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8. 30.
1화의 장현은 연준에게 "오랑캐에게 천명은 오랑캐에게 있소이다" 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을 계속해서 곱씹게 된다. 그 어떤 세계관도 우주의 '중심' 이 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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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과 유튜브 요약 영상이 대세인 시대지만 최근 엠뚜루에서 올라오는 연인 요약본을 보며 다시금 통째로 보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사실 나는 5회에서 가슴이 저릴 정도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장면이 운명적으로 장현과 재회했던 길채가 연준에게로 눈길을 돌리는데서 장현이 보여줬던 복잡미묘한 표정, 질투로 뒤엉켜 먼발치에 우두커니 앉아서 두 사람을 째려보던 이장현이었는데 그런 장현의 모습은 중요치 않다 생각하셨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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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장현의 삶에 관해 생각해본다.
한평생 주류의 폭력 속에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사람. 충절을 요구하며 무고한 삶을 희생하라 호명하는 무능한 국가를 혐오하면서도, 내 옆에 살고 있는 이들의 작은 삶을 지켜주려 팔자에도 없는 전쟁에 뛰어드는 사람.
부모와 얽힌 정절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정을 꺼내보이기 힘들어 하다가도 길채 앞에서는 그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어했던 사람. 그 어떤 이상적 이데아보다도 지금, 여기의 현실이 귀했던 사람. 그 현실 속에서 길채와 함께 하는 삶을 꿈 꿨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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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채가 걷는 여정의 끝이 삶이길.
장현이 걷는 여정의 끝이 삶이길.
해주고 싶은 말을 해주지 못하고,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한 채 이별한 게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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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채는 왜 조선에 남아야 하는가.
사실 길채 캐릭터상 장현 죽은 거 확인하러 심양에 가고도 남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역설적으로 그건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자기중심적 인물로 남게 됨을 의미한다.
길채는 이제 애기씨가 아니라 가장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돼버린 마당에 아버지를 비롯한 동생들과 종종이는 물론이고 사실상 은애와 방두네의 삶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현실 속 삶의 무게를 깨달은 길채가 모든 걸 버리고 장현을 찾아 심양을 향한다는 건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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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채는, 은장도를 자신의 목이 아닌 오랑캐의 목에 꽂는다. 사랑을 잃고 식음전폐하다가도 삶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젠 오지 마셔요. 난 이승에서 천수를 누리다 갈 생각이니. 우린, 나중에 다시 만납시다.”
언제고 내가 너를 찾아갈 테니, 이승에서의 내 삶은 내게 맡기라 말하는 듯한 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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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과 은애도 인습과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인데 비판 받는 게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인조도 그렇다 생각하지만 그는 왕이니 좀 별개라 생각하고.
드라마를 보는 입장에선 최명길의 입장에 골백번 공감 가지만 작중 상황이 내 처지였다면 김상헌을 비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그럼에도 정명수는 존나 깠을 거 같긴 해.
우리 임금의 뜻은 그게 아니라며 대리 변명해주던 최명길의 모습이 가슴에 남는다. 대체 전근대 국가의 무엇이 그로 하여금 충심을 자아내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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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강화도 씬을 보며 착잡했던 건, '임금' 의 '손자' 라는 이유로 다른 누구의 삶보다도 우선시되는 아이러니.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원손 하나의 생명이 수많은 부녀자들의 생존보다 우선시되다니. 공리를 따지자면 원손이 자라 조선이라는 나라에 보탬이 되는 것보다 제 발로 제 밥벌이 하는 이를 하나 더 살리는 게 나았을 건데.
길채는 종종이를 살리기 위해 다른 절박한 손 하나를 떼어낸다. 이 부분이 정말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앞서 원손을 건네면 내 일행을 살려주겠단 생을 건 약속을 했었고, 내 가족, 내 몸뚱이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을 구하겠단 마인드는 허황된 소리로만 보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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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사실 길채 '애기씨' 로써의 상징 그 자체였는데 (1화 때 영채 비롯 종종이도 꿈 얘기만 하면 다 비웃는..) 그 꿈이 이제 장현으로 가득차면서 길채가 이제 현실에 오롯이 발 딛게 되는 것 같다.
