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입시 습작 '흙밥' 전문과 비평
사실 문창과 입시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는 아무리 노력해 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계속해서 탈락 소식을 받았을 테고, 그로 인해 나는 상심했을 것이다. 기억이 깡그리 날아가서 기분을 자세히 묘사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이렇게 기억이 숭숭 빈 구간들이 몇 군데 있는데, 뇌가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기억을 지워준 듯하다. 오늘의 습작은 가장 마지막에 쓴 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입시 내내 글을 쓰며 반복했던 상징들의 총집합이다.
글제: 기억이 안 남
제목: 흙밥
*자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나는 죽어서 저승에 왔다. 하지만 저승의 주민으로는 아직 인정받을 수 없다. 제사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승의 주인은 자비를 베풀었다. 미혼으로 죽은 약 백 명의 혼을 추석 보름달을 통해 과거로 보내주기로 했다. 이승에서 과거의 자신을 만나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낳는 방향으로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저승의 주민이라는 증거는 발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직 제사를 받지 않은 우리의 발은 발목부터 서서히 투명해지고, 발가락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저승에 발을 딛고 설 수가 있는가. 그것이 자격이었다.
백 명의 혼이 보름달 앞에 섰다. 하루 드립니다. 관리령이 말했다.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은 이승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수정된 삶의 궤도는 계속 이어진다. 친구 완은 있지도 않은 발이 시리다고 내게 말했다. 그래, 아주 핏기마저 싹 가셨네. 혼은 보름달로 뛰어들었다.
그날이었다. 14살의 추석이었다. 고기 국물을 가득 먹고 색이 진해진 기름이 펄펄 끓었다.
"지금 시대에 제사 음식을 엄마가 왜 해."
어린 내가 엄마와 실랑이를 벌였다. 도와주지 않을 거면 알짱대지 마라. 등에 눈이 없는 내가 뒷걸음질 치다가 기름이 끓는 냄비를 엎는다. 기름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지며 내 척추를 따라 얇은 불을 피운다. 노란 장판이 순식간에 오그라든다. 등에 까맣게 그을음이 생긴 티셔츠를 입고 어린 나는 집을 나온다. 신이 도와 화상은 입지 않고 집은 불타지 않았으며 장판은 갈면 그만이다. 그날은 처음 세상을 등지고 싶다고 생각한 날이다. 그네에 앉아 있는 어린 나에게 다가간다.
"이게 내 결말이야?"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어린 나는 화를 벌컥 낸다. 내가 공부를 왜 하는데. 늙어서 맨발로 고생하지나 않을까 했더니 이젠 발도 없네. 나는 전달받은 매뉴얼대로 아이를 가지면 좋은 점을 나열해 보았다. 어린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지금 죽나 늙어서 죽나 어쨌든 똑같네. 어린놈이 비죽였다. 나는 지금까지 사랑의 전도사 마냥 읊던 것을 집어치우고 어린놈의 어깨를 잡아 흔든다.
"이게 자연의 섭리야!"
"왜 죽어 놓고 자연의 섭리를 따져."
어린놈이 말했다.
그때, 완이 눈물범벅이 되어 나에게 달려왔다.
"얘 좀 살려줘!"
완이 끌고 온 혼은 상반신뿐이었다. 하반신은 우리의 발이 그랬던 것처럼 투명해지고 있었다. 불티같은 것이 끝없이 하늘로 올라갔다.
"이게 왜 이래?"
내가 물었다.
"과거의 자신이 죽어버렸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자살했어!"
혼의 목 아래까지 투명해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왜 자살까지 했대요?"
어린놈이 완에게 물었다.
"불임이었대. 애를 입양하더라도 제사로는 안 쳐주거든."
완이 말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 결말을 바꾸고 싶어?"
나는 어린놈에게 물었다. 어린놈이 나도 죽으라는 거야, 뭐야 하고 삐딱하게 받아친다. 저승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다. 완과 어린놈이 나를 쳐다본다.
"우리 제사를 지내자."
내가 말했다.
과거의 내가 죽으면 현재의 혼이 사라진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인과관계는 저승도 어떻게 할 수 없었나 보다. 제사는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의 죽음을 인정한다면 인과가 무너진다. 99명의 혼이 인과를 무너뜨린다면 저승에도 큰 혼란이 올 것이다. 나와 안은 흩어져 있는 혼을 불러 모으기로 했다. 어린놈에게는 향과 제사음식을 집에서 가지고 나오라고 일렀다.
공터에 99명의 혼과 99명의 과거가 모였다. 어린놈이 저 멀리서 털레털레 걸어왔다. 텅텅 빈 제기만 손에 달랑 들려 있었다. 음식은? 내가 물었다. 내가 오늘 기름을 엎어서 음식은 없어. 어린놈이 말했다.
"널 보내주기만 하는 거면 이걸로 되잖아."
