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입시 습작 '보름' 전문과 비평
난 시험 불안이 꽤 심하다. 언제나 편한 마음으로 시험을 본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첫 수학 시험을 대차게 말아먹고 나서 정도가 심해졌다. 처참한 수학 점수가 내 자퇴에 아예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수능을 볼 때도 시험 불안은 여전해서 글을 읽어도 뇌가 의미를 전부 튕겨냈다. 시험지가 백지처럼 보이는 것에는 이제 익숙해져서 '눈알이 또 난리네'하는 생각만 들었다. 문예창작과 시험에서는 어땠을까? 대부분의 학교는 시험 시간을 넉넉하게 주었기 때문에 압박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세 시간이면 넉넉하게 발상하고 표현할 수 있다. 또 글제가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모두에게 마찬가지니 그것도 그렇게 걱정되지 않았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제를 만나기 전까지는. 서울예술대학교의 시험 시간은 90분이다. 적어도 20분 안에 기승전결을 다 꾸며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글제는 당황스러워도 너무 당황스럽다. 오늘의 습작은 내가 서울예술대학의 문제를 열심히 연습했던 흔적이다. 선생님이 글제를 문자로 보내주시면, 90분 안에 시험을 마치고 인증 사진을 보낸다. 그러나 두 사람의 콜라보에도 불구하고 나는 본시험에서 말도 안 되게 무너지고 마는데... 조금 징징댈 테지만 어차피 나는 떨어진 사람이니까 유하게 봐주시길.
글제: “음악은 보름달이 뜬 정원이다” 이 문장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시오.(2015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수시 문제)
제목: 보름
달은 어느 날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총총히 박힌 별을 잇다 보면 달은 어느새 시야에 걸렸는데, 그 달을 보지 못한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뭔지 모를 시커먼 발암 물질이 달을 가려버린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달이 증발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수현은 김치와 쌀독을 날랐다. 쌀독은 가벼웠지만 조금이라도 더 무게를 늘리기 위해 뚜껑까지 고이고이 싸들고 왔다.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되던 학교 선배에게서 SOS가 왔었다. 수현은 먼지 쌓인 창틀에서 열쇠를 건져내 현관문을 열었다. 녹이 슬어 요란한 소리를 내는 문 너머에 오선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죽죽 그어진 오선도가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며 가리킨 방향에 선배가 어둠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음악학교를 졸업한 수현과 선배는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목격하고 기타와 오선지에서 손을 놓았다. 수현이 막노동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일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달 인력 알바였다.
담당자는 지구의 미래와 같은 거창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수현과 선배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들의 위장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지구의 미래가 걸려 있긴 했지만 노동의 내용은 간단했다. 풀밭에 둥글게 배치된 자전거를 굴리기만 하면 에너지가 만들어져 달의 인력을 대신할 수 있었다.
선배보다는 영양 상태가 나았던 수현은 비교적 수월하게 페달을 돌렸지만, 선배는 날이 갈수록 안색이 창백해져 수현도 눈치를 챌 정도였다. 어느 날 선배의 식은땀이 심상치가 않아 수현이 담당자에게 조퇴를 요청했다. 담당자는 남아 있는 노동자를 두 손가락으로 짝 지어 세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지구에 치명적입니다."
또다시 주린 배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수현은 귀를 막아야 했다. 선배가 눈을 빠르게 깜빡이더니 눈동자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뒤로 헤까닥 뒤집어졌다. 선배가 자전거에서 쓰러질 때 손가락이 몸에 깔렸는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수현이 자전거 밖으로 나오려 몸을 일으키자, 커다란 힘이 수현의 어깨를 욱여넣었다. 풀밭에 동그랗게 배치된 하얀 자전거가 별 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 페달이 돌아가며 만드는 리듬과 부러진 손가락에선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기타 소리가 수현의 발을 움직여 노동을 하게 했다.