장현의 “낭자는 좀 철이 들어야 하니까.” 라는 말은 사실 장현은 몰랐겠지만 작품 자체적으로도 길채가 꿈에서 깨어야 한다는 걸 의미하고, 길채가 장현으로 가득찬 이후의 꿈을 꾸며 열병을 앓다가 “이제 그만 오셔요.” 라 하는 건 난 이제 꿈 꾸지 않고 이승(현실)에서 살겠다는 의지 표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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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붉은색은 사랑하는 마음이라, 먼저 마음을 자각한 장현은 발끝부터 새빨갛게 물들었지만 아직 자기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지 못한 길채는 반쯤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래에서부터 물들어온 마음을 과연 저버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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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채,
당대 조선이 규정할 수 없는 여성.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는 여성.
유길채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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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난 일상에서도 연도가 모호하게 느껴져서 왜란에 1500년대, 호란이 1600년대에 일어났다기에 시간차가 백 년 정도인가 했는데 실상 왜란의 끝과 호란의 시작까지 30년 가량의 시간 차밖에 나지 않더라고.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는 능군리 노인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그 공포는 능군리 애기씨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마치 겹겹이 쌓인 알의 껍질처럼. 알 속에서도 깨어 있는 존재였던 길채는 끊임없이 바깥 세상을 향해 작은 부리로 알을 톡톡 건드린다.
그러다 이장현/전쟁이라는 외부 자극으로 그 알이 와장창 깨지고 마는데, 이는 현실 자각에 대한 수동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불어닥친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자신을 지킬 외피를 두르는 것 또한 성장의 일환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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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군리라는 작은 사회는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선이라는 사회의 축소판과 다름없다. 그런 사회 속에서 이장현이 능군리의 '구성원' 이 되고자 하는 과정은 자못 코믹하게 보이나 역설적으로 그 공동체가 중시하는 이데올로기를 자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충절, 정절에 이르는 각종 절에 얽매이는 규범을 내재화하는 것 ㅡ 그리고 전쟁이 보여준, 최종적으로는 현실의 내 삶을 버리고라도 임금을 <구하러> 순례를 떠나야 하는 것. 그 내재화의 과정은 서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치밀하게 주입되는데 초반부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장면 중 하나는 연준의 연설에 어린 아이가 동조하는 장면.
재밌는 건 그 엄격하고도 확고해 보이는 규범의 논리도 자본의 논리 앞에선 무너진다는 것이고, 이장현은 그걸 알고 있었다. 돈은 현실 삶을 지탱해주는 근간이나 그 자금을 마련해준 이장현을 천박하다 일렀던 이들.
어쩌면 장현이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으로 갔던 것은 자신을 성원으로 받아들여주지 않는 성리학 규범의 위선에 질려, 현존재로서의 자신을 세우기 위한 필수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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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현, 충절과 정절을 비롯한 절에 살고 절에 죽는 성리학 과물입 국가에서 사대부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 여겨져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 한편으론 사랑을 갈구하고 한편으론 회피하는 자. 그러나 그 회피 공격이 언제나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한다는 점에서 자기파괴적 고통을 안고 있는 자.
그런 장현이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 깊은 곳까지 헤집어 보였던 순간이 바로 '닳고 닳은 사내' 로 지칭되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너도 이 나라가 강요하는 절-이데올로기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걸 알잖아, 왜 너를 속여, 그러지 말고 내 손을 잡아줘, 네 마음을 줘.”
사랑에 거부당하고 살아갈 의미를 잃어 '죽지 않기 위해 정신 차려야 하는' 심양에 간다는 이장현. 어쩌면 온 마음을 헤집는 심적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은 지금, 여기의 현생에 집중한 현실주의적 태도라는 걸 보여준다는 면에서 길채와 장현은 결이 같다.
약소국 세자의 운명과 안위가 궁금해졌다는 장현. 이전에도 곁에 존재하는 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약소국 세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그의 살 길을 열어주고, 더 나아가 조선 백성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 ㅡ 이게 군자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이는 자신의 트라우마로부터 알을 깨고 나오는 이장현 개인의 성장임과 동시에, 나와 내 어머니에게 위해를 가한 나라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동체를 지켜보겠다는 마음, 혹은 아마도 길채가 사는 세상에서 함께, 봄에는 꽃 구경하고 여름에는 냇물에 발 담그고 가을에 담근 머루주를 겨울에 꺼내 마시고 싶다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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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음, 여진족 어머니와 조선인 아버지 사이에서 조선군의 토벌로 인해 관노비가 된 자. 태생부터 경계 밖 인간으로 태어난 량음이 조선이라는 사회 속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관노비 신분으로이다. 인간과 짐승(오랑캐)의 경계에서 핍박, 멸시, 차별을 당연스레 받던 이.