어린놈이 그렇게 말하고는 밥그릇에 놀이터 흙을 가득 퍼 넣는다. 둥글게 쌓인 흙에 지렁이도 빼꼼히 올라온다. 그래, 맞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는데 어린놈은 쑥스러운 듯 손을 쳐낸다.
돗자리를 가운데 두고 혼과 인간이 마주 보았다. 돗자리엔 각자 가져온 향과 음식이 올라가 있었다. 누군가가 카세트 플레이어를 가지고 왔는지 국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린놈이 '절'하고 말하니 99명이 도미노처럼 미끄러지듯 누웠다. 어린놈이 헛기침을 하니 모두가 다시 일어난다. 어린놈이 보기만 했던 제사 절차를 기억을 더듬어 흉내 내고 있었다.
보름달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웅성거렸다.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혹시 몰라서 내 발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투명한 상태 그대로였다. 갑자기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을 잡아 와!"
보름달에서 관리령 수십 명이 뛰쳐나온다. 혼들이 우왕좌왕하다가 몇 명이 관리령에게 붙잡힌다. 완이 소리쳤다. 뛰어! 아무 곳에도 디딜 수 없었던 발이 가볍다. 우리는 점차 허공으로 떠오른다. 나 갈게. 내가 말하고 어린놈이 내 인사를 받는다. 보름달을 통해 저승이 쏟아져 내린다.
오랜만에 마지막 글을 다시 읽은 소감은, '얘 지금 엄청 힘든 모양이군'이다. 지금까지는 의도적으로 글에 비속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쉽게 인상을 남기는 방법이지만, 그것보다 더 세련된 표현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에는 비속어가 여러 번 등장했다. 서사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표현이라 그 부분은 다 잘랐다. 자살 언급 또한 배제하려고 했는데, 이 글에서만 간접과 직접 표현을 포함해 자살을 무려 3번이나 언급한다. 아마 쓸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지 싶다. 나를 들여다보는 유리창이 완전히 깨져 있었다.
글에도 힘이 빠져 있는 게 보인다.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 부분을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하고, 더 많은 묘사와 표현을 넣을 수 있는 부분도 생략했다. '혼을 모으기로 했다'는 목표를 제시하자마자 다음 문장에서 99명의 혼이 공터에 모였다고 말한다. 혼들에게는 어떻게 연락했는지, 어떻게 혼을 설득했는지는 전부 생략되었다. 누구나 아쉽다고 할 만한 부분이니, 그때의 나도 유리창이 박살 나지만 않았다면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서 못한 부분을 언급하는 게 크게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이때까지 써왔던 많은 모티브들이 이 글에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 제사를 역겨워하는 반골기질, 과거와 현재의 만남, 순응하기보다 무너뜨리기. 마치 애니메이션 마지막 화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회상하는 것 같다. 이런 요소들이 나의 본질인가 싶기도 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때까지 계속 대립하기만 했던 과거와 현재가 이번 글에서는 어색하나마 협력이란 것을 한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라는 모티브를 반복하면서 자연스레 미래의 나를 만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가 백만장자가 되어 있든, 가정을 꾸렸든, 결국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했든. 어떤 모습이든 어느 정도 실망스러울 것 같다. 미래는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다. 올해 인생 첫 신점을 봤는데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내 여생이 행복할까 행복하지 않을까. 듣는 순간 양자역학처럼 상태가 고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들 미래에 대해 쉽게 말한다. 20대 후반에 취직하고, 3040에 일하고, 5060에 부모님을 간병하다 이별하고, 6070에 재가 되어, 8090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굳이 알고 싶지 않았는데도 갖은 충고와 농담, 은밀한 비밀을 가장한 말로 듣게 된다. '이게 내 결말이야?'라는 말은, 끝의 끝까지 가서 할 수 있는 최악의 한 마디일 것이다.
주인공은 죽어서 저승에 들어가지 못했다. 과거의 자신인 '어린놈'이 애를 낳아 제사를 지내줘야, 저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린놈'은 미래의 자신을 보고 '이게 내 결말이야?'라는 말을 남기며 좌절한다. 이 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 결말을 바꾸겠답시고 '어린놈'의 본성과 신념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린놈'과 주인공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질적으로 똑같다. 주인공은 '어린놈'에게 억지로 애를 갖도록 설득하기보다, 다른 방향을 선택한다. '어린놈'이 주인공에게 직접 제사를 지내주면서, 저승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결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계속 연장하면서 삶이 이어진다. 그래서 인생은 빨리 종착역에 도착해야 하는 열차가 아니라,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산책이 된다.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다. 힘든 와중에도 이런 결말을 쓴 것이 대견하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문창과 입시를 완주했다. 완주가 언제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때 처음 배웠다. 그러나 어떤 것은 완주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그때는 받지 못했던 축하의 박수를 지금이라도 보내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