서울예술대학교가 시험 시간을 적게 주는 만큼, 분량은 1200자 이내로 매우 짧은 편이다. 짧은 글이 쓰기 쉽다는 말은 아니다. 서울예술대학교가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자면, 분량이 짧은 만큼 서사를 단순하게 구성하되 글제를 표현할 때 상징적인 묘사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아직도 저 글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음악은 보름달이 뜬 정원이다.'라니. 음악=정원이라니! 그러나 당황할 시간조차 부족하기 때문에 재빠르게 발상에 들어간다. 글제에서 '음악'이란 키워드를 직접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청각적인 묘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페달을 밟는 소리와 리듬, 그리고 수현에게만 환청으로 들리는 기타 소리를 통해 음악적인 요소를 넣었다. 보름달이 뜬 정원을 그대로 서술하기에는 글제를 반복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달은 글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없애버렸다. 대신 페달 기계가 둥글게 배치되어 있는 모습으로 보름달을 대신했다. 잘 쓴 글인지 못쓴 글인지 딱 잘라서 말해보고 싶지만, 이때 너무 벌벌 떨면서 연습했던 내가 기억이 나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으로 돌리겠다.
이건 여담이지만, 글쓰기 선생님께서 이 글을 읽고서는 나에게 '예술가들의 삶을 잘 아는데 왜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냐'라고 물어보셨다. 선생님께서도 동료 작가와 함께 SOS 핫라인을 구축하는 시도를 실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생계를 유지한다는 말이 뭔지도 모르고 저 글을 썼으니, 미디어에 나오는 예술가의 가난을 멍청하게 갖다 쓴 것에 불과했다. 첫 인세를 받기 전까지도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서야 "오.". 판매 부수부터가 문제였기 때문에 휘청거리는 출판 업계에 내가 또 한 번 기여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머리가 유토피아에 가 있으면 몸으로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아직도 글로 생계를 유지하는 법은 모른다. 아마 평생 투잡을 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예술인 등록이라도 꼬박꼬박 해서 복지를 챙겨보겠다.
어쨌든, 이렇게 연습하고 문예창작과를 쓸까 극작과를 쓸까 고민하다가, 2018학년도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수시 시험을 보러 갔다. 그 어떤 문예창작과 시험을 볼 때보다 불안이 심하게 올라왔다. 20분 안에 발상이 끝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글을 미완성인 채로 제출하면 어떡하지? 수천 개의 '어떡하지'만 쌓이다가 글제를 받게 되었다. 글제는 '재래시장 입구다. 세 사람이 미역, 과일, 고기를 들고 싸운다. 무슨 일인가?'였다. 그리고 글제를 받고 원고지를 제출하기까지의 기억이 깡그리 증발한다.
추측하건대, 아마 20분 안에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다. 발상이 늦어지면 그만큼 묘사를 좀 덜거나 하면 되는데 그런 유연한 사고를 하기에는 나는 이미 패닉이었다.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고 어쨌든 뭘 쓰긴 써야 하니 개발새발 펜을 굴리기는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결과물은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억이 안 난다. 뇌는 감당할 수 없는 괴로운 기억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아마 더 좋은 미역, 과일, 고기를 사겠답시고 서로의 장바구니를 쥐 뜯는 수준의 졸작을 썼을 것이다. 이렇게 완벽하게 시험을 망치고 나서 나는 서울예술대학교의 정시 시험조차 포기했다. 서울예술대학교는 수시나 정시나 수험 시기만 다르지 완벽히 같은 시험이다. 어차피 안 될 값에 그냥 해보지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때의 내가 어련히 알아서 판단했겠지 싶다. 100번 연습해서 안 되면 1000번 다시 하면 된다는 말이 있긴 하다. 실제로 이 말을 실천하는 분께는 경의를 표하며 박수를 보내겠다. 그러나 1000번을 가기 전에 부러지는 사람이 있고 나는 대체로 그렇다. 가끔은 도망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믿으며 이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