국가는 주류 규범의 원리에 따라 '의도적으로' 특정 존재들을 배제하고 소외시켜 비가시화하나,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은 그들의 존재를 가시화하며 주류 규범의 문제를 고발한다. 성리학의 원리로, 절-이데올로기의 논리로 돌아가는 조선이라는 나라. 그러나 현실의 위협 속 나라를 구한 건 위험의 최전선에서 나라를 구한 건 승병들과 이장현을 비롯한 핍박받던 존재들. 그들은 존재 자체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내몰려야 하는 이들. 포로로, 적장의 중심으로... 그 와중에 지켜야 하는 존재라는 나라의 지존은 무얼 하고 있었나?
량음이 목소리로, 노래로 칸의 고국의 정서를 환기시키던 장면을 보며 이장현이라는 존재의 흔적, 이장현과 유길채라는 역사를 증명할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량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자가 권력인 전근대 사회. 문자기록의 역사 속에서 지워진 그들의 존재는 한편의 구술문학처럼 가장 낮은 곳에 존재하던 이의 목소리로 증명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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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막은 태양 아래 피 흘리는 장현과 함께 시작한다.
“태양 아래 존재한다는 것.”
공동체 속에서 그 어떤 낙인도 없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무언의 증명. 그렇기에 '세계의 중심' 인 임금은 자기 세계의 작동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자는 '다시는 태양을 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으름장을 놓는다.
절-이데올로기로 돌아가는 조선이라는 성리학 사회에서 태양 아래를 걷기 위해 이장현이 걸어야 했던 모든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2023. 08. 31.
몹시 그리워하고 사랑한, 연인.
이는 이장현에게 있어 유길채라는 존재의, 유길채에게 있어 이장현이라는 존재의 위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일 수 있겠고, 더 나아가 현 시대를 나와 함께 살아내준 이들에 대한 연민, 그리움, 그리고 내가 사는 터전과 순간을 위한 더 큰 의미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며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고통을 상상하고, 함께 겪은 고통을 정성스레 봉합하고 보듬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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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을 벗어나 온몸으로 삶을 체현하는 길채.
당신이, 삶이 그곳에 있다면
내가 그곳으로 달려가겠다.
2023. 09. 01.
나는 작가님이 역적과 연인을 통해 역사 속에서 잊힌 존재들을 망각의 바다에서 건져올리고 그들을 수면 위로 가시화하는 방식이 좋다. 미시 이야기라고 치부되고 간과된 수많은 역사 속 에피소드들이, 소외당하고 객체화되었던 이들이 주체화되는 방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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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화에서 보인 감옥에 갇힌 자가 량음이라 생각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캐릭터의 속성은 중요하다. 량음은 (오랑캐) 혼혈, 노비, 동성애자라는 당대 지배 이데올로기가 배척하고 금기시하던 모든 속성을 지닌 인물로 존재 자체로 성리학 사회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작중 조선은 그와 장현이 없었더라면 칸의 의중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파멸했을지도.
드라마의 이상향을 생각하자면 이상적 국가란 량음이란 존재마저 포용하고, 량음이 한 없는 감정으로 즐겁게 노래하는 국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나는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량음으로 대변되는, 의도적으로 비가시화된 이들의 목소리라고 본다. 사실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이미 조선이 양란 이후 더더욱 보수적인 개노답 국가로 변질되는 걸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장현의 행방이 묘연해진 가운데 더 이상 량음이 태양 아래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은 서사적으로 일견 납득이 간다. 역사를 알고 있으니 오히려 장현길채와 함께 율도국과 같은 가상의 공간으로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론 우리 애들이 왜 떠나야 해..? 라는 양가적 감정이 들기도.
그런데 이것은 비단 조선에만 국한되는 상황인가? 량음의 처지를 현대 대한민국의 인물로 치환해보면 제3세계(가장 흔하게는 동남아)+블루칼라+퀴어의 위치에 놓인 사람인데 이를 두고 과연 조선의 폐쇄성에 혀만 차고 남의 집 일인양 방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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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요약본을 보다가 실망스러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건 이 아이가 편집되었다는 사실이다. 왜 실망스러웠냐면 내가 생각하는 3회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가 이 아이가 "나도 가겠소" 라고 말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연준은 '심장이 뜨거운 자,' '충심으로 벅차오르는 자' 는 함께 의병이 되자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심장을 뜨겁게 만들고 충심이란 어디서 근원하는 말이란 말인가? 지켜야 할 근본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작 그 근본으로서의 존재는 저 하나 살겠다고 높디 높은 성벽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는데.
