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버그와 강약약강

문창과 입시 습작 '장갑 위의 왕국' 전문과 비평

by 정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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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어떤 가게에 출근하고 있다.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저 수당을 유지할 수도 있고, 출근을 통해 생체 리듬이 완전히 어그러지지 않도록 경계할 수도 있다. 또 가게에 근무하다 보면 무거운 짐을 들거나 하는데, 몸을 쓰며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가게에서 일한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다. 물건을 드리고 돈을 받는다. 이 단순한 문장 이면에는 복잡한 문제와 사건과 고민이 숨어 있다. 특히 손님을 대할 때가 문제다. 오늘의 습작에는 강약약강의 비겁함이 나타나 있다.


글제: 제시된 이미지를 차용하여 이야기를 창작하시오. (새하얀 손 위에 사람의 인영이 비치는 그림)

제목: 장갑 위의 왕국


진홍이 다시 본 집은 여전히 거대했다. 키세스 초콜릿 모양의 지붕을 얹지 않았더라도 느껴지는 위압감이 있었다. 진홍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뱉고 신발로 짓이겼다. 흙과 재와 개미가 소용돌이치며 하나가 되었다. 진홍이 든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째지게 울렸다.

"벌레가 계속 나오잖아요. 한 번에 제대로 못해요?"


진홍은 상대에게 보이지도 않을 고개를 연신 숙이며 죄송하다고 했다. 진홍이 수화기를 내려놓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진상이 걸렸다며 동료들이 축하해 주었다. 그 고객이 회사 번호, 개인 번호를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어대는 통에 상사로부터의 내리 갈굼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진홍은 오늘도 장비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고객의 집으로 향했다.


외관과는 다르게 집 안은 엉망이었다. 저번 방문 이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진홍이 몇 번이나 주의를 줬음에도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벌레가 아니라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진홍은 부엌 찬장과 안방 벽장, 세탁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세탁실에는 이 빠진 데 하나 없이 새하얀 타일이 늘어져 있었다. 진홍은 동그란 배수관에 왼쪽 눈을 맞추어 넣었다.


눈부신 빛만 보았다. 몸통은 어둠에 짓눌려 납작해져 있었지만 더듬이는 빛만 쫓았다. 숨을 쉴 때마다 녹슨 배수관이 긁혀 재가 조금씩 날렸다. 날개가 관의 이음새에 걸려 파르르 떨렸다. 빛을 막은 커다란 눈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길이 생겼고, 눈물이 금이 간 날개에 스미자, 커다란 고통과 함께 날개가 쩌적 갈라졌다.


진홍이 배수구에 약을 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녀석이 발작을 하며 관을 타고 올라왔다. 진홍은 미처 파리채를 들지 못한 채 흰 장갑 낀 손으로 녀석을 내리쳤다. 손바닥의 오목한 곳에 파묻힌 녀석이 헐떡이며 숨을 쉬었다. 부풀었다 꺼졌다 하는 느낌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녀석이 엉엉 울며 손바닥을 비볐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진홍은 녀석 때문에 몇 달을 괴롭게 지내왔는지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저는 살려고 나왔습니다. 나오지 않으면 죽었습니다. 진홍은 녀석이 맞붙인 손바닥 사이를 손톱으로 끊어내었다.

"널 안 잡으면 내가 뒤지겠다."

진홍은 두 손을 짝 내리쳤다. 바람이 손바닥 사이로 뿜어져 나왔다가 다시 오목한 곳으로 모였다. 그 순간, 진홍의 새하얀 장갑에 그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검은 얼룩이 그 옆에 남았다.


진홍은 자리를 추스르고 조심스레 일어났다. 고객은 다 끝났으면 나가보라고 진홍의 등을 밀었다. 진홍은 현관문을 나서며 좋은 하루 되십시오, 고객님. 하였다. 문을 나서는 찰나에 장갑 위 왕국은 종이 날리듯 해체되었다. 한 녀석이 하늘의 무게를 못 이기고 압사당한 흔적만 덩그러니 남았다. 진홍은 벌써부터 휴대폰이 울리는 듯하여 머리가 지끈거렸다.


