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나 국가를 구성하기 이전에 공동체를 통합하기 위한 정신적 결속체가 필요하다. 과학에 의존할 수 없었던 고대에서는 자연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신화적 주체로 표상화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괴물이었지만 인간의 형상을 하여 신의 저주를 받았던 이야기도 전해져내려 온다. 또한 강에 홍수가 나면 신의 분노로 인식을 하여 제사를 지내어 후환을 막고자 하는 풍습도 생김으로써 태양을 바라보는 계단식 높은 건축물이 주로 지어진 이유도 신화적 영향력 때문이다. 자연권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상들은 원시적인 종교단계에 머무른다. 로마와 그리스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의 종교가 해당이 된다. 이러한 토테미즘은 다신교를 만들어서 자연과학적 상호작용을 신화적 언어로 표현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서술해나간다. 하지만 그 단계가 지나고 문명에서 사회를 형성하고 생활구조도 복잡해지고 인적인 상호교류가 잦아지면 문화가 광범위하게 혼합되거나 창발된다. 거기서 자연중심의 세계관이 아니라 이제 인간의 정체성에서 피력되어 신격화된 종교가 탄생한다. 예수의 탄생설화 ,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일생을 비롯한 유일신교가 해당된다. 그러면 위에 자연에서 신격화된 인간단계 까지는 기원후 13세기까지 르네상스가 나타나기 전에 보여지는 종교적 양상이다. 르네상스가 생기고 난 이후에 문명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종교에 수동적으로 의탁하는것이 아니라 인간중심적 관점으로써 종교를 수정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개신교가 여기에 해당되며 가톨릭의 폐습을 비판함으로써 유럽 전역에 도처곳곳에 생겨났다. 원래 성경은 오직 라틴어로만 기제되었고 그렇기에 교황에게는 독단적 성역이었고 그걸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문자화된 교리를 자의적으로 전파할수있는 남용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여러 국가지역에 수도원들이 개혁을 하면서 다양한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기시작했다. 그 이후에 개신교는 각 지역에서 성경의 라틴문자로부터 독립하여 힘을얻었다. 기존에 관습적이고 세속적인 가톨릭은 시대에 자유로운 사람들의 문화적 복합성을 포용하기에는 그릇이 작았기때문에 충분히 가톨릭은 힘을 잃었다.
동양에서는 불교가 중국에 남북조시대에 북위 효문제의 불교 장려운동 덕분에 전성기를 이뤘지만 나중에 수당시대 통일왕조의 중앙집권적 체제가 굳혀졌기에 불교와 도교는 부속개념으로써 잔존했다. 하지만 중앙집권의 발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한반도에 국가들은 불교가 오히려 국가 권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할수있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지역 토착의 귀족권력을 누르기위해 중국으로부터 쇼도쿠 태자가 불교를 들여와 각지 호족들의 통합에 성공했다.
전반적으로 동양은 왕조나 국가권력의 향방에의해서 종교가 활용되거나 소외되어 따로남아서 변형되는게 주요특징이다. 남북조시대때 북위가 초창기 건국되었을때 불교가 억압되면서 민간철학이 발달되었던 시기도 있었고, 조선후기에는 불교의 영향력이 초기보다 약화되면서 민간풍속이 발달되는 경향도 보인다. 서양에 종교개혁과는 사뭇 다르게 동양에서는 개혁으로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왕조의 흥망성쇠에 따라 종교는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흐름이다. 중국에서 종교란 선택적으로 흡수하거나 배척해도되는 문화적 도구에 불과했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는 늘 인간의 문명 뒷편에서 태상황으로 군림하는 역할을 했다. 때론 정치와 통합이 되기도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실패했다고 여겨지는것이 있다. 바로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와의 관계이다.
마르크스는 대표적으로 유산계급을 부정하며 자본가가 부흥하면 언젠가 노동자의 경제력또한 약화되어 자본주의는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걸 주장하는 학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는 집안배경과는 다르게 반항적이었고, 기독교에대해서 비판하고 논변하기를 좋아했던 그였다. 결국 대학교 강연을 하려고 준비를 했지만 그 당시 독일은 제3신분인 노동자를 억압하던 시기였고 마르크스또한 그 꿈이 좌절되었다. 하지만 결국은 이론 서적을 집필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개신교 성향이 강했던 독일에서 억눌렸던만큼 기독교를 극렬히 혐오하였다. 기독교는 하느님 아래 만인의 평등을 지향하지만 신앙에따라 행동하는 자유는 곧 계급을 발생시킨다는 모순을 그는 직시하고있었다. 특히 그 당시에 비스마르크 독일은 통일을 앞두고 있었기에 작센지방과 라인란트 슐레지엔의 지역을 포함하는 독일남부 기독교를 포섭할 필요성이 컸기에 "융커"라고 불리우는 제 1신분 지배계층을 이용하여 개신교를 정치적 도구로써 제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그런 통합현상을 보고 좌익계열을 기독교와 공존할수없다는 사실을 강하게 체감했다. 그러한 계기는 기독교와 좌익의 정치적 결별을 공언한것이나 다름없다. 오늘날까지도 시회주의가 기독교를 배척하는 태도를 보이는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물론 50년대 나치독일이 무너지고나서 기독교 사회주의 연합전선(정치 당파)이 서독일내에 사회주의 계열의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통합하려고했으나, 동독에서 기독교인 피살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지지율은 감소하여서 결국 실패한 사례도 있다. 이렇게 사회주의는 기독교와 결합이 힘든부분이 꽤나 크다.