여하튼 저 장면을 보며 제5도살장이 생각났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한 위정자와 그들의 프로파간다는 '지존' 이라는 특정 존재를 지키는 것이 '우리' 를 지키는 것이라 속삭이지만, 그것이 '의로운' 것이라 이야기하며 현실의 희생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숱한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 대의와 이상으로 상징되는 의로움을 위해, 의병이 되기 위해 국가의 자식들이 희생당한다. "유년의 끄트머리, 어린 숫총각들" 과 같은 소년 십자군들을 앞세운, 피와 눈물로 얼룩진 야만의 역사가 반복된다.
의로움의 대가는 '귀한 애기씨'를 태워야 한다는 명목으로 강화도를 탈출하고자 울부짖던 수많은 백성들을 향한 칼부림이 아니던가? 우리가 외치는 '우리' 와 그들이 속삭이던 '우리' 는 다른 존재였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내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스스로 일어난 의병의 존재는 의롭디 의롭다. 더불어 그것은 천하의 근본이라는 인조가 저 혼자 살겠다고 남한산성에 처박힌 탓에 더 대조적으로 느껴진다.
"전하를 위해 죽는 자, 사직에 세세토록 이름이 새겨질 것이니. 두려워 말라, 겁내지 말라. 우리는 오늘 죽어 전하를 살리고, 이 나라의 사직을 살리는 것이다. 그대들의 손으로 그대들의 검으로 전하를 구하겠는가."
전하에 예수, 예루살람 넣으면 십자군전쟁이랑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물론 결과는, 현실은 지옥 불구덩이일 뿐이지만. 4화를 보며 인조에게 정말 화가 나는 점은 송추 할배와 이랑 할멈조차 자신의 터전을 지키겠다고 활과 낫을 들었는데 인조는 어디서 무얼 했는가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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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본에 의병들이 높은 산 위에 위치한 남한산성을 바라보는 장면도 빠진 것 같다. 그 장면을 보면서도 '충심' 이 뜨거운 자들은 지존을 지키겠다고 저렇게 아둥바둥이었는데 정작 백성의 아버지란 놈은 전쟁 끝나니까 <자기 구하러 오는> 순대로 상 주고 앉아 있었던 게 황당했다.
2023. 09. 02.
길채가 '내 사람들' 이 배 부르고 등 따숩게 먹고 잘 공간을 만드는 순간들이 이쪽도 저쪽도 속하지 못한 <근본도 없는 잡놈> 이 돌아가 쉴 공간이 만들어지는 순간 같아서 눈물이 난다. 능군리에서부터 이장현에게 유길채는 '뿌리를 내리고 싶다' 는 원동력이 되는 존재였고, 실제로 그 안식처를 길채가 만드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가 바로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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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긴 세월 빈 껍데기로 살아오면서 하나씩 모았을 꽃신 생각하면 눈가가 시큰해지는 거지. 꽃신 하나 볼 때마다 그 꽃신 신고 자신에게 달려올 길채 생각했을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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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채가 수완을 발휘하는 과정은 길채만이 가능했던 순간들. 귀한 양가댁 규수로 자랐기 때문에 패물의 가치를 알 수 있어 제값에 흥정할 수 있었고, 장현과의 순간 덕에 누구와 언제 거래를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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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무는 장현이 덕에 임금에게 팔자에도 없던 명예 얻었잖아. 이장현은 그런 거 다 필요없어도 유길채 없으면 죽으니까 원무가 길채 포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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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채가 찐으로 구원무랑 혼인을 했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드라마 전반에 걸쳐 혼인제도가 여성을 억압하는 제도라는 걸 일러줬는데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그 제도를 빌미로 유길채 마음을 짓밟고 발목을 끊어내려 하는 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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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가 충절을 버리고 여주가 정절을 버려 절節 이 지배하는 조선과 21세기 대한민국에 맞서는 드라마,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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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은 왕과 세자의 목숨도 오락가락하는 시국에 그놈의 천명을 저버리기 싫어, 오랑캐에게 고개 숙이기 싫다는 이유로 나몰라라 고고한 심지 지키겠다고 옥살이 한 건가. 그런 연준 지켜주겠다고 장철은 상소 써준 거고.
