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헵번을 처음 본 것은 조지 큐커의 <아담의 갈빗대>를 통해서였다. 실제 연인이었던 스펜서 트레이시와 명연을 선보인 이 작품에서 캐서린 헵번은 그녀 특유의 지적이고 당돌한 이미지와 재치 있는 대사를 내세워 넘치는 카리스마와 유려한 블록킹, 그리고 말의 리듬감을 살리는 연기를 펼쳤다. 이번에 감상한 <베이비 길들이기>, <어떤 휴가>에서도 이러한 연기 스타일은 그대로 드러난다.
어떤 장르보다 남녀 주인공의 매력과 앙상블이 중요한 스크루볼 코미디에서 당차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대표하면서 고혹한 관능미와 우아함 뒤에 숨겨진 중성적 매력, 그리고 개성 넘치는 성격이 특징인 캐서린 헵번은 그야말로 최적의 배우다. 그녀의 이미지는 영화 안의 세계와 캐릭터보다 스크린 바깥 세계의 독립적인 행보와 활달한 성격에 기초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고(그녀의 어머니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다) 예술가로서 높은 자부심을 드러내며 지적 우월성을 뽐내고 살았던 그녀의 평소 언행은 그녀가 맡은 수많은 캐릭터의 이해를 돕는 가장 중요한 토대다. 시대의 요구에 얽매이지 않은 채 높은 자존감으로 일관한 그녀의 삶은 <아담의 갈빗대>, <베이비 길들이기>, <어떤 휴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말하자면 그녀는 허구의 캐릭터가 아니라 자신의 실제 모습을 연기한 셈이다.
<베이비 길들이기>는 캐서린 헵번의 매력이 제대로 담겨 있는 영화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의 경쾌한 리듬감과 그 안에 녹아 있는 재치, 그리고 엉뚱한 슬랩스틱이 결합된 스크루볼 코미디의 유희 정신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풀어낸 작품이다. 또한 캐서린 헵번의 당찬 개성과 환상적인 호흡을 이루는 캐리 그랜트의 어눌한 코미디 연기가 인상적으로 담긴 영화이기도 하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극도로 이기적인 여자와 줄곧 당하기만 하며 남성성을 잃은 남자 사이의 비현실적인 상황을 다루기에 일순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도 있지만 이를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문자 그대로 장르의 세계로 받아들인다면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하워드 혹스는 아이 양육을 표범 키우기로 은유하는 등 애초부터 현실 세계의 논리와 질서를 내려놓고 영화를 보길 권한다. 이 부탁에 응할 수 있다면 캐서린 헵번과 캐리 그랜트의 놀라운 연기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