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그런 역사는 단지 사례에 불과할뿐 실증적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산주의가 무너졌을뿐 공산주의가 실패한게 아니며 왕조가 멸망했을뿐, 왕조가 무능한것은 아닌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개신교와 사회주의가 공존할수있는 방법론에대한 논고는 가능하다.
일단 어느 맥락이든 "종교의 자유" 라는말은 굉장히 자명하다. 역설적으로보면 종교 내에서 자유가 결부되어있다는 뜻이된다. 종교의 자유가 생긴 배경에는 기독교의 힘이 크다. 내세적 자유를 지향하는 개신교 오히려 서로다른 모든 종교에게도 자유로울 권리를 부여하는것에서만큼은, 개신교에 국한되지않는 모든 종교에 "자유주의" 입김을 넣었기 때문이다. 세계인권선언과 함께 강화되었던게 종교의 자유이다.
이러한 연유로 기독교는 내부적인것이 아니라 대외적으로 발산되어 기독교와 무관한 가치에서도 자유주의를 전파할수있는 구실점이 되는것이다. 그러면 공연히 개신교 외적인 힘에서 계급이나 차이가 발생하기에 사회주의 입장에서는 중대한 위협이 된다. 개신교의 역할적 주체는 기독교 교리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외재적인 영역에 침범하여 이질적인 가치나 문화에도 자유로운 공존을 상정하는것이 핵심이다. 반면 마르크스 좌익 사회주의는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생겨나는 공리적 평등이 그러한 기조이다.
그러면 이런 사회주의-개신교 간의 불협화음은 해결될수없는가? 종교와 체제의 영합된 사례는 찾아볼수는 있다. 이란의 이슬람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란은 시아파를 명맥으로하는 이슬람 국가이다. 시아파는 무함마드 혈통만이 정통자 계승권을 지녔다고하여 생겨난 이슬람 파벌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시아파 이슬람은 유일혈통을 내세울수있는 부분은 중앙집권적 특징에있어서 유사성을 보인다. 그래서 이란은 오스만을 제외한 다른 수니파 국가들과 다르게 이슬람과 지도자 통합에 용이한 경우가 많았다. 통일왕조가 교체된 횟수가 많은 국가가 이란이다.이란이 종교와 정치와 함께할수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이슬람 교리는 통치자나 지도자의 이념에 편승한다는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이슬람은 가족제도와 결혼 풍습, 심지어 행정제도까지 상투적으로 이슬람 경전에 기제되어있는만큼 지도자의 정치적 합리성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져다준다. 국가에 필요한 징집이나 조세제도 또한 이슬람 경전에 피력된것을 토대로 명령할수있는 근본적 토대를 마련해주기에 오늘날 현재에 이란에도 헌법이나 모든 법에도 이슬람 교리를 벗어난것이 전혀없는게 현실이다. 종종 사람들은 이슬람을 미개하다고 손가락질하지만 잘못된 오해이다. 흔히 아는것처럼 이슬람은 문화 수준이 떨어져서 전통과 현대사회를 구분못한다는건 편견이다.
실제로 이슬람은 신앙 탄생 초기부터 다른 종교와 다르게 통치 접목성을 띄는 종교였기에 국가체제와 친화력이 있는만큼 많은 중동의 독재자들이 그런 점을 악용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슬람은 종교보다는 규범이나 행동지침으로 보는게 적절하다. 그렇기에 이슬람은 인물중심 설화나 스토리텔링 중심의 기독교와는 다르게 이슬람 경전에는 물질적 대상과 인간의 상호작용과 작위적이고 지시문구들이 많은 비중으로 차지한다.
그렇다면 이란이 이슬람과 결합하는게 성공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슬람이 통치 친화력이 있기때문이라고 할수있다.
그럼 여기서 개신교-사회주의간의 영합에 성공할수있는 이론적인 힌트를 얻을수있을까?
일단 개신교는 국가의 딱딱한 권위나 신조와 융화되기힘들다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국가단위에서 자행되는 사회주의적 측면에 인위적인것들이라면 개신교는 관점에서는 자유를 박탈당하는것으로 간주된다. 내가 가진 재산,,권리,신분,역할 들이 조금이라도 사회주의적 틀에 의해서 규정되거나 변형된다면 개신교에 어긋나는것이된다.
이는 둘다 양가적으로 갈등하는 구조이기에 사회과학적으로 늘 실패한다.
그러면 기독교를 사회주의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된다.
그러나 개신교의 탄생배경을 본다면 시대의 필요성에 의해 개인의 자유의지 박탈에 반발심이 고무되어서 개신교가 생겨난만큼, 기독교가 수정되는것에 대전제 조건은 항상 인간의 추동적이고 반항적인 자유본성이 내재되어있기에 거스를수없다.
국가나 위로부터의 기독교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기독교의 수정이 아니라 또다른 이단 교리가 창출되는 현상을 야기한다. 기독교가 내부적으로 작동하는 원리는 대외적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흐름에 필연으로 맞물려있다는 반증이다. 사회주의에 의해 기독교가 수정되는것은 기독교의 본원적 개념을 파훼시킴으로써 이미 기독교가 아니라 국가 체제라고 공표하는것이나 다름없은 논리학적 도식를 가진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개인이 모여서 시대의 선택의지에 좌우되기에 사회주의는 기독교리의 수정을 체제에 맞게끔 시도하지만 그것이 수정된 기독교일거라고는 설득력을 이율배반적으로 상실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