글제로 제시되었던 사진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 봐도 찾지 못했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은 이미지는 흰 손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고, 배경에는 푸른 하늘이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손을 보고 벌레를 잡아 얼룩이 남은 상황을 상상하였다. 이 시기에 나는 '절대 말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말하는' 글을 쓰는 것을 즐겼다. 13화에서 제시했던 습작에서는 성기가 말을 하기 시작했고, 이번 글에서는 벌레가 손을 싹싹 빌며 발화한다. 더욱이, 전반부에서는 평범한 인물만 등장시켜 매우 현실적인 소설처럼 보이게 하다가, 뒷부분에서 벌레에 인격을 부여하여 읽는 사람을 튕겨내는 일을 좋아했다. 읽는 사람은 소설 속 세상을 현실과 똑같이 생각하다가, 벌레가 말하는 순간 상상했던 세계를 한 번 무너뜨리고 다시 지어야 한다. 그렇게 독자를 수고스럽게 하는 글을 쓰니, 글쓰기 선생님도 벌레가 말할 거면 제발 전반부에서부터 말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순간, 진홍의 새하얀 장갑에 그의 왕국이 임하옵시며'라는 표현은 문창과 입시를 하며 썼던 모든 글을 통틀어 손에 꼽게 좋아한다. 할머니가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할머니 집 식탁 옆에는 성경 구절이 써진 액자가 걸려 있다. 그 액자에 '왕국이 임하옵시며'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이 구절이 어떤 뜻인지도 몰랐는데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이 표현이 머리에 남았다. 어떤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없는 맨 땅이 왕국이 된다니. 어떤 존재의 권위를 표현하기에 이 만큼 좋은 말도 없는 듯하다. 그래서 진홍이 손바닥을 내려치는 순간에 그 손바닥 위에 왕국이 지어진다. 진홍이 가진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 것일지 생각하다 보니 이 글을 구상하게 되었다.


아마 대부분은 마찬가지겠지만 생명을 소중히 여기려는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도 벌레에게는 가차 없다. 거미까지도 어떻게 공존할 수 있지만, 바퀴벌레나 러브버그 같이 공중전을 하는 녀석들은 용납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에서 러브버그의 목숨까지 존중하자는 범생물적 윤리를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상대적 약자를 포착한 순간, '그렇게 대해도 된다'라고 믿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약자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에게 몇 안 남은 동물적 본능에 의해 이루어진다. 밀리 초 안에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상대가 정해지고, 판단은 그 속도에 비해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다.


가게에 근무하는 것은 이 판단의 연속이다. 손님도 강약약강의 태도로 나를 대하지만, 나도 동시에 손님을 살펴보고 발을 뻗어도 되는지 가늠해 본다. 모르는 사람 수백 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니만큼 판단은 아주 빨라진다. 물론 가게 안에서 나보다 약한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가게에 고용되어 급여를 받는 입장이며, 손님들은 나에게 컴플레인을 걸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나보다 약한 사람이 올 때가 있다. 아주 어린 손님이나,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이럴 때 내 안의 정밀한 저울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나도 모르는 새에 그 손님들의 요구를 뒷전으로 미루고 더 급성인 사람들을 먼저 처리한다. 가끔은 그분들께 양해를 구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어련히 괜찮겠거니, 하고 생각해 버린다. 그런 분들께 내가 예의 없게 굴거나 필요한 서비스를 부러 빠뜨리지는 않는다. 그러니 겉으로 볼 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미세하게 움직인 눈금자를 읽고서 나 혼자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고 만다.


평생을 약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사람 말이 말처럼 들리지 않는 삶에 지쳤고, 항상 발언권을 갖고 싶어 했다. 내가 지친 만큼 다른 사람도 지쳤겠거니 하고 어림짐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속한 그룹에서는 약자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가게 일을 하며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가 되면, 덕지덕지 발라 놓은 인두겁이 깨지고 추한 마음이 드러난다. 밀리세컨드의 본능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귀인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내가 바쁘고 힘든 것은 나에게 윗 선반에서 물건을 꺼내달라는 어린이 손님 때문인 것만 같다. 고된 출근길이 더욱 지옥 같은 것은 지하철에서 시위하는 장애인들 때문인 것만 같다. 옆에서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를 중얼거리는 외국인만 없으면 인생이 조금 나아질 것만 같다. 진홍은 자신이 살려면 벌레를 잡아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벌레를 아무리 납작하게 깔아뭉개도 진홍은 여전히 힘들 것이 분명한데도. 원인을 지목하는 일은 러시안룰렛과 같지만, 많은 경우에 약자의 머리 앞에서 총알이 터진다. 성질이 폭발하며 함께 찢어진 인두겁을 기우는 날이 있다. 내가 대충 쏜 총알에 맞은 사람을 생각하며 부끄러워진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며 금수에서 인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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