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입시 잔혹사 마무리
-표지에 대하여
<문창과 입시 잔혹사>를 기획할 때, 표지를 어떻게 할지 오래 고민했었다. 처음 브런치에 연재하는 글이다 보니 표지부터 공을 많이 들였다. '잔혹사'니까 잔혹한 느낌이 있었으면, 하지만 마지막은 훈훈하게 끝났으면 했다. 그래서 라즈베리 잼이 피처럼 묻은 책으로 시작하여 엉망으로 찢어진 종이, 그리고 잼이 발린 토스트로 끝나는 표지를 구상했다. 가면 갈수록 피폐해지는 입시생의 정신상태를 표현한 것 같아 마음에 든다. 마지막에는 토스트 두 개를 구워 책처럼 펼쳐놓고 싶었고, 구상한 그대로 끝낼 수 있었다. 마지막 표지를 만들고 있는데 우연히도 'you are toast'라는 영어 관용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미는 '넌 완전히 끝장이야'. 좋은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끝이라는 느낌에는 잘 어울리는 표지 같다.
-쓰게 된 계기에 대하여
프롤로그에 썼던 것처럼, 대청소를 하다가 벽장 속에서 오래된 습작 뭉치를 발견했다. 사실 벽장 속에 습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꺼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버리자니, 비록 실패했을지언정 열심히 살았던 나를 지우는 기분이 들어 꺼림칙했다. 이런 꺼림칙한 기분 때문에 정리하지 못한 물건이 내 방에 가득 쌓여 있다. '이 글을 어디엔가 사용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하고 고민하다가 '문창과 입시 잔혹사'를 생각해 냈다.
브런치에 막 가입할 무렵에 내가 과연 연재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글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하루에 오천 자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하루 오천 자를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 일주일에 두 번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예전에 써둔 습작을 비평한다는 포맷을 통해 글자 수를 쉽게 채워보자는 잔머리가 굴러가기도 했다. 처음에는 연재 요일을 한 번이라도 놓친다면 나는 상업 작가가 될 수 없다! 는 비장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최대한 노력했으나 나 자신과 약속한 요일을 지키지 못하기도, 중간에 많은 공백이 있기도 했다. 처음에 한 각오대로라면 여기서 절필을 해야겠지만,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려고 한다. 횡단보도의 하얀 부분을 밟지 못하면 죽는다! 는 각오를 해도, 세 번의 목숨은 주어지니까.
-습작에 대하여
모든 흑역사를 낱낱이 까발릴 것처럼 말했지만, 너무 꼴 보기 싫은 습작은 고이 접어두었다. 올라가지 못한 습작들은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너무 내 세계에만 갇혀 있는 글이었다. 그때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명제가 지금은 의심의 여지없이 틀려 보였다. 혹은 잘 모르는데 단순히 흥미로워서 소재를 채택할 때도 문제가 되었다. 대량 학살이나 사형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한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는 인터넷에 올려봤자 데이터베이스의 한 구석을 잡아먹기나 하므로, 혼자만 간직하도록 하겠다.
다시 말하면, 올라간 습작은 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는 글이다. 이런 글을 벽장 속에서 썩히고 있었다니, 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 취향은 초등학생 고학년~중학생 무렵에 완성되었으므로, 나와 완전히 똑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쓴 글이 재미없게 느껴질 리도 없었다. 글 쓰는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는 미래의 나에게 읽을거리를 던져준다는 마음으로 써도 좋겠다.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습작은 아무래도 처음 썼던 소설이었다. 글쓰기 선생님을 포함해 딱 두 명에게만 보여주었던 글이었는데, 내 특징이 잘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장과 문장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에 내 특징을 담을 수 있다니. 그때까지 나에게 글은 단순히 A4 첫 줄에서 마지막 줄까지 평이하게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글은 씨실과 날실이 엮인 천조각처럼 느껴졌다. 글에도 손때가 묻고 기억이 묻고 시간이 묻었다.
-그냥 흘러간 시간에 대하여
<문창과 입시 잔혹사>를 관통하는 말로 '그냥 흘러간 시간은 없다'를 꼽고 싶다. 문예창작과 입시에 실패하고 나서 한동안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소설 쓰기를 배우느라 시간을 날렸다고 느꼈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고, 나에게는 그놈의 재능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글쓰기를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서 소설책을 출간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글쓰기가 아니면 살 길이 없다는 배수진의 마음으로 썼을 때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넘쳐나는 시간에 큰 고민 없이 썼을 때는 좋은 결과가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 때문에 삶이 거지 같기도, 재밌기도 하다.
이렇게 한 번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주제넘게 '그 시간을 견디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다시 수렁에 빠지고 나오고 빠지고 나오고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하루, 일주일, 한 달과 일 년에 짓눌린다. 남에게 말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그냥 흘러간 시간은 없다고 되뇌고 있다. 속으로 여러 번 중얼거리다 보면 정신승리처럼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문창과 입시 잔혹사>는 어쩌면 5월부터 시작된, 나의 정신승리 일대기일지도 모른다. 처음 시작한 그 마음 그대로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이제 습작을 정리해도 좋을 것 같다. 원한을 푼 귀신이 성불하는 것처럼, 습작도 쓰임을 다했다고 느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