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엄마는 책에서 배운 데로 아이를 키웠어요.
대한민국 대부분의 수험생이 그렇듯 나 역시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진학했다. 면접을 보러 가니 우리 반 친구들이 6명이나 더 있었다. 그중 3명이 합격했다. 50대의 남자 선생님이 생각할 때 여학생에게 추천할 만한 과가 '가정학과'였나 보다.
가정학과는 1학년때 아동학. 2학년때는 청소년학, 3학년때는 장년학, 4학년때는 노년학을 전공필수로 배운다. 그 외 주거학. 가정법률. 가정예절, 관계학, 사회학 등도 전공선택으로 함께 배운다. 유치원과 시설에 실습을 나가고. 교직을 희망하는 친구들은 교생실습도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살아가는데 참 쓸모 있는 것을 가르쳐주는 학과구나 생각이 들었다.
학점을 받기 위해 그냥 외웠지만, 20대 치고 가정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제법 쌓였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비해 육아나 생활에 대해 아는 게 많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육아를 하면서 고민되고 혼란스러울 때, 배운 것들이 툭툭 생각이 났다.
아이에게 <I-message>로 말하라
나의 감정을 정확히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뿐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하면 좋다.
양육자의 태도는 일관적이어야 한다
양육자의 기분에 따라 같은 상황이 허용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면 아이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눈치를 보거나 거짓말을 한다.
훈육은 단호하게 하고, 훈육이 끝나면 감정을 위로하라
잘못을 한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행동을 저지시키면 아이는 억울해한다. 분노가 쌓인다.
그것이 잘못인지를 아이는 모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상황을 설명해 줘야한다.
아이가 때를 쓰거나 고집을 부릴 땐 잠시 혼자 있게 하라
아이가 때를 쓸 때면 양육자의 어떠한 반응도 자극이 된다. 그럴 땐 무반응이 좋다.
단 투명인간 취급을 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
큰딸이 고집을 부렸다. 5개월 된 동생은 이제 막 잠들었는데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는 것이다.
"나중에 수지 일어나면 그때 나가자~"
"싫어. 지금"
"이제 잠들었는데 깨면 운단 말이야."
"싫어. 나갈 거야"
"엄마가 뿡뿡이 틀어 줄게. 그거 보고 나중에 가자"
"싫어. 엄마는 맨날 나중이야"
솔직히 찔렸다. 나는 맨날 '나중에'라고 말했다. 나중이 되면 어둡다고. 춥다고. 다시 미뤘다.
가끔 큰애가 잊어버리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래 나가자. 대신 금방 들어올 거야~ 약속해"
"응. 약속"
대충 옷을 갈아입고, 큰딸도 외출복으로 입혔다.
물. 과자. 담요. 물티슈등을 가방에 넣고, 선잠에서 깬 둘째 기저귀를 갈고 유모차에 태웠다. 벌써 지친다.
유모차를 밀면서 뛰어다니는 아이까지 챙기는 건 힘들다. 그래서 혼자서 둘을 데리고 나가기 싫었다. 아파트 단지나 한 바퀴 돌고 들어가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큰 아이는 들어갈 마음이 없었다. 집과 반대방향인 놀이터에 가고 싶어 했다. 놀이터에 빨리 가려면 후문으로 가서 가파른 계단을 4칸이나 내려가야 한다.
"놀이터는 나중에 아빠랑 가자"
"싫어"
"수지 때문에 안돼. 엄마가 유모차 끌고 놀이터에 못 가"
"애기는 혼자 집에서 자라고 해"
쉼 호흡 한 번 하고 <I-message>로 말해야지
"수아가 이렇게 떼쓰면 엄마는 속상해. 애기는 혼자 집에 있을 수 없어. 저녁에 아빠랑 다시 오기 약속할게"
으앙~ "싫어. 아빠랑 안 갈 거야. 엄마랑 갈 거야"
저녁에 남편 오면 큰애랑 둘이 다녀오라 하려던 걸 눈치챘구나. 미안하지만 더 이상 실랑이를 할 순 없다.
떼쓰고 울면 된다는 생각을 못하게 엄하게 훈육해야겠다
"수아. 아까 엄마랑 약속했지. 금방 들어온다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거야"
"아니야. 놀이터 갈 거야"
상황이 점점 꼬였다. 내 감정도 점점 쌓였다.
"아니. 엄마는 수지랑 집에 갈 거야. 수아가 혼자 놀이터 가"
"싫어. 혼자 못가"
"엄마도 싫어"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시간이 지나자 문이 닫혔다.
큰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거봐 수아가 빨리 안 타니까 문이 닫히잖아. 어서 와"
큰아이는 헛 구역질을 해가며 계속 울었다.
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4층,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우리는 내렸다.
작은 아이를 눕히고 방에 가서 의자를 하나 갖고 와서 현관 안쪽에 놓았다. 그리고 거기에 큰 아이를 앉혔다
"이건 생각하는 의자야. 수아가 소리 지르고 고집부려서 엄마도 화났어. 수아가 진정되면 엄마 불러.
엄마는 저녁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아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의자를 시도해 봤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조용하기에 쳐다보니 졸고 있다.
용을 쓰고 한참을 울었으니 잠이 오겠지.
흠흠
"수아. 생각해 봤어?"
"네. 미안해요" 자다 일어나 바로 미안하다라니
아이를 품에 안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눈물자국이 얼룩져서 꾀죄죄했다.
하필 남편이 늦게 온단다. 그날 수아는 놀이터에 가지 못했다.
두 녀석을 씻기고 재웠다. 나도 누웠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떴다.
큰아이가 손바닥을 비비면서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잠꼬대를 한 것이다.
"수아야. 꿈꿨어?"
"아니야. 꿈 안 꿨어" 하고 다시 잠들었다.
아이들은 잠을 자면서 낮에 있었던 일을 복기한다고 한다.
'지금 수아는 꿈속에서도 슬프겠구나. 내가 저 어린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참 한심하고 유치한 엄마라 생각했다.
고작 22개월인 애기를 붙들고 훈육한답시고 기싸움 한 유치한 엄마는
'책에서 배운 육아는 그냥 허상일 뿐이구나' 뼈저리게 반성했다.
수아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아이는 잘 못한 게 없다.
22개월 애기가 5개월짜리 동생을 위해 일방적으로 양보하라 강요받았고. '싫다' 했다고 나쁜 아이라 한 것이다. 그럼에도 '미안하다' '잘못했다' 한 것은 엄마가 온몸으로 '네가 잘못한 거야. 어서 나에게 사과를 해. 잘못했다고 빌어'라고 했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표정으로. 몸짓으로 압력을 가했던 것이다.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야 할 사람은 엄마와 아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