 못한 시신이었다. 아무도 염을 하지 않고 수의를 입혀주지 않는 몸. 그 망자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표를 받아도 절대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미와 선을 동일시했기 때문에 나는 언젠가 모순에 부딪혔다. 지극한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이를 이루는 요소를 정제하고 선별해야 한다. 그러나 선별은 많은 경우에 선하지 않다. 선하지 않으므로 아름답지가 않다. '성'도 결말부에서 그 모순에 부딪혀 천국을 떠난다. 이것을 아름다움에 대한 재인식으로 설정했다. 읽으면서 놀랐던 부분은 '성'이 결말부에서 자신의 몸이 수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을 떠나기로 결정한 대목이었다. 지금의 낡고 지친 나는 '에라 모르겠다'하고 대충 들어가 버렸을 듯하다. 천국을 이루는 모든 아름다운 요소에 찜찜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쓴 것을 항상 그대로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부분을 쓸 때는 나 자신이 '성'처럼 행동하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의 시신은 높은 확률로 수습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우울로 인한 비관은 아니고, 결혼이나 주거, 노후에 대해 이러저러한 조건을 따져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이 결론에는 크게 호오가 없다. 죽은 지 시간이 오래 지난 몸을 치울 사람이 고생일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어쨌든, 만약 지금의 내가 이 글을 쓴다면 '성'이 '노인'을 이끄는 이야기가 아니라 '노인'이 자기 자리를 찾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성'보다는 '노인'이 심리적으로 더 가까워졌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약간 각색해서 2018학년도 한예종 극작과 시험에 써냈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출제된 글제에 딱 맞아 들어가지 않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글 중에서 괜찮은 것을 억지로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꺼내보지 않은 글이 되었으나 지금 다시 읽어보니 꽤 재밌게 썼다. 먼지처럼 쌓인 안 좋은 기억을 털어낸 것 같아서 기쁘다.



keyword
이전 18화 로맨스 혐오자가 쓴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