현실 앞에 명에 대한, 성리학에 대한 절개가 대단하네. 저런 놈들이라면 장철이 장현 아버지라는 논리는 납득이 간다. 현실 여성의 현실이 어떠했든 간에 성리학에 대한 절개가 우선이었기에 그 난리를 피운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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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조선이 자꾸 경계에 선 장현길채를 경계 밖으로 내몬다. 이장현은 (유길채 있는 조선으로) 살아돌아가기 위해 오랑캐 비위 맞춰주며 살고 유길채는 양반댁 규수가 할 일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들을 한계까지 내몬 건 당대 규범인데 왜 장현길채가 욕을 먹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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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라마 반응 보면서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가 생각났다. 마음을 따라도 "정절도 모르는 것들" 이라며 작품 안팎으로 욕 먹고 규범을 따르면 밍숭맹숭한 결말이라며 작품 밖 독자들한테 욕을 먹는다. 그런데 난 엘렌 올렌스카와 유길채가 내보이는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의지가 좋아.
19~20세기 헤스터 프린, 안나 카레니나, 엘렌 올란스카에게 찍혔던 낙인이 17세기를 살았던 유길채에게도 찍힌다. 그것도 21세기를 사는 이들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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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현 본명이 장현이면, 스스로 근본(성씨)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건데 권력이 기록(사초)으로서 휘두른 폭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건가? 이름은 아무래도 좋잖아. 이장현이 이장현으로 불리지 않는다 해도 이장현으로서 존재할 수 있으니.
새삼 누구를, 무엇을 기록하고 기록하지 않을지를 정하는 것부터가 권력이란 생각이 든다. 조선왕실이 경계에 선 이방인인 이장현을 현실은 물론이고 사초라는 기록에서조차 경계 밖으로 내쫓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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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회를 도발시키는 장현길채. 외부에서 보면 그저 닳고 닳은 잡놈과 꼬리 아흔아홉개 달린 불여시인데, 장채가 보여주는 마음은 작중 그 누구보다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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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현 어린 시절 나오면 능군리 학동들 모습이랑 오버랩 될 것 같다. 멋모르고 유교 경전 가르침을 암송하던 학동 이장현. 그 가르침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누군가의 삶을 옥죄는가를 깨달은 후의 이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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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요약본에 길채가 장철 만나는 장면이 없네. 그 장면 보고 '와 뒷 배경에 무슨 책이 저리 많아?'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유학 경전에 파묻혀 현실을 등한시하는 인물이라는 걸 상징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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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몰라 그 여자가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이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분명 유길채는 이장현 없어도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는데 이장현은 유길채 없으면 죽을 것 같다.
이장현의 삶. 태어나 아버지라는, 자신의 반을 이룬 존재가 또 다른 반인 어머니를 부정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루하루 우심정을 비롯한 기방술집에서 밤에는 술에 취해 일부러 맨 정신을 버리고 낮에는 잠에 취해 햇빛을 보지 않았으리란 가정. 사농공상의 나라에서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이 아닌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 평생을 굴러온 닳고 닳은, 그러나 모난 돌멩이 취급. 먼지처럼 부유하며 살았던 처지.
그런 사람이 길채를 만나고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진 거겠지. 그렇다면 장현에겐 자신을 이 사회에 뿌리 내릴 성원으로서 받아들여줄 <장소> 가 너무 중요해진다. 그 장소는 처음에는 햇살 같은 유길채를 만난 능군리라는 특정 장소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유길채라는 존재가 있는 어디든, 즉 유길채라는 인물 자체가 이장현이 머무르고 싶은 곳이 된다. (아이러니한 건 연준은 뿌리 없는 천애고아였음에도 당대 이념을 제대로 내재화했다는 이유로 일찍이 성원으로 받아들여진..) 그런 점에서 9화에서 길채가 자기 사람들을 품을 <공간> 을 마련해나간다는 건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이 묘해지게 만든다.
사실 유길채를 만나고 인생의 질투를 포함한 희로애락을 처절하게 겪게 되고 팔자에도 없던 전쟁도 참전하고. "결국 널 비참하게 할 것" 이라는 량음의 말도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닌 게 사랑을 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지구 내핵까지 뚫고 갈만큼 비참함을 느끼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거기에. 근데 그런 감정의 끝단까지 겪는 게 또 인간으로서의 삶이니까.
결국 이장현에게 유길채는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존재. 더 나아가 삶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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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 속 아비들이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다.
소현세자父, 이하 생략. 길채父, 정신을 놓으심. 은애父, 돌아가심. 연준父, 애시당초 부재. 장현父, 만약 장철이 맞다면 이장현 인생 최고 흑막.
남연준은 꼬박꼬박 성을 붙여서 언급되는데 나머지는 이름으로만 불리는 것도 신기하다.
근데 어머니들 안 계신 건 뭐지? 주요 인물 중 어머니란 존재가 있는 인물이 없다.